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고하초등학교

기사입력 2024.02.0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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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짙은 파란색 2층 건물에 좁은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현관은 3층으로 이어져 옥상에서 사방을 살필 수 있는 전망대의 모양이다. 창문이 닫혀 자유스런 학교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넓은 마당은 잔디와 나무로 조경을 하였고 사이사이 산책로를 열어놓았다. 좌측으로 소녀상이다. 리본을 두른 챙 넓은 모자의 오른쪽 뒤를 눌러 왼쪽 얼굴의 이마까지 열렸고 귀를 덮은 머리를 양쪽으로 내렸다. 오뚝 솟은 코끝은 세월에 맡겨 떨어져 나갔고 상체는 가늘다. 무릎 위에 두 손으로 책을 펼쳤고 신을 벗은 왼발을 오른발 무릎에 얹었다. 하단에 ‘독서는 마음이 양식’이라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조금 떨어져 대리석 직육면체 위에 자연석을 세우고 세로글씨로 ‘고하초등학교 옛터’를 깊게 새겨 무궁한 세월 동안 유지되겠다. 하단 중앙 오석에 가로글씨로 〈배움의 옛터. 이곳은 유서 깊은 고하의 옛터에 자리 잡은 고하초등학교 옛 터전입니다. 개교 이래 반세기 동안 힘써 배우고 몸과 마음을 닦아온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입니다만 급변하는 사회로 취학 어린이 감소를 가져 왔고 국가 시책에 따라 고전초등학교로 통폐합되었습니다. 고하 2500여 동문 여러분! 정든 교정에서의 천진난만한 꿈은 자랑스러운 고하인으로 자라나 이제 이 나라의 동량재로서 그 직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들이 마음껏 뛰놀았던 배움의 옛터를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이 기념비를 세웁니다. 고하초등학교 카페주소: http://cafe.daum. net/GoHa. 2010년 4월 25일 고하초등학교 동문 일동〉. 카페주소를 기록한 것은 오늘을 바로 보고 앞을 내다보는 지혜로움을 엿 볼 수 있겠다. 뒷면에는 (구)고하초등표지석 협찬 명단을 ‘9회 차정홍 부터……25회 김복순’으로 중간에 1회 및 32회 등의 명단도 보인다. 이름으로 마감한 것은 동문들의 일체감을 보여준다.

    고인돌을 보기 위하여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면서 살펴본다. 흙으로 돋우고 잔디를 심고 여기저기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 정자를 세웠고 주변에 장독대를 진열하여 마음 편하게 걷다가 앉아 쉴 수 있게 하였다. 미루어 보건대 운동장을 공원으로 꾸미고 교실을 새로운 용도의 건물로 꾸민 것으로 짐작된다. 멀찍이 남새밭에 흔한 바위 하나 볼 수 없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사택에 교장이나 먼 거리 교사들이 생활하였다. 남새밭에 채소를 심어 반찬거리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오른쪽 구석에 숙직실로 사용되었을 집이 있다. 마당은 잡초로 무성하고 울타리는 없지만 범의 석고상이 있다. 운동장 조례대 옆 화단이 정위치 이련만 이곳에 있다! 시멘트 받침대에 범의 발은 고정되었는데 평평한 바위 위에 놓여 옮겨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머리는 쳐들고 눈에는 안광이 뿜어 나오고 입은 벌려 호흡을 조절하고 오른쪽 앞발은 앞으로 내밀고 뒷발을 숙이고 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주변 상황을 살피면서 살금살금 접근하다 덮칠 기세이다. 뒷발 앞에 ‘증 82년 입학기념’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입학 기념으로 기증은 아주 드문 경우이다. 입학과 동시에 6년 동안 보고 만지고 느끼며 배워나가는 앞을 내다보는 값진 학습 자료가 될 수 있겠다. 1982년 입학생은 아마도 범띠가 아닌지!

    눈길을 끄는 바위가 있다. 범의 석고상 옆에 검은 색의 반원모양 기둥 바위가 엎어져 있다. 직경은 3보, 길이는 5보 정도이다. 보고 둘러봐도 예사롭지 않다. 이것이 입으로 전해오는 고인돌인가! 건물을 지을 때 멀찍이 옮기거나 부셔버려도 되겠는데 존재감을 보인다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확인을 위하여 현관문을 두드리자 직원이 노인요양원이라 외인출입금지 구역이란다. 고인돌에 대하여 문의할 것이 있다고 하자 이 학교 출신의 여직원을 불러준다. 학교에 고인돌을 보거나 듣지 못했단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인돌은 몰라도 개구리 바위는 있다.”면서 그 바위로 안내하더니 올라가 놀았다고 기억을 되살린다. 맞은편 산 이름이 뭐냐 묻자. 노인들이 노적가리처럼 생겨 소오산이라 한단다. 소녀상 뒤쪽에 쇠파이프 기둥을 세우고 철사로 그물로 엮고 등나무를 올렸다. 가지가 얽혀서 짙은 그늘아래 의자에 앉아 더위를 피할 수 있겠다. 기둥에 몇 겹의 등나무 줄기가 감고 감아 기둥이 보이지 않지만 기둥이 없으면 그렇게 되지 못했겠지. 동문들이 끌어주고 밀어주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고인돌은 볼 수 없었지만 입학과 동시에 보고 배우는 입학 기념물을 마련하였다. (구)고하초등학교 표지석 협찬자에 금액을 제외하고 접수순으로 기수와 성명을 기록하였다. 카페주소를 소개하여 동문의 결속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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