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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능력을 상실한 의료 논란지방 소재 중규모 병원들은 요즈음 분주히 돌아간다. 국민은 전공의들의 파업을 마뜩잖게 보고 있다. 전공의 발 의료대란이 의료체계가 부분적이나마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오이씨디(OECD)를 금과 옥조로 여긴다. 오이씨디는 각국 파업 건수가 미미한데 왜 이것은 인용 안 하는가? 문제(임팩트)가 있으면 이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의료 분야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자정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자정능력을 구현할 책임 있는 집단(스테이크홀드)들이 상대의 탓만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 인식에 있어 정부와 의료계 간에는 상당한 격벽이 있다. 필수 의료 분야에 의사가 안 가는 이유에 있어, 정부는 의사 수가 부족해서라 하고 의료계에서는 여건이 안 맞아 안 가는 것이라 한다. 양쪽 다 완벽한 문제 인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20여 년에 걸쳐 복합적 요인들이 다층적으로 쌓여 일어난 현상이다. 구조적인 난맥상을 입체적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원인이 되어 필수 의료인이 지방에 있어도 좋을 만한 가치관을 흔들어 놓았다. 지방 거주 의료서비스 소비자들은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진료를 받기 위해 모여든다. 수직적 의료 분업체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의료서비스는 공공재인가? 자유시장경제재인가? 의료에 있어서도 의료서비스는 사회적 공공재이나, 사회발전과 사회적 요구의 변천에 따라 부분적으로 자유 시장의 경제재로서 서비스한다고 봐야 한다. 공공재로서 8, 시장 경쟁적 경제재로서 2 쯤으로 볼 수 있다. 8에는 의료보험 제도에 의한 의료 서비스 체계를 말한다. 2에는 실손보험, 비급여, 의료보험 미가입자(외국인 등) 진료, 영리 의료법인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의료 정책은 투 트랙으로 진행되었으면 한다. 지금껏 의료계가 자신들의 직역(밥그릇) 안보를 위해 파업을 불사하면서까지 그들의 고지를 사수하고 있는 진지들의 현안을 살펴본다. 비대면 진료 반대. 의료 사고 등을 방지해야 한다는 빌미로 반대하고 있다. 의료기관 휴무 시 약을 조제 받을 수 있는 대안까지도 원천 봉쇄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동네 병원의 활성화와 연관이 깊다 의사의 약 처방에 특정 제약사를 지정하고 있다. 이는 약 유통비용 증대와 중소제약회사에 기회 박탈로 사회적 손실이 막대하다. 의사만 이득이 가득 차는 모양새다. 약사의 적극적 판단이 제약산업을 발전시킬 것이다. 간호사의 역할 획정에 반대. 간호사와관련한별도의법제정자체가다른의료직역의일자리를빼앗을것이라고주장한다. 간호사법 개정에 간호사의 독자적인 개업 가능한 법적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간호사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한의사의 양의 도구 사용 금지 한의사가 요구하는 측정기기들에 대해 의협은 적극적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의료법에 규정된 이원적 의료체계를 부정하는 취지로 확대 해석해서 안된다 하면서. 의공학과 설립 반대 의공학과 신설이 필요하다. 의학과 공학이 한곳에서 만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창업 영역을 열어야 한다.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위해서 가성비 높은 의료 기구와 기기들이 필요하다. 해외 수출에도 기여하게 된다. K-의료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의협은 의공학생들이 임상 분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의대 증원 반대 의사 공급이 많아져 상대적으로 의사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반대한다. 표면적으로는 오이씨디를 들면서 대 국민 현란한 눈속임을 하고 있다. 필수 의료과를 포함하여 이익추구 의료법인 설립허용해야 한다. 치열한 경쟁이 싫다면 냄비 속의 개구리가 되겠다는 것인가?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이면 해외로 진출하면 된다. 의료인들이 공공서비스에 대한 완전하며 고결하고 정직한 의무감(인테그리티)은 희박해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존경과 사회적 보호는 지속.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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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 내가 걱정이 되어 죽것나?.’ 공휴일이나 주말을 상관하지 않고 3교대로 일을 시작한 작은 아이가 퇴근 시간 문자를 받고 전화를 한다. 순간 ‘어.’ 하는 대답을 하면서 당황한 나는 무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삼십대 중반인 아들이 주말과 공휴일이 있던 직장을 마다하고 옮겨간 직장은 우리의 일상과 쉬는 날이 달라져버렸다. 태연하고 적응 잘하는 아이와 상관없이 야간 근무를 해야 하는 주일은 더 걱정스럽고 애가 탄다.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간 아이를 믿고 있으면서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을까. ‘별 걱정을 다한다. 지가 알아서 잘하것지.’ 동생들도 지인들도 한 목소리로 거들고 있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릿한 감정은 무엇일까. 부모와 자녀 사이에 닿아있는 마음은 남은 생이 끝나지 않으면 계속될 것 같다. 성년인 아들은 되려 집에 다니러 오면 ‘손 볼 곳은 없어요?’ 하고 물어오기도 했는데…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보아왔던 많은 직장인들이 주말과 상관없이 근무를 하고 있다. 쉴 수 없는 혹은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우리 주변의 기관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간호사도 그렇고 소방이나 경찰공무원은 물론이고 멈추지 않고 일해야 하는 기업들도 많다. 언젠가 친구가 ‘힘으로 일하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고 나가는 것 보면 짠하다.’ 하던 말이 기억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강한 아이일지라도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은 비슷한가보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자라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살아갈지 별 걱정하지 않고 지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건강하고 행복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키웠다. 