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Ⅰ)

기사입력 2023.12.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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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산은 모양이나 전해 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불리기도 한다. 금남・진교・고전면에 걸쳐 솟은 산으로 바다와 육지를 두루 조망할 수 있어 일찍이 소오산이라 하였다. 소리와 문자로 정보가 전달되던 시대에서 빛 속도로 전파되는 인터넷 시대에서 ‘금오산’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소오산으로 알아 오던 세대가 금오산으로 전환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예로써 학창시절에 필수 시험출제 항목으로서 지식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금오신화(金鰲新話)를 들 수 있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은?” “금오신화입니다!” “작자는 누구일까요?” “김시습 입니다!” 질문자는 보충 설명으로 마무리한다. 김시습(金時習)은 신동이라고 소문났다. 3세에 “복숭아는 붉고 버들은 푸르니 봄이 저무는구나/푸른 바늘로 구슬을 꿰니 솔잎 이슬이로다(桃紅柳綠三春暮/珠貫靑針松葉露)”라고 읊었다. 솔잎을 푸른 바늘로 맺힌 이슬을 영롱한 구슬로 보는 동심의 눈을 가졌기에 표현할 수 있었다. 재상 허조는 찾아와 “얘야, ‘老’자를 넣어 시 한수 지어 보아라!” 그 자리에서 ‘노목개화심불로(老木開花心不老,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 세종은 김시습을 궁중으로 데려와 관리들을 시켜 재능을 시험해 보게 하였다. 시험관의 무릎 위에 앉아 즉석에서 몇 수를 지어 보였다. 세종은 감탄하여 비단 50필을 하사하며 후일을 기약하였다. 이로부터 ‘오세문장(五歲文章)’이라는 칭호를 받아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아 어찌하랴! 21세에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에 책을 불사르고 설잠이라는 법호로 세상을 떠돌았다. 가는 곳마다 시를 써서 바람에 흩날리는 등 기행을 일삼는다. 그는 경주 금오산(金鰲山) 용장사에 은거하면서 금오신화를 지었는데 금오산은 김시습을 연상하게 된다. 49세에 부여 무량사에 들어와 59세로 생을 마감한다.

    금오산을 허용하는 마음으로 케이블카에 도전한다. 조심스럽게 발을 넣는다. 철탑이 나열되었고 좌우로 캐빈이 내려오고 올라간다. 걸어 올라간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아찔하다. 점점 바다가 아래로 깔리고 주변 봉우리는 낮아지고 고개를 숙이자 하얀 아크릴이 돌너덜에 닿을 듯하다. 골짜기에 온통 그만그만한 회색 돌들이 겹겹이 쌓였는데 우리나라 지도 모양이며 중앙을 세로로 지나고 있다. 스르르 정류장에 도달하자 천장에 겹겹이 지름의 크기 다른 바퀴가 수평으로 돌면서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을 분류한다.

    전망대로 올라간다. 안개가 걷히면서 비경을 보여준다. 바로 아래 논이 끝나고 방풍림으로 조성된 숲에서 물살이 빨라 싱싱한 고기로 낮에서 밤까지 손맛을 볼 수 있다는 ‘해와 달 낚시공원’, 중평항, 망운산, 님해대교와 노량대교, 하동화력 발전, 이순신 장군의 최후 격전지 노량 앞바다 한복판에 옹기종기 섬들이 모여 있고 그중에 가장 큰 섬이라 대도(大島)이다.

    정상에는 높은 철탑에 낙지의 빨판 같은 기구가 달렸는데 천상과 지상의 전파를 받아서 내보내는 현대식 봉수대이다. 옆에는 산봉우리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를 듯 대형구의 구조물이 있다. 만져 보고 들여다보고 싶지만 출입금지이다. 철조망 아래 삼각형의 바위를 앉히고 金鰲山(금오산), 金南(금남), 소오산이라 새겼다. 안내판에 〈진교 남단 바다에 가까이 위치하며 노적(露積)가리처럼 우뚝 솟아있어 옛날에는 소오산이라 하였으나 벙목처럼 생겼다고 병요산(甁要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명산 주맥(主脈) 따라 끊어질 듯 이어져 산을 오행설에 따르면 금상(金相)이고 바다를 건너다보는 자라(鰲) 형상과 같아 금오산(金鰲山)이라 부르고 있다. 높이는 849m이고 둘레는 34km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지리산의 웅장함과 다도해의 아름다움과 광양 만에 현재의 발전상이 어우러져 천혜의 경관을 만들고 있다(2021.11)〉.

    이름의 유래가 다양하다. 쌀이 주식이었던 시절에 논은 생존의 터전이었고 자기 논에서 농사를 지어 풍족한 쌀로 겨울을 나는 것이 절실한 바램이었다. 들에서 타작을 하여 나락을 가마니에 담고 논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는 마음은 얼마나 좋겠는가. 주인은 차츰차츰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일꾼들은 선망의 눈으로 보게 된다. 들판에 높게 쌓인 나락가마니를 볼 때마다 기분이 흐뭇해지는 것이다. 노적가리를 산으로 보게 되어 우뚝 솟은 산이라 소오산으로 불렸다. 또는 병의 목처럼 잘록하게 볼 수 있어 병요산, 자라가 바다를 건너다보는 산의 형상이 금상을 닮아 금오산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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