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Ⅱ)

기사입력 2023.12.18 16:38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금오산은 전설을 담고 있다. 옥황상제는 지구에 온 기념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지상에서 제일 높은 33000(1만미터)로 올려 지구를 다스리는 천제봉으로 삼으려 했다. 옥황상제는 강계바다신 상두복회에게 주변의 산들과 바다 밑을 올리라 한다. 갯벌을 세 갈래로 퍼 올려 금오산을 10000(3천미터)로 올리기로 하고 주문을 외어 이명산이 솟아오르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금오산의 뫼봉우리를 10000자까지 높여 지리산의 중턱 뫼가 되도록 하기 위해 갯벌을 퍼 올리고, 흘려 내리지 않도록 바다고기를 차곡차곡 돌로 만들어 세우고, 연화봉에 불을 피워 굳어지도록 열바람을 세게 높이고, 뫼봉우리가 단단하게 바위로 굳어지도록 눈을 내려 얼어붙게 하여 설산으로 만들기를 반복하는 관리감독을 망운장수에게 맡긴다. 그는 24시간 연화봉에 불을 지피도록 시녀에게 지시했다. 불을 지피던 시녀는 와룡장수의 꾐에 빠져 잠깐 조는 사이에 연화봉의 불은 꺼지고, 뫼봉우리는 흐물흐물 내려앉고 있었다. 10000자로 높이 솟은 금오산은 점점 밑으로 가라앉고 3000자도 안되게 바다 쪽으로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 놀란 시녀가 상두복회 장군에게 보고하자 차고 있던 보검 4개를 던져 뫼심지(산심지)를 박아 겨우 뫼봉우리가 떠내려가는 것을 방지했다. 시녀에게 죄를 물어 용산이 되어 이를 잡고 있으라고 명한다. 그리고 금오산을 받치고 있던 바다고기들을 모두 너덜바구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되자 옥황상제는 금오산을 10000자의 높은 산이 되지 못하고 오로지 강계바다가 치솟아 올라 850고지의 산이 되었다고 말하고, 계속 솟아오르는 산이라 소오산이라고 이름을 붙어주었다. 옥황상제는 지리산을 1915미터로 천상과 지상의 신선들이 머물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허락한다. 지리산은 지구상의 제일 높은 산이 되지 못하니 그대로 천왕봉(天王峯)이 되었고, 천제봉은 하동 악양면 형제산의 제일 높은 산봉우리가 그대로 천제봉(天帝峯)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향토사학자, 최재호. 금오산높이소산. 참고).

    승용차가 나란히 주차되었다. 케이블카로 사람은 올라올 수 있는데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자동차 길이 있다는 말인가? 정상에 이만한 구조물이 있다는 것은 차도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비탈에 아슬아슬하게 건물을 이어내고 벽을 유리창으로 장식하였다. 짚와이어 승차장이다. 외가닥 줄에 한사람씩 도르래에 몸을 맡기고 거의 수직과 완만하게 이동하는 것이다. 이용자는 주로 젊은 층이며 노인들은 전망대에서 바라만 본다. 출발 지점은 마음의 갈등을 심하게 받는 듯하다. 비명 또는 괴성에 가까운 고성과 함께 내려가다가 잠시 후는 잠잠해지고 손을 흔들어 보이는 여유로움을 보인다. 전망대에 높은 탑이 있고 그 앞에 검은 기단 위에 황금 자라가 엎드려 있다. 하단에 金鰲山은 황금 금, 는 자라 오, 을 뫼산으로 친절하게 풀이하였다. 중국과 소통을 위하여 한자를 뜻은 우리말로 소리는 중국음으로 옮긴 것이다. 은 황금이고 음은 금이며, 은 자라이며 음은 ‘, 이며 음은 이다.

    짚와이어를 즐기는 세대는 망설임 없이 금오산이 되고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세대는 소오산 또는 금오산으로 혼용될 수 있겠구나. 길 옆 세운돌에 석굴암 700m '를 새겼다. 화살표로 길을 잡았다. 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가노라니 금오산 봉수대이다. 신호는 정안봉 봉수를 거쳐 지리산 봉수대까지 전달되었다. 조선 봉수군이 휴식하던 석굴은 부처를 모신 불당으로 사용되고, 봉수대 주변에 흩어져 있는 봉수군이 사용했던 맷돌의 옆 부분에 順治 十七이라 음각되었다. 順治 十七(순치 17)순치는 애신각라복림이 황제로 즉위한 해에 붙이던 연호이고 ‘17’은 청나라를 다스린 17년째로 조선은 현종 1(1660)이다. 이로써 조선은 청의 제후국임을 알게 한다. 순치제(順治帝)6세의 나이로 황위에 올라 중원을 통일하고 청나라를 중국 통일왕조로 만든 황제이다. 대청풍운(大淸風雲)의 주인공이며 조선 인조에게 삼전도 굴욕을 받아낸 청태종의 아들이고, 강건성세(康乾盛世)의 기반을 닦았으며 강희제의 아버지이면서 건륭제의 증조부이다. 순치제는 홀연히 출가시를 남기고 중국의 오대산으로 들어간다. 강희제가 몇 번을 찾아갔지만.

     

    18년 지나간 일 자유라곤 없었도다/강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싸웠던가/내 이제 손을 털고 산 속으로 돌아가니/천만 가지 근심 걱정 내 아랑곳할 것 없네/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뉘이런가/자라나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내라 더니/눈 한 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뉘이런가.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