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빨강과 초록이 어울리는 달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하는 달이다.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는 요즘, 굴러다니는 털실을 찾아 목도리를 뜨기 시작한다. 잡생각을 없애고 손을 움직이는 일로는 뜨개질만한 것이 없다. 올겨울 완성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쿡 웃음이 난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벌써 20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해 겨울,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도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한 순영이는 붉은색 뜨개실과 대바늘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공부방을 하던 시절, 순영이는 6학년이었다. 웃음이 많고 엉뚱한 데가 있던 순영이는 지금 삼십대 중반이 되어 있겠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매일 공부방을 오는 순영이의 목도리는 어느 날은 조금 길어졌다가 또 어느 날은 다시 짧아지기도 해서 완성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코가 하나 빠져서 또 풀기도 해서 진도가 못나간다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결국은 미완성인 채로 바늘과 함께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특별한 선물이다.
목도리를 사용하는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사람이 순영이다. 눈이 크고 볼이 발그레하던 아이,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항상 싱글거리던 아이였다. 뜨개실과 바늘로 내게 준 선물이었지만 그 마음만은 완성된 거여서 충분했다.
지금도 많은 초등학생들을 만나고 있지만 순영이 같은 아이는 어디에도 없다. 그 시절엔, 가을이면 빛깔 고운 단풍잎을 주워다 주던 아이도 있었고, 예쁜 돌멩이를 주워다 주던 아이들도 있었다. 사소한 것들에게 눈길을 주는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다. 하나 같이 재미있는 일은 게임이고, 혼자 노는 일에 익숙하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건넬 마음 따윈 아예 존재하지도 않은 듯하다.
건조하게 자라는 아이들 뒤에는 누가 있을까. 감정이 메마른 젊은 부모들이 있는 듯하다. 상담실을 찾는 젊은 부모들이 제일 어려운 일로 자녀 양육을 든다.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몸집만 커진 아이가 몸집이 작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힘들어서 함께 울고 싶을 때가 많다고 하니 답답하기도 하다.
내가 키운 아들과 아들이 키우는 손녀를 바라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고분고분하고 순했던 내아들과 달리 뻣뻣하고 자기중심적이다. 한결같이 고집불통이고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바탕 자체가 다른 것 같다. 무엇이 아이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사뭇 궁금하다.
주말이나 방학동안 잠깐 다녀가는 손녀를 보면 하루의 많은 시간들을 동영상을 보는데 사용하고 있다. 아들 내외도 아이 옆에서 전화기만 손에 잡고 그렇게 각자 놀고 있다. 하도 답답해서 아이만 데리고 밖으로 나오거나 좋아하는 놀이터를 가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 동안이다.
그림책을 보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하던 일은 케케묵은 이야기가 되었다. 부모가 해주지도 않고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다. 걷기 시작하면서 잡은 테블릿은 더 좋은 성능을 가진 것으로 변했을 뿐 다른 변화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다.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될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다. 내 아들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여느 젊은 부모들처럼 잔소리로만 들을 테니까… 그래서 가끔 손편지를 써볼까 고민 중이다. 내 아이들이 썼던 반성문을 보관하듯 내 편지를 보관해주려나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