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권력’ 오만함을 경계하면서

기사입력 2023.09.15 13:11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이 정 훈 (주필)

    필자는 1987월간 경남기자로 발을 들였고, 1989년 도내 모 일간지에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정통 언론인이 되길 원했고, 그게 걸맞은 실력과 인성을 갖추고자 했다.

    늘 지방언론의 역할은 무엇이고, 올바른 언론인의 자세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다양한 부류의 언론인을 보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이어 출판사를 13년 운영했고, 자치단체 지방공사 홍보 담당으로 수많은 지역언론과 마주했다. 지역언론의 생태계를 살필 수 있었고, 지역언론인 개개인의 성향은 물론 공통적인 행동 양태를 톺아 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다.

    퇴직 후 하동신문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신문에 대한 생소함이나 언론계를 떠난 지 25년 만에 다시 펜대를 잡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어딘가 겸연쩍은 마음이 더 컸다.

    하동신문 주필로 오면서 딱 한 가지만 다짐했다. “‘언론=권력이라는 오만함에 빠지지 않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방행정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지역공동체 문화 활성화, 지역민의 소통창구 역할, 지역 문화 고양 등 교과서에서 말하는 지역언론의 역할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나 현실적으로 완전한 실현 가능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지역언론의 경영환경이 많은 기자를 두고, 광고나 유가 구독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지역언론의 원론적 역할을 읊조리는 것은 수사적(修辭的) 유희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소박하게 하동신문이 하동군민과 출향인에게 품격 있는 하동신문이라는 미쁨을 받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지역언론인으로서 맡은 소임의 절반은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1998년 언론계를 떠난 후 한동안 의아스러웠던 것이 일간지에 근무했던 동료 기자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지역언론인 대부분이 언론계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완전한 전직(轉職)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동료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소속만 바꿔 기자 생활을 하든가, 아니면 인터넷 언론을 차려 1인 기자를 해서라도 언론계를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았다.

    개중에는 지역언론에 대한 소명 의식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진짜 도 있었다. 그러나 상당수는 개인적 관점으로 볼 때 특별히 급여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자부심을 가질만한 언론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이나 소속사도 아닌 것 같은데, 언론계를 자전(?)하는 것에 갸우뚱했다.

    필자는 그들이 언론계를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는 동인을 언론=권력이라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찾았다. ‘기자라는 직책을 벗어 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공허함이 쉽게 언론계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언론=권력등식은 지역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언론=권력이라는 잠재의식을 가진 그 순간부터 순수 언론인의 궤도를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권력 맛을 본 언론인은 공공의 가치보다 사익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그 도가 지나쳐 스스로 나락으로 몰고 가는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지면을 공기(公器)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흉기로 사용하고, 주민의 알권리를 묵살하고 이권 카르텔의 유혹에 빠질 개연성이 높아진다.

    사익에 눈이 멀게 되면 침소봉대, 견강부회, 혹세무민을 일삼게 되고 문제가 생기면 알권리라는 방패에 숨는 비굴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지역언론인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삼가고 또 삼가야 할 것이 언론=권력이라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어지럽히거나, 지역사회를 지저분하게 만들지 않는 최소한의 자기 통제 마지노선이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