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보내는

기사입력 2024.01.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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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시상식장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보내온 지인이 있다. 오래전 경남을 떠난 사람이지만 그 시절을 잊지 않고, 또 나를 잊지 않고 연락을 주어서 고맙다. 지역 축제장이나 문학 행사장의 백일장이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던 시절, 아이들은 여기저기 낙서를 해댔고 야외에서는 흙을 파와서 내 앞에 부어놓고 깔깔대기도 했다. 지인이 보내온 사진에는 손녀보다 어린 개구쟁이 내 아이들이 있다. 엄마라는 이름이 행복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시간은 누가 가져갔을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새로 시작하는 날 앞에서 허둥대는 나를 찾는다. 쫓기듯 살고 있는 후배에게 조금 천천히 가보면 어떠냐고 물어본다. 무엇인가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있어 계속 새로운 도전거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 후배에게 물었지만 그 물음은 어쩜 나에게 하고 싶은 물음이었는지 모르겠다.

    크게 이루어 놓은 것도 내세울 것도 없지만 간간이 치열했고, 간간이 힘들었고, 간간이 행복했다. 그런 나에게 지금부터라도 친절해지기로 한다. 오지랖이 넓어 아직도 마음을 나누는 곳이 많고, 찾아와 손 내미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라서 가끔은 다행스럽고, 그런 사람이라서 가끔은 힘들다.

    지난 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도 있고 끝나는 것도 있다. 새해에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건 힘들었던 마음을 덜어낼 수 있도록 하려면 나를 먼저 돌보아야 한다. 지치지 않도록 보살피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맏이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일찍 외국을 나간 언니로 하여 스스로 맏이가 되었던 나를 만난다. 지금껏 모르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찾아낸다.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관찰하다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처받고 힘들었던 나의 모습을 찾아내고 스스로 놀라는 일들이 있다. 그런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위로해 주어야 한다. 우리 각자가 품고 있는 내면아이를 성장시키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새해에는 지쳐서 울고 있는 나의 내면아이를 성장시키는 해로 만들어 가야겠다.

    편안한 내 모습이 타인에게 비춰질 수 있어야 그들도 안심하고 마음을 열어 보이려 할 것이다. 내가 가진 불안이 그들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나를 다독이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또 그걸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꽃을 좋아하고 흙 만지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꽃이 없는 화단이 을씨년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마당을 안타까운 맘으로 지나치는 유일한 계절이 겨울이다. 이 계절에도 꽃이 보고 싶어 동백을 몇 그루 심었으나 이상하게 살아남지 못했다. 요즘 들어 종류도 다양하고 색깔도 다양한 동백에 빠져 동백꽃 사진을 자주 보내오는 여동생은 새로 짓고 있는 자신의 시골집에 동백을 심고 싶단다.

    일찍 마당에 나서면 서리가 하얗다. 잎이 떨어진 나무들로 울타리가 휑하다. 어둠이 내리면 대문이라고 문고리를 걸어보지만 내 집은 훌렁 벗고 있는 계절이다. 그나마 조금 다행스러운 것은 남천이 빨갛게 열매를 달고 작은 담벼락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다.

    새로운 봄날이 오면 사철나무를 심고 싶다. 일 년 내내 푸르고 일 년 내내 변하지 않는 상록수 몇 그루를 심을 예정이다. 하지만 또 모르겠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겨울은 또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망각이 제일 무섭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망각은 꼭 필요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힘든 일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날에 허황된 희망이라도 품어 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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