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아래

기사입력 2024.01.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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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야, 아이가 울면서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어.’ ‘?’ 나도 덩달아 놀란다. 부모에게서 떠나보내야 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앞에 없는 자녀 때문에 항상 불안해한다. ‘아이를 잘 돌봐준다던 그 선생이 우울증이 있었나봐.’ ‘그래? 죽기라도 한거야?’

    새해부터 무슨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조카를 살뜰하게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다고 동생이 얼마나 고마워했는데더구나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조카의 충격을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난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파하며 견뎌내어야 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서로 말을 아꼈다.

    감성적인 성향이 짙고 예민한 성격 탓인지 친정 형제들과 나는 불안이 많은 편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기저귀 가방이 필요 이상으로 컸고, 지금도 여행 가방을 챙길라치면 다른 사람들보다 챙기는 물건도 더 다양하다. 그런 부모들 아래 자란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걱정은 더 많아졌다. 감정적으로 힘든 일을 경험하고 아이가 느꼈을 강렬한 반응의 경험은 그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아직 사회생활에 미숙하고 합리적인 대처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인지라 더 그렇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아이에게 가기로 했다는 동생의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었지만 종일 마음은 조카를 향해 있었다. 어쨌든 아이를 데리고 와서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문상을 다녀오고 아이를 데리고 왔겠지 미루어 짐작만 할 뿐 먼저 전화를 하지도 못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은 그저 기다려 주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가슴이 먹먹하다. 산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상담공부를 시작하고 교육을 다니고 수련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가진 아픔들을 만났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젊은 친구는 대기업을 다니던 인재였다. 어느 날 길을 가다 만난 사건으로 지독한 트라우마를 경험했고, 그 트라우마 치료를 계기로 상담사가 되었다. 건물에서 뛰어내린 젊은 여성이 자신 앞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될까. 달려가서 그 사람을 안았을 때 아직 살아있었고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면

    지금은 아이 둘을 키우는 씩씩하고 건강한 엄마가 되어 있지만, 아직도 울면서 이야기하던 그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얼마나 오랜 시간 그 아픔을 견뎌내야 했는지, 얼마나 힘들게 그 과정을 지나왔는지 알기 때문에 조카 녀석이 받을 상처가 걱정스럽다.

    동생의 전화를 받고 얼마 전 구입한 힐러리 제이콥스 헨델의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를 다시 찾아든다.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는 감정중심 심리치료라는 부재가 붙어있는 이 책에는 여기저기 역삼각형 그림이 나온다.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며, 감정을 잘못 처리하면 어떻게 우울증 같은 심리증상이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그림이다. 대충 읽고 넘겼던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정독을 시작하려고 한다.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 또 받으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되도록 그런 상처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좋겠다. 내 감정을 억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방어기재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에서 진정한 자기의 열린 마음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역삼각형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핵심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려서 평온하고, 호기심 있고, 연결되고, 연민을 느끼고, 자신 있고, 용기 있고 명료한 상태가 되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조카 녀석이 좋아하는 바닷가에서 햇볕을 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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