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재 마루에서 일기마을까지(Ⅱ)

기사입력 2024.01.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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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주교천 사이에 두고 풍년을 담은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양보면사무소 지나 건강미 넘치는 검은 원형돌에 양보체육공원을 새기고 깍은 돌에 양보 역사와 취지의 명문장을 볼 수 있다. 체육공원 면민의 뜻으로 세운다. 그 옛날 우리의 조상님이 살아왔고 우리들의 후손이 살아갈 이 땅 양보면은 신라시대 한다사군이요, 고려시대 하동현하동군에 속한 곳이며 조선 시대 서량곡면(西良谷面: 통정리, 운암리, 박달리, 지례리)과 외횡보면(外鐄甫面: 장암리, 감당리, 우복리)를 합쳐 1914년 양보면(良甫面)이라 칭하여 삼재(三災:수해. 한해. 풍해)가 적은 중산간지대로 비옥한 땅과 완만한 산지로 살기 좋은 곳으로 청동기시대부터 살아온 흔적이 체육공원 조성으로 문화재(돌칼, 무문토기, 유구석부, 부리형석기 등 출토) 발굴로 알려져 온 기름진 땅위에 인심이 후하고 서로 돕고 사는 미풍양속과 충과 효의 고장으로 그 기상을 드높이고자 면민의 하나같은 마음의 뜻을 모아 이곳에 체육공원을 세워 한해가 가면 한그루, 한그루 나무가 면민의 정성으로 심어져 울창한 숲속에서 심신의 단련, 표상이 되리라 믿는다. 세월의 흐름 속에 푸르고 빛나 우리의 터전이 길이 보전되어 서로 마음의 안식처와 국가 동량(棟梁)으로 양보인이 더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큰 뜻으로 면민 모두의 마음으로 여기 담아 둔다. 2011. 양보면민일동. 뒤로는 양보야구장이다. 면소재지에서 야구장을 볼 수 있다!

    맞은편에 주교천을 배경에 두고 공원이 조성 되었다. 입구 오른쪽에 기다란 자연석 세움돌에 良甫公園이라 깊게 새겼다. 뒷면에는 여기 양보공원은 우리의 생명선 주교천 확장공사 할 때 휴식공간으로 조성하였으며 이어서 체육공원까지 조성하였다. 2005년 정월대보름. 왼쪽에 명물 중에 명물로 손색이 없는 천년을 물에 씻기면서 지상으로 나온 자연석이다. 기단 위에 얹었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보이고 같은 사람 눈에도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겠구나! 그야말로 양보면민과 인연이 있어 나타난 것이다. 나의 눈에는 꼴을 충분히 먹은 어미 소가 젖꼭지를 물리려고 놀고 있는 송아지를 지켜보는 형상이다. 앞면에 우리의 터 良甫라 새기고 뒷면에 을유넌(2005) 정원 대보름 대내외 양보면민 건립이다. 주교천 확장공사에 홍수범람을 막기 위하여 저류지 조성으로 공원을 꾸몄는데 어울리는 표석이다. 는 밭에 풀을 심은 모양을 본 떠 채소밭을 뜻하며 음이 와 통하므로 남자의 미칭(美稱)으로 빌려 쓰는 글자로 良甫는 뜻이 깊고 부르기 좋은 지명이다

    잘 보이는 중간지점에 대리석의 볼록한 사각형 탑 중앙에 충혼탑(忠魂塔), 꼭대기에 오석의 구슬을 올렸다. 뒷면에 한국동란 유공자 공경석(장암리)부터 황세원까지 70명의 명단을 새겼다. 황세권과 황세원은 혈연관계로 보인다. 옆면에 항일독립 유공자 7, 향토방위순직자 8명의 명단을 새겼다. 오석에 청동기 시대부터 살아온 우리 땅은 충렬과 효의 고장이다. 근대사에는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항일독립운동을 하신 애국의 혼이 깃든 고장이요 한국동란에는 조국을 지킨 애국의 혼이 깃든 충절의 고장이며 고향을 지키다 순직한 님의 넋이 담긴 땅이다. 한 분 한 분 소중하신 고매한 혼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차가운 빗돌에 우리 면민 모두의 정성과 마음을 담아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고 고향사람을 길이 받들고자 충혼탑을 세우오니 충혼의 님들이시여! 저 하늘에서 고운 날개 달으시고 평안히 영면하소서. 2017.6.6. 호정 김진권 쓰고 진강 성금성 짓고 면장 송원주 면민의 정성을 모아 세우다.

    주교천 따라 내려가다 삼거리를 만난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자 도로변에 긴 대리석을 세우고 일기마을과 방향표 까지 새겼다. 마을을 사랑하는 세 사람이 기증하였다. 마을 입구 일기마을회관 담 밑에 귀중한 자료 두 조각과 기둥이 널려있다. 한 조각은 파란 기와지붕 아래 왼쪽에 세로글씨로 명교리 일기 마이다. 아래 조각에서 자를 맞출 수 있고 산과 들의 하동군 브랜드를 볼 수 있다. 아래 조각의 밑은 비에 흙이 튕겨 글자를 읽기 어렵고 위쪽을 겨우 읽을 수 있다. 명교리 일기마을. 갈마산(渴馬山) 자락에 도로변을 따라 남향으로 펼쳐져 있는 날더리(日坪)와 옛날 관리들이 살았다는 안터(內基) 두 마을을 합처 일자(日字)와 기자(基字)가 합쳐 일기(日基)가 되었다. 양보면 가락마을에서주교천에 유입되는, 동쪽에 범바구산○〉. 끼워 맞추어 세우면 제 모습을 찾고 먼지를 털어내면 유래를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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