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기사입력 2023.08.3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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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햇살이 쨍 할 때 큰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 희연이 첫 심부름 했어요.’ ‘어디로?’ ‘바로 앞에 있는 마트에’ ‘뭘 사겠다고?’ ‘먹고 싶은 과자 사겠다고 만 원 챙겨서 가방 들고 다녀왔어요.’

    아이가 시도하는 모든 것은 처음이다. 그 처음을 공유하는 일은 가족 전부에게 뉴스가 되는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혼자서 동네 마트에 과자 한 봉지 사러가는 일이 큰 이야깃거리가 된 지금의 세태가 즐겁지만은 않다.

    내가 만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대부분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 혼자서 무엇을 사 본 경험도 없다. 스스로 거스름돈을 계산하거나 받아본 적도 없다. 숫자를 가르칠 때는 동전과 지폐들을 이용하여 물건을 사고파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별 실감이 나지 않는 눈치다.

    돈에 대한 것 외에도 학용품이나 장난감에 대한 애착도 없다. 아이들의 욕구가 일어나기도 전에 부모들은 미리 준비해 주고, 심지어 과자나 학용품들을 쟁여두기도 한다. 봉사시간으로 방문하는 가정은 취약가정이지만 그곳의 자녀들도 학용품이 모자라서 곤란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기관에서도 학용품이나 동화책, 각종 놀이 도구들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지만 크게 반가워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내 아이들은 걸음을 걷기 시작하면서 이웃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100원짜리 동전으로도 동네 구멍가게를 갈 수 있었던 시절을 살았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작은 아이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네댓 살 무렵, 길에서 동전 하나를 주워 가게 주인에게 주고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하나 집어 들었단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아가, 이 돈으로는 그걸 살 수가 없단다.’ 하시던 친절한 아저씨가 생각난다고. 그 나이에도 속으로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마음을 다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그곳을 지날 때면 떠오르는 기억이라고.

    오늘 손녀가 다녀온 마트의 뒷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혼자서 다녀온 것이 대단하여 어깨가 으쓱해져 있을지, 그 어색함과 두려움으로 다음엔 같이 가야지 하고 돌아왔을지. 어쨌든 처음 시도해 본 심부름은 아이에게 큰 의미로 남겨질 것이리라 생각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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