책을 좋아하던 형과 달리 걸음마를 시작하고부터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던 작은 아이에게 사무실에서 서류를 취급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답답하고 갑갑하기만 했던 공공기관 근무도 복지사 일도 벗어던지고 자신이 원하던 일을 찾아서 갔다. 그 일이 주말과 공휴일이 없고 슈트를 입지 않는 일이라 마음이 쓰였던 것일까 생각하니 당당한 아이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난주부터 매일 출퇴근 시간에 하던 문자는 하지 않기로 한다. 농담 섞인 아이의 전화를 받은 이후로. ‘언제나 나는 너를 믿는다.’ 로 일관해 온 엄마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마음으로 독립시키지 못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의 조바심인 것 같아서.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맞잡아 주겠다고 했던 마음을 그사이 잊어버렸던 것일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독립한 아이를, 원하지도 않는데 자꾸 불러 세웠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내 어설픈 불안이 단단한 아이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음이 다행스럽다. 언젠가 힘들었던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작은 아이가 했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며 자랄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내가 깜빡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내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고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일이 더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 아침이다. 아이들과 분리되지 못한 부모의 마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덧이 될 뿐. 오늘은 내 마음의 걱정이나 불안을 다 걷어내고 담백하고 친절한 격려의 문자를 보내야겠다. ‘아들아, 너에게 주어진 세상은 한없이 넓고 아름답단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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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내판에서 읽는 하동역사(Ⅲ)마을 안내판에 역사를 내용으로 한다면 바른 이해가 되게 해야겠다. 참고 문헌과 주도했던 사람, 협회명 등을 명기하여 심층학습이 되게 하자! 문헌 발견이나 유물의 발굴 등으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수정을 하였다면 안내문 역시 바로 정정해야겠다. 본문 중에 〈이읍 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에서 ‘생각된다’는 어떤 일에 대한 개인의 의견이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은 느낌보다는 기록과 자료를 통하여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개인 보다는 공공의 입장에서 서술해야 객관성과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마을 안내문을 읽는 사람은 역사의 전문가 보다는 길손이 많다. 끝까지 읽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흥미가 생겨야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사료를 뒤적이게 된다. 세상은 빠르게 달라져 자료 검색을 현장에서 손쉽게 할 수 있다. 안내문은 토씨 등을 고려한 앞뒤 문맥의 일치, 년도의 정확성 등 분야의 전문가 검토를 거쳐야겠다. 학문적 내용의 서술은 간결하면서 다툼의 여지가 없어야 하며 인용 등이 가능하게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달은 하나이건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고 달을 보았다고 주장을 펼치듯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야 역사적 사실로 인정이 되는 것이다. 실로 ‘생각 된다’라는 표현은 개인의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이해되는 바, 안내판에 쓰이는 표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진국 때는 다사촌, 변한 때는 악노국〉에서 진국의 존재에 대하여 설이 분분하다. 진국이 해체되면서 진한이 되었다 또는 〈후한서〉 등에 진한 또는 마한, 변한이 진국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반면에 삼한의 형성을 진국과 무관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변한 때는 樂奴國〉에서 중국과 문자의 소통을 위하여 樂을 ‘노래 또는 즐긴다’는 뜻으로 중국 발음을 우리의 음으로 ‘악 또는 낙’으로 옮겼다. 樂奴國을 ‘악노국’으로 표기하고 있다. 악양 상신마을 윗담에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 실제 모델이 되었다는 조씨고가(趙氏古家) 대문 앞에는 고문헌 사진이 첨부된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상신마을 문화 탐방로. 상신 마을은 악양면사무소에서 1km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으로 부계마을, 서로 주암마을, 남으로 정서마을과 정동마을, 북으로 노전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정서마을의 위쪽 지역에 잘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새터몰(上新)’로 불린다. 정서리는 악양의 중심지이며 하동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된 마을이다. BC 5000년 금석병용 시대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었고, 삼한시대 변한 때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樂奴國)의 심장이었다〉. ‘정서리는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樂奴國)의 심장이었다.’는 확실한 표현이다. 악양면사무소에서 형제봉 밑으로 동네가 형성되었다. 돋보이는 마을 이정표에 〈봉대마을의 유래. 악양 땅은 2000년 전부터 선인들 삶의 모습들이 동이열전(東夷列傳)과 위서(魏書)에 나타나고 삼한 변한(弁韓) 12국의 하나인 낙노국(樂奴國)의 도읍지라고 명기되어 있는 오랜 역사와 유서 깊은 고장이다〉. 동이열전과 위서를 인용 문헌으로 낙노국의 도읍지라 하고 있다. 악양 개치마을을 지나 정자 앞 자연석에 깊게 새기고 바탕을 흰색으로 마감하였다. 〈대축마을 유래. 변한 시대 낙노국이었던 이곳은 오래된 마을이다. 