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

기사입력 2023.08.30 10:59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잠깐 비가 멈추었다. 자꾸 무성해지는 화단에 있는 수국이 곁에 있는 작은 식물들을 덮을 기세다. 여름이 수국꺾꽂이에 좋은 시절이라 새로 나온 순들을 잘라 꽂기도 했다. 그래도 무성한 수국을 오늘은 기필코 큰 화분으로 옮기기로 했다.

    소나기는 소나기다. 잠깐씩 틈을 주고 비가 내린다. 엉망이 된 옷을 입고 들어올 수가 없어 잠깐씩 처마 밑을 찾는다. 전화기가 울린다.

    선생님, 휴대폰에 사진을 올려서 단호박 팔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 나 몰라요. 선생님 집에 가도 돼요?’ 한다. 북천에 살면서 식당일을 하고 가족이 함께 농사를 짓는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민자이다. ‘그래라. 근데 승연이가 잘 못해? 아이들이 휴대폰은 나보다 더 잘 할 걸.’ 중학생 아들 둘을 두고 있는 터라. ‘승연이 잘 몰라해서 선생님한테 가고 싶어요.’ ‘그래, 오너라.’ 그 아이가 오기 전에 일을 마치려고 서둘렀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하던 일을 마저 시작한다. 스티로폼이나 돌로 바닥을 채우고 굵은 마사토와 가는 마사토 그리고 흙과 약간의 퇴비를 이용해 화분을 만들어 화단의 나무들을 옮겨 심었다. 동생이 사준 키 작은 장미 몇 그루도 심었다. 비 오는 날 옮겨 심거나 꺾꽂이한 식물들은 대부분 잘 자란다. 옷도 신발도 다 젖어 엉망이 되었지만 큰 숙제 하나를 마무리 하고 나니 뿌듯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결혼이민자들은 편하게 내집을 드나든다. 사소한 일을 의논하기도 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어 주려고 가지고 오기도 한다. 감자를 캘 때는 감자도 두고 가고, 하우스하는 친구들은 딸기를 갖다 주기도 하고, 바느질 하는 친구는 마스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내가 그녀와 그 가족들에게 진심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선생님, 코끝을 찡그리며 웃는 그녀가 나를 부른다. ‘그래, 어서 들어와.’ 그녀가 가르쳐준 앱은 팜모닝이었다. 식당주인이 시작하도록 도움을 주었지만 자꾸 해달라 하기는 미안하단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하고, 다행히 내가 농작물과 가격을 올려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 줄 수 있었다. 화단 손질을 하던 중 내리는 소나기를 피해 처마 밑을 찾았던 것처럼, 그녀들의 인생에 소나기가 내릴 때 내가 처마 밑이 될 수 있기를.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