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하나

기사입력 2024.03.1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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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앞에서 파란 불이 몇 번 들어왔는지도 몰라. 차들이 꼼짝도 못해.’ ‘3월의 하동이 그렇지 뭐.’ 전화를 한 상대는 차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내게 꽃이 피기 시작한 계절, 그것도 주말에 움직인 건 너 잘못이지.’ 하는 것 같다.

    토요일 오후, 하동도서관으로 가는 길이다. 평소 관심이 많던 나무 칼럼니스트인 고규홍작가의 강의가 있어 다리 건너 매화 축제는 생각도 못 했다. 봄나들이로 하동이 붐비는 날들은 대부분 피하고 살았는데 북천면으로 이사를 온 뒤 잠깐 잊고 살았나 보다.

    길고 긴 행렬에서 빠져나와 골목에 주차하고 걸어서 도서관을 간다. 외장공사가 한창인 도서관은 입구까지 만차였고 반대편 도로엔 움직이지 못하는 차들로 처음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조금 시간을 여유 있게 온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결혼으로 하동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하동의 자연을 사랑한다. 처음 하동에서 살기 시작한 시절부터, 명소라고 이름표를 달고 있는 곳이든 그렇지 못한 곳이든. 내 아이들의 고향이 하동이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돌아와 살고 싶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섬진강변을 놀이터 삼아 그 울창한 송림을 배경으로 자랐다.

    내가 말이 많은 것이 아니라 나무들이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거예요.’ 약속한 강의 시간인 3시간도 모자라 선생님은 자꾸 나무를 핑계 대고 계신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궁금한 것들을 자꾸 묻기 시작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나오니 아직도 도로는 차들로 가득하다.

    요즘엔 하동송림이 휴식년제를 하지 않나요? 저는 전국을 다니면서 하동송림을 자랑하고 있는데그리고 갑자기 솔방울이 많아진 이유에 대하여 듣고 더 놀랐다. 식물이 자신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우거나 자손을 남기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우리가 가진 귀중한 것들의 가치를 모르고 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 휴식년으로 하동송림은 많이 회복되고 더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하면 대대손손 물려 줄 송림으로 지켜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가들이 나무를 심고 가꾸었던 사례들을 듣고 어느 이야기보다 감동적이었다.

    특히, 우리 지역 평사리에 있는 위민정 푸조나무는 더 그랬다. ‘위민정이라는 정자는 어디 있나요?’ 강의 중 누군가 물었다. ‘정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나무 아래에서 쉴 수 있도록 나무에게 붙혀진 이름이예요. 다음에 평사리 가시면 꼭 찾아가 보세요. 주차장 좁은 골목길에 있어요. 보호수로 지정하고 팽나무라고 했지만 사실은 푸조나무랍니다.’ 그 말씀을 받아 동네에선 그 나무를 할매나무라고 불러요. 위쪽에 있던 할배나무가 죽어버렸어요.’ 한다. ‘요즘도 당산제를 지낸 것 같아요. 금줄이 처져 있는 걸 보면최참판 댁만 열심히 들락거리면서 안부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푸조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 최고의 물푸레나무를 찾아 개인 자격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까지 한 노력에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한 번도 피지 않았던 꽃을 보여주었고 관리가 들어가 환경이 좋아진 이후론 해마다 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말 못하는 나무라고 우리가 함부로 할 수가 있는가.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를. 반가운 사람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악수를 하고 안아주듯이 나무를 만나면 인사를 건네고 안아주기로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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