본래 진주목의 악양 지역으로 둔위라 하였다. 향교가 있었고 1633년경에는 축촌(丑村)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종 28년(1702)에 하동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축지리(丑只里)가 되었다〉. 악양현은 본래 소다사현(小多沙縣)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악양으로 쓰고 있으며, 오랫동안 진주목에 속했다. 고소산성 봉수대 및 요새지를 지키던 영진군(營鎭軍)과 왜군을 막기 위하여 월등히 많은 선군을 주둔했다. 악양의 3개 마을유래에서 ①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樂奴國)의 심장, ② 동이열전과 위서에 나타나고 삼한 변한(弁韓) 12국의 하나인 낙노국(樂奴國)의 도읍지, ③ 변한 시대 낙노국이었던 이곳은 오래된 마을이라고 여러 사람이 보는 돌에 새겼다. 문헌에는 樂奴國의 樂을 ‘낙 또는 악’으로 기록될 될 수 있겠다. 하동지역의 역사를 논함에 악양은 ‘낙’ 그리고 古河는 ‘악’으로 표기다면 동시대 두 개의 樂奴國이 존재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나의 나라를 두 개의 국명을 사용한다면 이름에서 혼란이 생기게 된다. 낙노국이나 악노국은 같은 나라로 아는 소수에게는 문제가 될 수 없다. 하동역사를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나로 통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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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내판에서 읽는 하동역사(Ⅱ)본문의 〈고하(古河)란 옛 하동이란 뜻이고…1703년…이읍 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단군 때는 모래몰, 진국 때는 다사촌, 변한 때는 악노국, 대가야 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785년간 신다사촌, 한다사촌, 하동촌으로, 읍기는 古河에 있었고〉에서 궁금한 점은 ① 〈대가야 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785년간 신다사촌, 한다사촌, 하동촌〉에서 신다사촌, 한다사촌, 하동촌으로 불리고 785년 동안 邑基는 古河였다는 것인가? ②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교통이 편리하고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모이고 필요에 의하여 통치 조직을 가지게 된다. 〈단군 때는 모래몰, 진국 때는 다사촌〉에서 古河에 존재 헀던 ‘모래몰’ ‘다사촌’은 지명이며 읍기인가? 785년을 邑基로서 고하마을 주변 고분이나 집터에서 발굴한 유물 등으로 신뢰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일본서기》 〈백제가 多沙城(하동)을 차지하고 오가는 길의 역(驛)으로 삼았다. 대가야가 자탄(子呑:진주)과 帶沙(하동)에 성을 쌓아 滿奚(광양)에 연결했다에서 하동은 多沙城(다사성), 帶沙(대사)이며 광양을 滿奚(만해)로 하동은 오래전부터 바다로 나가는 길목 역할을 하였다〉. 백제 근초고왕(346∼375)은 백제의 전성기를 이룬 정복 군주로 남북으로 영토를 최대로 확장하였다. 남으로는 마한 땅의 소국을 복속시켰다. 특히 하동(多沙城)을 驛으로 삼아 바다 길을 마련하였고 칠지도를 왜왕에게 주어 유대를 강화하였다. 북으로는 평양성까지 공격하여 고국원왕은 활을 맞고 전사한다. 백제가 북진을 펼치고 있을 때 대가야는 하동을 점령하여 고소산성에 봉수대를 세운다. 하동땅의 지명 이름에 沙가 많이 들어간다. 모래몰, 다사촌, 신다사촌, 한다사촌. 다사성, 대사 등이다. 沙(사)는 ‘모래’라는 뜻을 가지고 水와 少(적을 소)자가 결합된 글자이다. 섬진강 포구에는 모래가 많다. 결이 곱고 색이 고와 건축 자재로 널리 알려졌다. 지명은 그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의 고하마을에서 모래를 구경하기 어렵다! 고려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간 한반도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918년 왕건이 태봉의 궁예를 역성혁명으로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고려, 후백제, 신라로 나뉘어 대치하던 후삼국시대를 왕건이 936년에 통일했다. 이후 약 456년 동안 총 34명의 군주가 계승했다. 918부터 936년은 후삼국시대이다. 그러므로 후삼국을 통일한 936년부터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한 1392년 이전 까지 456년이다. 〈기록에 오래된 성씨로는 936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할 때…묘가 적량면 하곡(赤良面 鰕谷)에 있고…〉에서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할 때 하동에서 호장으로 있던 정도정(鄭道正: 하동정씨의 시조)이 향병을 이끌고 공을 세워 단련사(州․府․郡에 설치한 지방관)가 되었다. 정도정은 고려 통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 〈묘가 새우 골에 있다〉는 구절에 끌려 찾아 나섰다. 횡천교 건너서 양보마을 표지석 지나 대리석 단위에 화살표와 상남마을을 새기고 황소 모양의 검은 돌을 얹었다. 산모퉁이 길게 내려 커브길이 되고 백일홍에 가려진 비각 안에 고려증광정대부밀직부사정공국룡지묘(高麗贈匡靖大夫密直副使鄭公國龍之墓), 뒷면은 공휘국룡아정하동인사묘재하동부적량면하곡(公諱國龍我鄭河東人仕墓在河東府赤良面鰕谷). 하곡(鰕谷)의 鰕는 물고기어(魚)와 음을 나타내는 叚(가→하)가 합해진 글자로 새우를 일컫는 글자이다. 하곡은 새우골 또는 새비골로 불린다. 새우는 한 쌍의 자루가 있는 눈, 두 쌍의 더듬이, 다섯 쌍의 걷는 다리가 있다. 아가미로 호흡하고 암수딴몸으로 탈바꿈한다. 대하, 보리새우, 젓새우, 중하 등이 있는데 한・열대에 걸쳐 민물, 바닷물에 널리 분포한다. 사람이나 지명 이름은 부르기 쉽고 의미를 담기 위하여 고심한다. 새우(鰕)와 골짜기(谷)에 의미를 두고 鰕谷(하곡)이란다. 계곡에 새우가 많아 새비골 또는 후손이 번창하는 길지라는 것인가! 곡선 길을 지나자 경남기념물 261호 하동정국룡묘역 0.5km 안내판이 있다. 우로 계곡을 올라가면 볼 수 있겠구나! 한적한 논길을 터벅터벅 올라간다. ‘서울의 길(Seoul Road) 명천교 600m’라는 안내탑을 지난다. ‘정국룡묘역’의 안내판은 보이지 않고 칡넝쿨을 덮어 쓴 허수아비의 전봇대는 띄엄띄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안개 낀 산봉우리 밑에 여러 갈래 계곡이 모이는 지점에 우람한 저수지 둑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새비가 득실거린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하곡재(鰕谷齋)와 취정재(聚精齋)를 지나자 5기의 비석이 있는데 가운데 하동정씨시조휘도정지단(河東鄭氏始祖諱道正之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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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플랫폼을 다져 나가야최근 건국전쟁이란 영화가 관람객 100만을 넘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통일에 관심이 없는 초등학생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통일에 대해 거론 자체를 거부 또는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 키워드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다. 