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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내판에서 읽는 하동역사(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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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을 안내판에서 읽는 하동역사(Ⅲ)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마을 안내판에 역사를 내용으로 한다면 바른 이해가 되게 해야겠다. 참고 문헌과 주도했던 사람, 협회명 등을 명기하여 심층학습이 되게 하자! 문헌 발견이나 유물의 발굴 등으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수정을 하였다면 안내문 역시 바로 정정해야겠다.

본문 중에 이읍 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에서 생각된다는 어떤 일에 대한 개인의 의견이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은 느낌보다는 기록과 자료를 통하여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개인 보다는 공공의 입장에서 서술해야 객관성과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마을 안내문을 읽는 사람은 역사의 전문가 보다는 길손이 많다. 끝까지 읽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흥미가 생겨야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사료를 뒤적이게 된다. 세상은 빠르게 달라져 자료 검색을 현장에서 손쉽게 할 수 있다. 안내문은 토씨 등을 고려한 앞뒤 문맥의 일치, 년도의 정확성 등 분야의 전문가 검토를 거쳐야겠다. 학문적 내용의 서술은 간결하면서 다툼의 여지가 없어야 하며 인용 등이 가능하게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달은 하나이건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고 달을 보았다고 주장을 펼치듯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야 역사적 사실로 인정이 되는 것이다. 실로 생각 된다라는 표현은 개인의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이해되는 바, 안내판에 쓰이는 표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진국 때는 다사촌, 변한 때는 악노국에서 진국의 존재에 대하여 설이 분분하다. 진국이 해체되면서 진한이 되었다 또는 후한서등에 진한 또는 마한, 변한이 진국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반면에 삼한의 형성을 진국과 무관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변한 때는 樂奴國에서 중국과 문자의 소통을 위하여 노래 또는 즐긴다는 뜻으로 중국 발음을 우리의 음으로 악 또는 낙으로 옮겼다. 樂奴國악노국으로 표기하고 있다.

악양 상신마을 윗담에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 실제 모델이 되었다는 조씨고가(趙氏古家) 대문 앞에는 고문헌 사진이 첨부된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상신마을 문화 탐방로. 상신 마을은 악양면사무소에서 1km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으로 부계마을, 서로 주암마을, 남으로 정서마을과 정동마을, 북으로 노전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정서마을의 위쪽 지역에 잘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새터몰(上新)’로 불린다. 정서리는 악양의 중심지이며 하동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된 마을이다. BC 5000년 금석병용 시대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었고, 삼한시대 변한 때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樂奴國)의 심장이었다. 정서리는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樂奴國)의 심장이었다.’는 확실한 표현이다.

악양면사무소에서 형제봉 밑으로 동네가 형성되었다. 돋보이는 마을 이정표에 봉대마을의 유래. 악양 땅은 2000년 전부터 선인들 삶의 모습들이 동이열전(東夷列傳)과 위서(魏書)에 나타나고 삼한 변한(弁韓) 12국의 하나인 낙노국(樂奴國)의 도읍지라고 명기되어 있는 오랜 역사와 유서 깊은 고장이다. 동이열전과 위서를 인용 문헌으로 낙노국의 도읍지라 하고 있다.

악양 개치마을을 지나 정자 앞 자연석에 깊게 새기고 바탕을 흰색으로 마감하였다. 대축마을 유래. 변한 시대 낙노국이었던 이곳은 오래된 마을이다. 본래 진주목의 악양 지역으로 둔위라 하였다. 향교가 있었고 1633년경에는 축촌(丑村)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종 28(1702)에 하동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축지리(丑只里)가 되었다. 악양현은 본래 소다사현(小多沙縣)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악양으로 쓰고 있으며, 오랫동안 진주목에 속했다. 고소산성 봉수대 및 요새지를 지키던 영진군(營鎭軍)과 왜군을 막기 위하여 월등히 많은 선군을 주둔했다.

악양의 3개 마을유래에서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樂奴國)의 심장, 동이열전과 위서에 나타나고 삼한 변한(弁韓) 12국의 하나인 낙노국(樂奴國)의 도읍지, 변한 시대 낙노국이었던 이곳은 오래된 마을이라고 여러 사람이 보는 돌에 새겼다.

문헌에는 樂奴國낙 또는 악으로 기록될 될 수 있겠다. 하동지역의 역사를 논함에 악양은 그리고 古河으로 표기다면 동시대 두 개의 樂奴國이 존재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나의 나라를 두 개의 국명을 사용한다면 이름에서 혼란이 생기게 된다. 낙노국이나 악노국은 같은 나라로 아는 소수에게는 문제가 될 수 없다. 하동역사를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나로 통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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