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에 미쳐 결국 한곳에 미친 사람

기사입력 2024.02.0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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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전남 장성군에 축령산(높이 621미터)이 있다. 그곳에 미친 사람 한 사람이 살았다. 독림가(숲을 조성하는 사업가) 임종국씨 덕분에 전국적 명소가 되었다. 젊을 때 군산에서 원산으로 출장 가면서 헐벗은 강토를 직접 목격했다. 가슴이 쓰렸다. 60년대에는 미국 정부가 파견한 공무원으로부터 산림 황폐화의 심각한 후유증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나무가 없으면 산에서 토석이 흘러 내려와 농토를 덮쳐 결국 국토가 황폐화 된다는 경고였다.

     

    살고 있던 동네 근처에는 편백을 잘 가꾸어 놓은 곳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는 편백을 심기로 결심하게 된다. 편백을 40대 중반부터 20년간 꾸준히 심었다. 편백 씨앗을 채취했다. 자가 묘목장에서 이 씨앗을 발아시켰다. 여의도 2배 정도의 넓이에 편백 약50%, 삼나무 약30%를 심었다. 심은 묘목의 수가 280만 주가 넘는다. 어린 나무 주위로 배수가 잘되게 고랑을 파 준다.

     

    68년은 지독한 가뭄이 왔다. 어린 나무들이 시들시들 죽어 간다. 물지게를 지고 깊은 산속까지 물을 져다 날랐다. 목마른 어린 나무들에게 물을 줬다. 물 한 짐을 지고 한 시간 여 동안 산 위로 걸어 간다. 그 물로는 50그루도 채 못 준다. 식구들 마다 어깨에는 피가 난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미친 짓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묵묵히 한 방향으로 만 가는 임씨를 보고는 동네 사람들도 서서히 공감하기 시작한다. 밤늦게까지 산에 물을 져다 나를 때 횃불을 밝혀 주기도 한다. 멧돼지 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징을 쳐 주기도 한다.

     

    묘목을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조림 과정에서 인건비 등 운영자금이 모자랐다. 나무를 잘라 팔지는 않았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살점 같은 산을 남의 손에 넘겼다. 임 선생은 죽으면서도 산에 나무를 심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73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당대에 덕을 보지 못해도 후회하지 않았다. 정부는 민간인들 소유로 되어 있던 편백숲을 사 들였다. 산림청은 이곳을 전국최고의 임업 경영 성공사례로 개발시켰다.

     

    편백은 키가 높게 자란다. 임목축적(단위 면적당 나무들의 모든 체적)치가 다른 수종에 비해 크다. 단위는 사방 100미터(헥드알) 당 몇 입방 미터(m3)냐로 따진다. 일본이 145, 독일이 268 이다. 축령산 천연림이 101, 인공림이 250이다.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로 유명하다. 편백은 향기로운 냄새를 낸다. 꽃꽂이 할 때에도 향기가 좋아 편백잎을 사용한다. 피톤치드는 역겨운 냄새를 잡아 준다. 피톤치드를 몸에 많이 쪼이면 면역력 증진, 불면증 치유, 스트레스 완화 등에 효과가 있다.

     

    결국 한 곳에 미쳤다. 한국인으로 최고 독림가 반열에 올랐다. 72년도에는 5.16 민족상을 수상했다. 산림청은 춘원 임성국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선영에 묻힌 임 선생의 유해도 부인과 함께 축령산 수목장에 안치했다. 죽은 후에도 가르침은 후세에 전해진다. 축령산 편백 힐링 숲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독림가의 염원을 느끼곤 한다.

     

    편백 숲을 걸을 때, 이 숲을 가꾼 이를 생각하라. 묘목을 심을 때 마음을 아로새겨 봐라. 이 나무를 보는 이에게도 기쁨과 유용함 그리고 교훈을 주고자 하였다. 조림이 잘된 이곳을 보고 돌아가서는 각자의 거주지 주변 임야도 조림을 잘하였으면 좋겠다라는 선각자의 염원을 느낄 수 있다. 산림에서 힐링을 즐기는 애용자들은 고마움을 느낀다. 나무와 대화를 할 수 있다. 나무를 어루만져 준다. 나무와 교감한다.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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