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재 마루에서 일기마을까지

기사입력 2024.01.0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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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황토재 마루이다. 받침돌 위에 人心 좋은 마음의 고향 北川이라 새겨 시선이 끌리는 자연석이다. 걸어서 넘나들던 시절에는 산길이 험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여러 사람이 모여 넘었다. 자동차 길을 내고 바퀴에 발품을 빌리던 초창기에는 힘이 부친 차를 내려서 밀기도 하였다. 성능이 좋아져 노인도 자가용으로 쉽게 넘나들 수 있고 최단 거리로 경사 없는 터널을 뚫었다.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온다. 황토재 마루에 번창하던 주유소는 간판을 검은 천으로 씌우고 바람에 펄럭이지 않게 아래를 끈으로 묶었다. 울타리 안에 굵고 긴 철제기둥을 세우고 사다리를 부착하였다. 꼭대기에는 안전장치를 둘러 작업이 가능하며 전파송수신장치로 추측해 본다.

    서촌으로 급경사를 내려간다. 비파마을 지나자 시야가 넓어지고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비탈길이 조금 완만한 곳에 버스정류소가 있다. 네 개의 테크 기둥은 퇴색되었고 천장은 겨우 비를 피하고 전면 상단에 서촌구석몰길 131517, 세로 표지판 상단에 Bus Station 아래는 원형 도형에 버스전면 그림, 그 아래는 버스정류장 피파서촌하성, 안에는 자형 나무 의자, 뒷면은 투명판으로 넓은 들이 펼쳐지고 철로를 볼 수 있다. 지금의 비파마을을 예전에는 피파마을로 불린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길목에 이순신백의종군로 표지석이다. 현재 위치에서 비탈길을 걸어 느티나무 앞 정자에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어 사평소류지를 지나, 이명터널 위로 고개를 넘어 북천사 지나 사평 새마을회관까지 가는 산길구간 2.2km 노정이다.

    철길 따라 가노라면 하성마을 세움돌이다. 이정표를 끼고 오르막을 오르면 분수대, 휴게소, 화장실 등으로 단장한 ()양보역이다. ()북천역에서 손님과 레일바이크를 운반하면 손님은 레일바이크로 이동하며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이다. 이명터널 입구를 송곳니가 뚜렷한 범의 입을 그렸다. 그 속에 들어가 별천지를 보면서 페달을 밟는 경험은 추억이 될 것이다

    다섯 길 높이의 다리발을 세우고 콘크리트 수로를 걸쳤고 밑을 지나면 느티나무 아래 한반도 지형을 닮은 돌에 신전마을을 새겼다. 정자에 할머니들이 대처에 나가 있는 자녀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홀로 할아버지는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먼 산을 보며 담배연기를 올리고 있다. 입담 좋은 할머니는 점심은 공동 취사하여 정자에서 식사를 하는데 쌀과 반찬은 하동군에서 지급되고 있단다. 좁은 길로 버스가 다닐 적에는 마을 안으로 길이 있었다. 백의종군하는 이순신도 그 길에 흔적을 남겼겠는데.

    황토재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신이 나서 여자 비단장사가 황토재를 넘는데 으슥한 수풀 속에서 험상궂은 도둑이 나타났거든, 여자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중얼거리면서, 도둑에게 가진 것이 많은 쪽이 재물을 내어 놓자고 제안을 한다. 도둑은 손해 볼 것이 없는지라 승낙하고 하나씩 하나씩 꺼내는기라, 여자는 치마와 저고리도 여러 겹이고 옷고름도 많아 풀어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도둑으로 태어나는 도둑은 없지 차츰 사람이 되는거라, 마침내 여자는 목숨을 건지고 도둑은 재물을 차지하여 새 삶을 찾았다오!”

    횡천에서 들어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 장암교가 있다. 물이 흐르니 다리가 있고 다리 밑으로 주교천이 흐르는 것이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지방하천 주교천안내판이고 그 옆에 이순신 백의종군로 표지석이 있다. 주성마을 회관에서 출발하여 양경산성을 지나 소여곡 소류지와 중단이재를 넘어 장암교의 현재 위치까지 꼬불꼬불 산길구간 4.4Km이다. 주교천은 상하장암까지 남으로 흐르다 중단이재를 만나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산을 넘지 못하니 굽이굽이 흐르는 구나! ‘소여곡 소류지는 오늘의 지도에 소녀곡 소류지로 세월 따라 달라짐을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은 백의종군길에 하동읍성에서 2일을 머문다. 난중일기 1597.5.28. 무오.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하동현에 이르니 하동 현감(申秦)이 만나 보기를 반기어 성안의 별채로 맞아들여 매우 정성을 다하였다. 5.29. 기미. 흐림. 몸이 너무 불편하여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대로 머물러 몸조리를 했다. 6.1. 경신. 비가 계속 내렸다. 일찍 출발하여 청수역 시냇가 정자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였다. 백의종군로는 원수부로 곧장 가야하므로 이순신은 하동읍성 북문 산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교천은 장암교를 지나서 남으로 꺾어 악양초등학교 앞에서 통정천을 흡수하여 동남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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