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연애

기사입력 2023.11.22 11:31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가을이 다 가기도 전에 갑자기 찾아온 ‘X언니의 연애이야기로 우리는 부산하다. 악착 같이 세상을 살아온 X언니는 어느 날 찾아온 사람 때문에 소녀가 되었다. 평소 성격이나 그동안 살아온 이력과는 너무도 다르게 하루를 산다.

    아침 일찍 물어오는 안부 문자에 눈시울을 붉히고, 그렇게 씩씩하던 언니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굴만 붉히고 있다. 두 분 다 아픈 배우자를 간호하다 보내드린 사람들이다. 언니의 남자친구는 30년 이상 병석에 있던 아내를 위해 마음을 다했던 분이라 한다. 자신의 죽은 아내가 당신을 보내준 것 같아요.’ 하신단다.

    두 사람이 만나 각자의 배우자를 다시 보내드리는 애도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보지도 못한 언니는 처음 맞이하는 그 감정에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소중한 물건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우리의 세상살이에 연애 감정은 어떤 것일까? 주변의 모든 것을 반짝이게 하는 것일까? 60대 중반도 넘긴 언니에게 찾아온 그 감정이 소중하기만 하다. 옆에서 구경꾼이 되어버린 우리는 날마다 궁금하기만 하다. 젊은이들의 연애 감정만 소중한 것일까? 자녀들이 이런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별 이야기들이 오고가지만 일단 우리는 두 분이 열심히 사랑하기를 바란다.’에 한 표를 던진다. 그 사랑의 끝은 일단 미루어 두기로 하고.

    연애 감정은 가슴을 뛰게 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한 설렘은 없을 것 같다. 감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말을 오랜만에 실감한다. 사랑에 빠져 있는 언니를 구경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이야기해요. 내가 하나씩 같이 해줄 테니언니의 그분이 하신 말이다. 다정하고 따뜻한 분인 것 같다. 일찍 소녀 가장이었던 언니, 모든 일을 자신이 처리하고 모든 바람을 자신이 맞으며 앞장서서 걸어온 시간들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언니의 생애에 한 번쯤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감정들, 받아본 적 없는 따뜻한 보살핌, 내가 널 좋아한다는 생활 속의 작은 고백들이 언니의 하루를 장식한다.

    저녁 산책을 하면서 시린 손을 잡아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언니가 꿈을 꾸는 소녀 같더라는 후배의 말에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부럽기도 했다. 평소에 언니의 모습은 여장부 같다. 큰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크고 작은 단체의 리더로도 손색이 없다. 그런 언니가 요즘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나 색다르다. 귀엽기도 하다.

    살다가 한 번쯤 저런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인연이 쉽게 오지는 않겠지만 살펴보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정담이라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면 남은 인생들이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혼자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공부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버린 젊은 친구들은 연애도 결혼도 두려워한다. 행복하지 못한 자신들의 부모들을 보면서 일찍 그런 희망들을 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누가 누구를 책임지는 일을 싫어하고 내 것을 상대와 공유하고 나누는 일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사랑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을까. 내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상대에게 줄 사랑은 있을까.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형체도, 모양도, 색깔도 없는 사랑은 누가 얼마만큼 가지고 있을까. 사랑은 바닥나는 것이 아니라서 퍼내면 낼수록 솟아나는 것이라 믿는다. 겨울이 삐죽이 얼굴을 디밀고 있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