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기사입력 2023.09.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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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숙 (시인/상담사)

    오는 길에 부추 좀 잘라 오너라.’ ‘꽃이 한참인데 먹을 수 있나요?’ 꽃대를 올려 뻣뻣해진 부추를 먹을 수 있을까. 어머니의 주문에 잠시 주춤거린다. 손바닥만 한 부추밭에 가서 꽃이 핀 부추의 반바닥을 잘라 눕힌다. 뿌리만 남은 부추밭은 수확을 끝낸 논바닥 같다.

    작은 아이랑 할머니댁에서 만날 약속을 했다. 오전에 만나서 줄 것도 주고 얼굴도 보고 점심도 먹이고 싶어서였다. 어머니는 나를 만날 생각으로 나는 내아이를 만날 생각으로 주말을 비워놓고 있었다.

    아이에게 전화가 오기 전까지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았다. 옷가지도 챙기고, 약도 챙기고, 가져다 달라는 노트북도 챙기고

    엄마, 내일 아침 가는 길에 집에 잠깐 들렀으면 해요. 지금 멀리 좀 나와 있어서.’ ‘그래, 네 시간이 그러면 할 수 없지, 알았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어머니에게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본다. 자녀에겐 한없이 유연하면서 부모님께는 꼭 가야할 일이 생겼을 때만 찾아가는 자신을 본다.

    베어 놓은 부추를 품 가득 안고 안으로 들어온다. 펼쳐진 신문위에 놓는다. 뻣뻣하다. 먹을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연한 줄기만 골라 담는다. 꽃대를 골라내고 딱딱해진 뿌리 부분을 잘라내니 연한 부분은 겨우 한 줌 정도다. 손으로 연한 줄기를 골라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간다. 과제물을 받아 그걸 해결해야 하는 학생처럼 나는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다.

    어머니는 왜 부추를 가지고 오라고 하셨을까. 꽃이 올라오고 뻣뻣해진 부추를. 내가 당신께 왔으면 하는 마음을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 마음이 아릿하다. 무엇이든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알고 계시기에 내가 가꾼 하잘 것 없는 것들이라도 즐겁게 받아주신다. 호박잎도, 청량고추도, 수세미도, 노각 한 두 개라도.

    아이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손녀에게 영상통화를 하며 정을 나누고 살고 있다. 그런 내가 내어머니에게 누구인지 자꾸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다듬은 부추를 챙기고, 내 마음을 챙기고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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