북은 핵무기를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을까? 현재 북·중 관계가 틀어진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북이 핵을 가졌으면 할 때 중국이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핵 개발 초기에는 중국이 고마웠겠지만, 지금 핵 때문에 속으론 골치를 앓고 있는 북으로서는 중국이 괘씸하기도 할 것이다. 핵을 가진 북이 대내적으로 인민들에게 선전 활동을 이전과 다르게 하고 있다. 그들의 헌법에 대한민국을 병합하는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북은 핵으로 하나를 얻은 반면 아홉을 잃은 결과가 되었다. 지금 핵을 폐기한다면 인민들에게 설득할 길과 명분이 없다. 결국 얻은 하나가 열 배 더 커지도록 선전할 수 밖엔 없다. 통일의 당위성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같은 민족이 아니어도 한 국가를 이루고 잘살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점은 한 민족이니 한 국가를 이뤄야 한다는 전제를 무색하게 한다. 북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선전 책동을 이어오다 최근에는 대남 관계를 적대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통일이 멀어져 가는 모습이지만 역설적으로 북 정권의 벼랑 끝 전술로서 체제의 안정감보다는 위태로움을 더욱 증진시키고 있다. 말과 글 등 문화가 같아 같이 살기 편하다. 같이 살면 서로 간에 시너지가 난다. 잘살기 위해 통일을 원한다. 불필요한 긴장 관계를 청산하고 동아시아 공영에 이바지한다. 통일의 이념이다. 북은 스스로의 진로를 선택한다. 안정과 지속발전가능성을. 북이 대한민국과 합병함으로서 이루어 잘 수 있다는 신념이 북의 인민들에게 들어차기 시작한다면 통일의 길로 접어 섰다고 볼 수 있다. 독일 통일 모델을 참고한 고유 한반도 통일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북 인민이 대한민국과 합병을 원하도록 하여야 한다. 믿음직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남북간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 잠재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해 당사자 국들에게 대한민국의 통일 행로에 대해 협조를 받아 낼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키워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격차를 뛰어넘어 같은 공동체 국민으로서 포용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약간 이질적인 친구가 주변에 있을 때,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소양을 갖췄으면 한다. 이주 근로자, 다문화 가정의 자제들이 대한민국 아동들과 같이 놀고 싶어도 놀아 주는 아이가 없다. 그네들끼리만 놀고 있다.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과 함께 놀고 공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북한의 어린이들과 격의 없이 지내면서 커 나가는 것이 바로 통일 플랫폼의 완성이다. 보수와 진보 간, 세대 간, 동서 간, 소득 격차 간의 갈등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건전성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통일의 모체가 된다. 금세기 말 이전 통일의 전기가 올 것이다. 한반도 통일에 있어 가장 큰 관심(컨선)을 크게 가진 주변국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어떤 주기를 가지고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대륙의 정치적 냄비는 200년 정도의 주기를 가지고 끓었다 식었다를 반복한다. 청일 전쟁 이후 200년 정도 흐르는 시점이 금세기 말쯤 된다. 힘이 빠진 주기에 서 있는 중국에게 대한민국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향방에 관한 결정에 중국은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고. 대한민국은 통일 플랫폼을 완성하기 위해 쉬지 않고 정진해야 한다. 자강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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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달 보러 가면서 선생님이 사준 머플러 하고 갔어요. 와, 예쁘다. 감사합니다. 했어요.’ 손녀 머플러를 사면서 지인 손녀가 생각나 하나 더 구입해줬더니 정월대보름에 인사를 건네온다. ‘달을 봤다고?’ 어머니 뵈러 진주 나갔다가 깜깜한 하늘 아래 훤한 진주성 불빛만 바라보다 들어 온 내가 묻는다. ‘달은 못보고 달집 태우는 거 보고 왔어요. 사위가 삼재라 팬티 한 장 태우고 왔어요.’한다. 덧붙여서 ‘하면 좋다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해서 다행이었어요.’ ‘맞아, 요즘 아이들 안한다 할 수도 있는데…’ 많은 갈등의 원인은 세대 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의 젊은 시절, 부모들의 간절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은 노력하지 않은 결과라 생각했고 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이 없으리란 믿음으로 지냈다. 돌에도 빌고, 나무에도 비는 심정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자녀들의 안녕이 언제나 내 기도의 주제가 되어 있음을 느낀다. 삼재라 입던 팬티라도 태워 액운을 피하고 건강하고 복되기를 빌어주고 싶은 마음을 받아 준 그 친구의 사위가 나도 고맙기만 하다. ‘아이 참, 별 걸 다 하라 하시네요. 괜찮아요.’ 했더라면 얼마나 무안하고 속상했을까. 우리 어머니도 극성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이런저런 요구를 많이도 하셨다. 돌아오는 절기마다 먹을 걸 먹어야하고 빌어야 할 것도 많았다. 콩이며 팥이며 그때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들을 일러주시고 가끔은 부적 같은 것들을 몸에 지니게도 하셨다. 세월이 지나고 내목숨보다 귀한 아이들이 생기자 조금씩 어머니를 이해할 것 같았다. 젊은 시절, 12살 아들 둘을 잃은 어머니의 아픔은 얼마만한 크기였을까 짐작도 못할 것 같아서… 이번 대보름엔 무심하게도 달님은 오시지도 않고 지나간다. 며칠 전부터 여기저기 달집들을 마련해 둔 곳이 많았다. 잦은 비에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도 달집은 세워지고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많은 달집은 태워졌나보다. 