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교 그리고 성평마을

기사입력 2024.02.0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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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성평리 앞을 흐르는 주교천 둑길에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성평권역 배드리길 星坪里’ 안내판이 있다. 오리가 몸통을 기둥에 붙이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나무로 머리와 목을 다듬어 몸통에 끼우고 다리 겸 막대를 안내판 상단에 고정하였던 것이다. 막대가 떨어져 나간 오리 몸통을 기둥에 걸쳤는데 부리는 먹이를 목으로 넘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아, 솟대는 사라지니 오리는 앉을 곳을 잃었구나!

    솟대는 새해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입구에 수호신의 상징으로 세운 긴 나무 장대이다. 삼한 시대 소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장대 끝에 나무로 만든 새 조각이 있는 모습이다. 지방에 따라 소줏대, 솔대, 별신대 등으로 불리며 진또베기는 강원도 지방에서 솟대를 일컫는 방언이다. 솟대의 새는 주로 오리로 만들었다. 오리는 물위를 떠다니기 때문에 홍수가 나도 마을이 안전하다. 옛 마을은 초가집으로 밀집되어 불이나면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불을 지르는 귀신이라도 마을 입구에 있는 오리를 보고는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바램이다. 오리는 짝짓기를 하면 어느 한쪽이 먼저 죽어도 다른 짝을 만들지 않는다 해서 영원한 인연을 뜻하고, 새끼를 잘 돌봐서 가정의 평화와 부부 사이의 사랑을 상징한다. 성평리 안내판 상단에 솟대를 세우고 오리를 앉혔는데 바람을 받은 오리가 솟대에 비틀림을 주어 솟대와 분리된 것이다. 고하마을 안내판의 상단에 솟대는 떨어져 나갔고 오리는 날아가 버렸지만 솟대를 지지하였던 손가락 길이의 두 개의 금속지지대는 남아 있다.

    안내판 좌측 하단에 배드리왕비길, 배드리수변길, 배드리읍성길, 배드리숲길 등에 색깔을 달리하여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성평리는 금오산을 등지고 고전면의 동쪽에 그 동쪽으로는 진교면과 남쪽으로는 금남면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는 고하리 죽전과 주성・흥평(興坪)과 이웃하는 행정리이다. 성평리는 신석기 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여겨지며 대기야(250년) 때 고하리에 하동군의 읍기가 옮겨지면서 고하리와 하동군읍기 일원으로서 역사가 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측 상단에 방위표가 있다. 시계의 1시와 7시를 세로축으로 4시와 10시를 가로축으로 하고 1시는 南이고 7시는 北 그리고 4시를 西이고 10시를 東쪽으로 보여주고 있다. 방위표대로 읽으면 주교천은 성평교 밑에서 北西로 배드리공원 앞에서 방향을 西로 급격히 돌아 南西로 흐른다. 왕비샘은 서쪽에 있고 성평샘은 동쪽이다? 안내도와 나침반을 정치하면 위는 北이고 아래는 南으로 우를 東으로 좌를 西로 된다. 왕은 남향하니 왕의 좌는 東이요 우는 西이며 아래는 南이고 뒤로는 北이다. 명당을 고를 때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를 살피고, 색으로 구분하면 東은 푸른색 西는 흰색, 南은 적이고 北은 검은 색이다.

    성평교 건너 안내판에 〈마을안길 이야기. 성평마을은 예부터 많은 돌로 담을 쌓고 살았으며 복잡하고 긴 마을 안길도 돌담으로 되었다. 그래서 골목길이 협소하고 노면도 돌과 자갈이 많고 불편하던 길을 1960년 새마을 사업으로 1차 정비를 하였고, 1990년대 후반에 폭 4m로 웃물샘까지 자동차가 운행할 수 있도록 시멘트 길로 확장 포장되었다. 마을 돌담길과 징검다리, 물레방아는 이 마을 작사가 정두수의 노랫말에도 나오는 것으로 마을의 옛 모습을 말해주는 대목인데 이후로는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다〉. 건너편 금오산 케이블카를 타면 너더랑에 닿을 듯하다. 성평리는 금오산을 등지고 터를 잡아 돌이 많아 돌담이 되고 열을 받은 돌이 밤에 토해 내면서 결빙 되어 물이 풍부하여 옥토로 되고 물레방아를 돌리게 된 것이다. 이름마저 성평(星坪)이라 별을 가까이 하고 넓은 들이 있는 것이다. 마을 젊은이들은 꿈을 갖고 이루려 한다. 예전에는 골목마다 돌담길이며 징검다리를 건너고 물레방아는 추억을 돌렸다. 이제는 사진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자!

    안내도에 웃물샘 표시가 없지만 왕비샘과 가로로 연결되는 성평샘은 지붕으로 보호를 받고 있지만 뚜껑으로 덮어 맑은 샘물 맛을 볼 수 없다. 그 옆에 연자방아 받침돌 가운데에 사각 홈이 있다. 담으로 둘러싼 비석의 비두는 원형 기둥으로 받치고 앞면에 하동정씨사열부기적비(河東鄭氏四烈婦紀積婢)이다. 烈婦란 절개가 굳은 여자를 말하는데 4명의 열부에 대한 공덕을 기록하였다. 옆면과 뒷면은 접근할 수 없다. 안내판에 공덕을 한글로 옮겨 오가는 사람 느낌을 갖도록 하자!

    성평교를 건너는데 나훈아 특유의 꺾기로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되돌아보며…’라는 가락이 주교천 위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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