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기사입력 2023.12.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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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신문사에 억울한 사연을 보내면 될까요?’ 순하디순한 그녀가 어느 아침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날은 종일 상담일로 출근하는 기관에 있어서 전화를 할 시간이 없었다. 50대 중반인 그녀는 조선족 결혼이민자이다. 그녀는 말이 좀 많은 편이어서 한가할 때가 아니면 전화를 하기가 곤란하였다. 그 날 나는 그녀에게 내어 줄 시간이 없었다.

    위로를 줄 만한 가까운 지인에게 연락을 하여 부탁을 하였다.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위로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다행히 그 사람은 그녀에게 전화를 하였고 나에게 문자도 주었다. ‘선생님 방금 1시간 반 동안 통화했네요. 언제 선생님 시간이 될 때 전화 한 번 주셔서 전문가로서 상처 입은 그 마음을 좀 어루만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가족센터의 상담사에게 다시 연락을 하고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한 뒤 방문해 줄 것을 부탁드렸다.

    퇴근길에 나는 그녀의 사정을 대강 들어 알게 되었다. 면사무소에서 공공근로를 하고 있던 그녀는 여러 가지 억울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나보다. 정직하고 순진한 그녀는 무슨 일이든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요양보호사 일을 할 대도 대상자들은 그녀만 찾았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녀는 불편한 존재이다. 지나치게 열심히 일을 하는 그녀가 쉬엄쉬엄 시간만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교통사고로 누워있는 남편과 자신의 사고까지 겹쳐 그녀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남편도 지나치게 조용하고 순한 사람이다. 아들도 이런 어머니조차 강해서 무섭다고 한단다. 누구 하나 자신에게 힘이 되어 줄 사람이 없어 그녀는 막막해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친정 식구들 대부분이 한국에 나와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골에 살고 있는 그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오빠나 언니 집에 가는 일도 내키지 않는단다. 잠시 다녀올 수는 있겠지만 시골 내 집처럼 편안하지도 않고 도시에서 살아갈 자신도 없다고 한다.

    면사무소 담당자에게 서운하고 억울한 일이 많아 호소하고 싶다고 한다. 일하는 시간에 병원도 가고, 개인 볼 일도 보는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점심시간에 병원도 다녀오고, 개인적인 볼 일도 보는데 오히려 자신에게 더 많은 원망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뭐라고 답해 주어야 할까 잠시 망설여진다. 그녀의 순진함에 대하여, 지나친 성실함에 대하여 탓을 해야 할까. 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고 열심히 하냐고 나무래야 할까.

    삼십 년 가까이를 이 지역에서 살면서 늙어 가는데도 그녀는 여기 사람들과 발걸음이 다르다. 내 것이라고 챙기기보다 이웃과 나누면서 살았다. 가진 게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니지만 농사를 많이 짓던 젊은 시절엔 푸성귀라도 나누면서 살았고, 이웃 어른들을 보살펴 가며 살았다.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고작 순진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비웃음이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그녀와 1시간 반 정도 통화를 했다. 울먹거리며 두서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녀에게 위기가 온 것 같다.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중간마다 튀어나와 안쓰럽다. 이 나이에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싶다. 그 억울함을 누그러뜨려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가지를 궁리해본다. 아이처럼 달래도 보고, 세상 사람들을 같이 원망도 해주고, 지나치게 열심히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의아해 하기도 한다. 무엇이 옳은 일일까 나도 궁금하다.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원망을 들어도 될 일일까, ‘오늘부터 당신은 지나치게 열심히 일 하는 것을 삼가 주세요.’ 라고 말해줘야 할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추워오는데 밖의 날씨도 엄청 춥다. 겨울의 한복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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