내 어릴 적에는 가마니를 끌고 집집마다 다니며 달집 나무를 얻으러 다니던 동네 어른들이 있었고, 그 뒤를 쫄랑이며 따라다니던 아이들 덕분에 명절 냄새가 났다. ‘설은 나가 쉬더라도 보름에는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던 속설 때문에 타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보름이면 고향을 다녀가려고 애를 썼던 일도 기억이 난다. 우리의 고향은 어디일까. 각자 그리운 고향은 가슴에 지니고 살고 있을까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인지, 부모님이 계신 곳이 고행인지, 내 추억을 담고 있는 곳이 고향인지 그리고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있는지. 달도 뜨지 않은 정원대보름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다행히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정월대보름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부럼, 오곡밥, 귀밝이술, 나물과 제철 생선을 먹으며 한 해 건강과 소원을 빌고, 부럼을 깨고 더위를 팔며 건강을 기원하는 풍속이 있다고.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것들을 찾아 보존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다. 전통놀이에 관심이 많은 나는 마당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어린 시절 정월대보름이면 농악 소리에 맞춰 손을 잡고 달집 주변을 맴돌며 춤추고 소리 지르던 그 밤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집집마다 다니는 동네 풍물패를 뒤따라 친구들과 깔깔대던 시절도 있었다. 있는 집에서는 마당에 푸짐하게 음식상을 차려 이웃들에게 나누어 먹이며 정을 나누던 그 시절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누구를 불러 세울까. ‘친구야, 내 더위 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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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국내 최초 교통처리 혁신을 꿈꾸다화성시는 지역내 총생산량(GDRP) 1위로, 산업벨트의 꾸준한 개발에 따른 교통수요의 지속적인 증가 때문에 각별한 도로관리 및 교통사고 관리가 필요하다. 이 지역은 전국평균보다 중차량 통행 비율이 6% 포인트 더 높다. 지속적인 도시 개발 및 산업벨트 개발로 인한 통행량 증가로, 도로파손, 포트홀 발생 등에 따른 교통사고 위험 및 도로관리 비용의 증가가 예상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속적인 교통혼잡과 보행자 안전 문제 해결 및 도로 인프라 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불가피하다. 도로 표면이 파손된 모습이 넓은 접시나 냄비같이 약간 들어간 모양의 그릇 같다 해서 포트홀이라 부른다. 야밤에 과속으로 포트홀을 지나게 되면 차가 심하게 요동하며, 핸들을 놓이게 된다. 이때 중앙선을 침범하기도 한다. 승차원은 내부 충적을 받기도 한다. 타이어를 지탱하는 림이 파괴된다. . 화성시는 전국 최초로 대중교통을 활용해 도로 위 돌발상황을 첨단 관리하는 실시간 위치정보시스템(GPS) 및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도로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GPS 및 AI를 기반으로 도로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도로 운영 관리부서에서 활용해 안전한 도로 환경관리를 지원한다. 보수 전 상태인 포트홀의 위치를 관내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들에게 알려 주어 운전자가 예방 운전을 하게 도움을 준다. 디지털도로관리시스템에는 정확한 데이터 획득이 필수불가결하다. 10대의 차량에 부착된 카메라가 시내를 주행하면서 도로교통 정보를 획득하고 있다. 현장을 순회하는 AI 분석카메라를 통해 1차 위험 요소를 감지 후 센터로 해당 이미지를 전송한다. 전송 방법을 보편화 하기 위해 엘티이(LTE) 또는 버스 차내 공공 와이파이(wifi) 활용을 고려 중이다. 주요 검지 대상은 포트홀, 도로 균열, 낙하물, 무단횡단, 불법 주정차, 노면표시 불량, 불법 현수막 등이다. AI기반은 획득된 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인다. 처음 카메라가 인식한 포트홀에 대해 그 위치를 추정한다. 인식한 순간 그 차량의 위치, 시각, 기상 상황 등을 저장한다. AI기반 카메라는 좀더 구체적으로 포트홀 등의 위치를 판단하여 데이터베이스 서버로 보낸다. AI는 차량의 위치에서 얼마만큼 떨어졌는지? 방향은 어느 쪽으로 몇 도나 기울어졌는지? 등을 파악한다. AI의 특장점은 심화학습을 한다는 점이다. 10대의 차량이 시내를 주행하면서 포트홀 등의 데이터를 모으고 있는데, 자동차 마다 동일한 포트홀에 대한 위치 정보가 약간씩 다를 수 있다. 포트홀을 정면에서 본 차량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고 타 차량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를 학습시켜 AI가 스스로 가장 적정한 데이터를 판단하도록 한다. 결국은 정확한 지점을 AI 컴퓨터는 알게 된다. 지피에스용 인공위성에 쉴새 없이 현재의 시각을 방송한다. 시각의 단위는 1초를 100만분의 1로 쪼개서 세밀하게 방송한다. 지상에서 위치 좌표를 알기 위해서 GPS 단말기가 필요하다. 단말기는 동시에 세 곳 이상의 인공위성으로부터 시각 정보를 받는다. 지피에스 단말기의 현재 시각과 위성에서 쏘아준 시각 간에 차이가 있다. 이 시각 차이에 빛의 속도만큼 곱한 것이 거리가 된다. 세 곳의 위성으로부터 받은 시각 차이가 거리로 환산된다. 삼각측량에 의해 거리를 모르는 두 지점 간의 거리를 계산해 낼 수 있다. 앞으로는 모든 블랙박스를 장착한 차량으로부터 저해 물체들의 위치 정보를 받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모든 도로에 세세한 도로 정보가 정밀하게 수록되었을 때 무인 자율자동차가 신뢰성을 가지고 시내를 활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화성시는 자율자동차 시대에도 선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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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처럼‘제주부터 시작하여 많은 비가 올 것이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다. 이런저런 일정으로 하루를 온전히 집에서 보내는 날들이 없었던 요즘, 텃밭을 돌보는 일이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돼지감자를 심겠다고 보내달라는 친구가 있어 돼지감자도 파야하고, 어중간하게 자라는 나무들도 베어야하고, 삐죽이 고개 드는 알뿌리 식물들의 주변도 살펴야 하는데… 잦은 감기로 힘들긴 하지만 오후부터 많은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 때문에 오전 시간을 텃밭에서 지냈다. 나뭇잎들을 걷어내자 반갑게 머위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겨울을 지낸 쪽파 몇 뿌리도 뽑아낸다. 친구에게 보낼 돼지감자를 찾아낸다. 웃자란 무궁화를 손질하고 수선화, 튤립, 히아신스, 백합 등 알뿌리 식물들의 주변을 정리해준다. 키가 큰 전정가위 둘, 호미, 갈고리 등을 챙기고 작은 전정가위는 호주머니에 넣고 한참을 밭에서 놀았다. 감기로 언제 피곤했던가 싶다. 부드러운 흙의 느낌이 좋다. 지난번 흙속에서 만났던 개구리들도 나왔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보랏빛 유채의 씨앗이 여기저기 흩어졌는지 질서 없이 올라오고 있다. 군락으로 있어야 좋은 것들은 한 곳으로 모아주어야 해서 터를 잡아 옮겨 심었다. 청화쑥부쟁이도 부지런하게 올라오고 있다. 올해도 나누어 줄 사람들이 생겨 잘 돌보아서 개체수를 늘여놓아야겠다. 작년에 얻어간 친구가 얼마나 예쁘게 그녀의 뒤란을 가꾸었는지 큰일을 한 듯 즐거웠다. 엊그제 꽃 친구인 미용사에게 청화쑥부쟁이를 나누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꽃을 나누는 사람끼리 만나면 꽃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각자의 화단에 있는 것들을 서로 교환하거나, 다른 이들은 없고 나에게 많은 개체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노력한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기까지 6시간을 텃밭에서 보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화단은 이 비가 그치면 돌보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약속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농기구들을 챙긴다. 마른 잡초와 감 나뭇잎을 걷어낸 텃밭이 단정하다. 어수선하던 마음까지 정리가 된 듯하다. 일기예보처럼 밤을 새워 비가 내린다. 미리 농기구들을 지붕 아래로 들이고, 비를 맞아도 좋은 화분들을 마당에 내어 놓는다. 우리의 인생에도 예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준비하고 대비할 시간들을 얻을 수 있도록. 최소한 갑자기 찾아온 어려움에 맞서 싸울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면 인생살이가 조금 수월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젊은 친구들을 상담하다보면 자신의 인생에 빨간불이 켜져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걸 본인이 깨닫기는 힘들다. 다행히 상담실에라도 찾아가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젊은 친구들의 빨간 불이 우리에게 보이듯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예보들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면 겨우 보이는 것들을 먼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봄밤에 이렇게 쏟아지는 비는 예고를 하고 찾아온다. 갖가지 전조증상으로 통보를 하는 까닭에 대비를 하고 기다리지 않는가. 살다 살다 만나는 다양한 사건들과 사람들, 그 때마다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많은 일정들 사이에서 건강하게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내 아이들에게 혹은 상담실을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한다.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기를 당부하지만 목표는 설정하고 살아가기를 권한다. 10년 후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모습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오늘 켜지는 빨간불을 조금 빨리 알아 챌 수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현관문을 열자 따뜻한 바람이 훅 나를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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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내판에서 읽는 하동역사(Ⅰ)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고하마을다목적회관 앞 2차선 도로를 건너 꾸불꾸불 흘러내리는 고하 물줄기 앞에 섰다. 앞뒤로 산등성이 내리고 산이 있으니 물이 흐르며 물이 있어 논에는 나락이 누런빛을 머금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풍년이 찾아왔고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갈 것이다. 물넘이 보(洑)에 물이 고였고 오리는 떼를 지어 헤엄치다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가 유연하게 좌우로 목 운동을 한다. 보위로 다리를 걸쳐 농로와 이어주고 농로는 들판을 지나 하나는 산을 넘어가는 길로 기름 바른 머리에 가르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하나는 동네 앞길이 되어 이웃 동네와 연결하고 있다. 주변 경치에서 시선을 앞으로 당기자 기와지붕에 몸체는 안내판이다. 제목을 ‘고하리 고하마을’로 적었다. 아래에 첩첩으로 연이어진 두 개의 산봉우리는 파랗고 뒤에는 흰색이다. 아래는 물이 휘감아 돌고 ‘대한민국 알프스 하동’의 글귀로 하동을 돋보이게 하는 브랜드이다. 상단에 붉은 인주로 古河라는 도장을 찍었다. 〈고하리 고하마을. 고하(古河)란 옛 하동이란 뜻이고, 그 지명은 1703년 현감 이만정(李萬楨)이 진답면(하동읍) 우령(牛領: 비파리 우치동)으로 이읍 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단군 때는 모래몰, 진국 때는 다사촌, 변한 때는 악노국, 대가야 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785년간 신다사촌, 한다사촌, 하동촌으로, 읍기는 고하에 있었고 268년간은 성내에 있었고 고하와 성내가 하동군의 읍기의 역할을 해오다가 1703년에는 고하동(古河洞)으로 불리다가 ‘골 洞’을 우리말 ‘마을’로 고쳐 古河마을로 이어져 왔다. 오래된 성씨로 936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공격할 때 하동에서 호장으로 있던 정도정(鄭道正: 하동정씨 시조)이 향병을 이끌고 공을 세워 단련사(州․府․郡에 설치한 지방관)가 되었다. 군지군사에 기록되었고, 후손 5世 국룡(國龍)과 6世 지연(芝衍)의 묘가 적량면 하곡(鰕谷)에 있고 7세 익(翊)때에 양주(楊洲)로 나간 것으로 되었다(하동군사)〉. 몇 줄의 내용은 엄청난 하동의 역사를 담고 있다. 한적한 길에서 이 같은 놀라운 사실을 보는 것은 의외이다. 마치 비밀의 문을 여는 호기심으로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한다. 역사는 그 시대의 눈으로 보고 익혀 오늘의 지혜를 찾는 것이다. 사료의 입체적 조사와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 중에 〈고하(古河)란 옛 하동이란 뜻이고〉에서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 16년(757) 9주의 이름을 고치고 군현을 소속시킨다. 강주는 오늘날 진주시(晋州市)이며 청주(菁州)를 강주로 바꾸었다. 강주에는 주치를 포함하여 ‘11군 27현’이 소속되어 있었다〉에서 하동군은 11군의 하나이다. 〈본서 잡지 제3 강주조(康州條). ‘11군 33현’이 소속되어 있다〉에서 縣의 차이는 경덕왕 16년 이후에 강주 굴촌현, 고성군 문화량현, 하동군에 성량현(省良縣) 등을 설치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경덕왕 16년에 9주를 비롯한 전국 고을 명칭을 중국식 2字 지명으로 개정되었다. 이때 ‘河東’으로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서기 757년을 시점으로 이전을 옛 하동이란 뜻으로 古河(고하), 이후는 하동으로 구분한 것이다. 소설 삼국지는 정사 삼국지(三國志)를 편집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우리말로 옮긴 중국의 소설이다. 시대적 배경은 후한 말 황건적의 난으로부터 오의 멸망까지 조조 유비 손권 등의 이야기이다. 하동이라는 지명이 수차례 보이고 있다. ① 이문열 1권 강역도, 서기 180년경 황하가 북으로 흐르다 동남에서 급격히 남으로 흘러 북동으로 흘러 서해로 빠져든다. 남에서 북동으로 바뀌는 지점에 하동군이 있다. ② 현덕이 고개를 돌려 그 사나이를 보았다. 당당한 9척에 수염 길이가 두자는 되어 보이고, 얼굴은 무르익은 대춧빛이요,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 하며, 봉의 눈에 누에 눈썹의 그 모습이 늠름하고 위풍당당 했다. “내 성은 관이며 이름은 우요, 자는 본래 장생이던 것을 고쳐 지금은 운장이라 하는데, 하동 해량이 고향 이오”(황석영 1권 도원결의). ③ 관우는 유현덕과 장비 앞에서 자기의 출신을 이야기 한다. “귀공들도 아시겠지만 우리 하동 해량땅은 예부터 소금으로 유명한 곳이외다. 그런데 5~6년 전 못된 토호 한 놈이 한편으로는 관부에 줄을 대고 다른 한편으로는 힘깨나 쓰는 건달들을 사 그 소금밭을 오로지하고 소금장수들의 고혈을 빨기 시작했소. 그래서 어느 날 술자리에 뛰어들어 모두 베어버렸는데 그게 관부의 쫓김을 받게 된 내력 이오”(이문열 1권 고목의 새싹은 흙을 빌어 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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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와 참모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오는 4월 10일 실시되는 22대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물밑에서 선거조직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부산하다. 일부 지인은 선거 기획 전문가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보도자료 작성뿐만 아니라 언론계에 발이 있고, SNS 홍보마케팅과 선거전략에 나름, 자질이 있는 사람을 요구한다. 나는 “그런 정도의 실력 있는 사람이면 대도시에 가야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웃어넘기고 만다. 그러면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도 괜찮으니 연결시켜 달라”고 부언한다. 필자는 이미 오래전 선거 관련 부탁을 받고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어 그 이후로는 사람 소개시키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또 그나마 실력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선거 일 자체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실제 현실에서는 자칭 ‘논두렁 선거 전문가’는 많아도 선거전략 전술 수립, 정보 수집 및 분석, 보도자료 작성, 논평 및 연설문 작성, 해박한 선거법 지식, SNS 및 전화 홍보마케팅, 홍보영상 및 선거 카피라이터 능력 등 선거 전반을 꿰뚫는 자질을 가진 전문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대도시도 아닌 중소도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너나 할 것 없이 선거철만 되면 각 후보는 제대로 된 선거 기획 전문가를 찾는데 골머리를 싸맨다. 수도권의 대형 선거기획사를 찾자니 지역 현실이 반영 안 된 모범 답안 같은 선거전략기획서에 형용할 수 없는 금액이 깨지니 선뜻 찾아 나서기가 두렵고, 비용을 아끼고 현지 맞춤형 선거를 하자니, 이빨 빠진 톱니바퀴처럼 삐거덕 거려 왠지 불안감을 줘 께름칙하다. 갈 길은 먼데 당장 눈앞에 닥친 선거를 치러야 하는 후보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선거 경험이 있는 후보는 그래도 지난 선거를 반추하여 성찰과 반성을 통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처음 경험하는 후보는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후보자)과 판매자(참모)의 자질과 능력이다.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제대로 마케팅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참모가 없다면 승리할 가능성은 엷어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을 제외한 영호남의 경우 소속 정당의 지역정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렇더라도 자기희생과 헌신의 자세를 가진 참모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참모를 잘못 얻어 선거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 당선으로 선거가 마무리되어도 선거법이나 선거 과정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폭로로 직을 잃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후보자가 참모를 선택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선거 참모의 조건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그 분석들은 충분히 참고할 만하고 염두에 둬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참모의 조건에 얽매이다 보면 삼국지 소설에 나오는 제갈량이나 사마의를 찾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를 일이다. 기본적으로 참모는 앞서 언급한 선거전략 전술 수립, 정보 수집 및 분석, 보도자료 작성, 논평 및 연설문 작성, SNS 마케팅, 카피라이터 능력 등을 다 갖추고 있는 사람을 참모로 영입할 수 있다면 후보자에게는 그보다 좋은 경사는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이 같은 능력을 다 가진 유능한 참모를 얻기란 쉽지 않은 만큼 일부 분야에서는 다소 능력과 자질이 떨어지더라도 필자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가진 사람이면 운명을 함께해도 될 참모감이라 본다. 첫째, 마음이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 마음이 바른 사람은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 영혼이 깨끗하고 마음이 맑은 사람이 배신, 변절, 반란을 일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참모를 영입하기 전에 그 사람의 살아온 과정을 눈여겨보고, 크로스 체크를 통해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지인의 소개, 가족 친지의 소개라 할지라도 현미경을 들이대야 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간 자신의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생각이 바른 사람은 알량한 권한을 독점하기 위해 타인이 후보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우(愚)를 범하지도 않는다. 참모들 대부분은 자기가 모시는 정치인에게서 나오는 권력을 독점할 요량으로 습관적으로 실력있는 사람이 접금하는 것을 차단하는 경향이 있다. 설사 정치적 관계가 아닌 인간관계에서도 마음이 바른 사람은 누구나 선호하는 사람이다. 둘째, 후보와 참모는 동지 관계여야 한다. 후보자 대부분은 참모를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고 ‘영입’이 아니라 ‘채용’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관계는 상하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동지의 관계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 ‘채용’의 관계는 지시하고, 지시를 수행하는 피동적 관계가 된다. 상하관계에서는 충분한 의견교환과 때로는 살벌한(?) 토론은 이루어질 수 없다. 굽실거리게 되고 후보가 좋아하는 ‘예스맨’이 되기 십상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예스맨’이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다. 동지를 얻지 못하고 채용하게 되면 가슴 조이는 것은 후보자다. 참모는 ‘뜨내기장사치’처럼 언제든지 전을 펼치게 되고, 유혹에 흔들릴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셋째, 참모는 ‘비관적 낙관론’을 가져야 한다. 참모는 늘 ‘비관적 낙관론’을 견지해야 한다. 가장 비열한 야생의 세계가 ‘정치권’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함과 공작, 협잡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것이 정치인이다. 후보자도 마찬가지이지만 참모는 후보자의 앞길에 있을지 모를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그에 적합한 해결방안을 마련해 둬야 한다. 후보에게 닥칠 예측 가능한 모든 비관적인 상황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비상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모라는 사람이 허구한 날 입버릇처럼 “잘 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되뇐다면 후보는 먼저 참모의 자질을 의심해 봐야 한다. 비관적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후보가 웃을 수 있도록 정치환경을 만들어 가는 참모가 1등 참모라 할 수 있다. 참모는 후보보다 더 멀리, 그리고 더 깊게 볼 줄 알아야 영광을 쟁취할 수 있다. ‘비관적 낙관론’은 참모가 가져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참모에게 나름의 전제가 있어야 하듯 후보에게도 최소한 세 가지 덕목은 있어야 한다. 첫째, 호불호를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후보자는 포크 페이스에 능통해야 한다. 흔히 선거 캠프의 진용을 보면 승패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진용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후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후보의 진심을 남들이 알 수 없도록 야누스의 얼굴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선출직에 임하는 후보가 핵심 참모는 고르고 골라 영입하든지 채용하든지 하는 것은 용인이 되지만 나머지 캠프 사람들에 대해 호불호를 선별해서는 안 된다. 후보가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내색하는 순간 이미 선거는 절반쯤 망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선거는 ‘종합예술’이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논두렁 선거 전문가’도 필요하고, 입이 가벼운 촉새도 필요하고, 그냥 내지르는 행동대도 필요하다. 심지어 ‘정치권 똥파리’도 써먹을 때가 있는 것이 선거판이다. 상대의 마타도어, 야비한 술책을 깨부수고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각양각색의 전술이 있어야 하고, 그 전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필요한 것이 선거전이다. 사람을 가려서는 안 된다. 꼭 불필요한 사람, 오히려 선거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참모가 알아서 자연스럽게 정리하도록 방관하면 된다. 둘째,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충성’은 ‘보상’에서 나온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보상이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비물질적 개념일 수도 있다. 후보 자신을 돕는 사람들의 목적이 제각각으로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면 된다. 인품으로 인자를 표시하고, 때로는 물질과 사랑으로 보답하면 자기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감동하게 된다. 선거운동원이 감동하면 그야말로 일당백의 힘을 발휘한다. 셋째,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만 줘도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 무지렁이의 말에도 지혜가 녹아 있을 수 있다.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를 설득하고, 교육하려는 자세는 정치인에게 금기 중의 금기에 해당한다.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고, 남을 가르치려 드는 순간 그 후보자는 리더의 자격이 없다는 혹평을 받게 된다. 남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그는 천상 정치인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다. 후보는 적어도 경청할 자신이 없으면 경청하는 척 연기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의 세계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약육강식 특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후보는 참모가, 참모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인 후보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