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필적 따라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기사입력 2022.02.2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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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 필적 따라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앞서 살았던 사람 중에 산천을 유람하며 느낀 점이나 교훈적인 글귀를 돌에 새겼다. 이는  필적이 오래 남기에 뜻이 유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고운 최치원은 물 밑 바위, 학을 불러 놀았다는 바위, 불일폭포를 감상하던 바위에 필적을 남겼고 공감과 소통을 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고운 선생은 화개천과 범왕천이 만나는 어느 너럭바위에 앉았다. 골짜기에 신흥・영신, 의신이라는 암자가 있다는 말을 상기하고 바위에 삼신동(三神洞)이라는 글을 남긴다. 그리고 흐르는 물에 귀를 씻고는 수중 바위에 세이암(洗耳巖)이라 새긴다. 세이(洗耳)란 중국 요임금이 허유라는 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기산으로 들어가 은거하였고, 구주의 장으로 삼으려 하니 귀가 더러워졌다며 강물에 귀를 씻었다는 고사에 연유한다.

     울창한 송림 사이 기암괴석의 절벽 아래 크게 휘감는 물줄기로 강역은 넓어졌다. 물 흐름이 줄어들어 싣고 오던 돌을 내려놓아 겹겹이 쌓였고 바닥 돌은 하얀 몸체를 들어내고 있다. 많고 많은 물 밑 바위 중에 어디에 세이암 각자가 있는지 난감하다. 

     아쉬운 마음에 이런 제안을 해 본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고운 선생의 심정을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세이암 근처에 정자를 세우고 드론으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과 접근로를 곁들인 안내도가 부착되기를 기대해본다. 

     쌍계사 팔영루 왼쪽으로 대나무 우거진 옥천교를 건너고 불일폭포로 방향을 집아 하늘을 가린 숲속의 완만한 길 따라 계곡으로 들어간다.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돌다리 건너고 주저앉을 지경에 나타나는 바위가 초면이 아닌 듯 반갑다. 바위 밑 그늘진 곳에 돌을 다듬고 글을 새겼다. 스마트 폰으로 찍어 겨우 읽을 수 있다. 

     환학대(喚鶴臺). 경주최씨 시조이며 신리 말기의 대학자로 유불도 삼교에 정통한 최치원 선생이 지리산 은거 시 학을 타고 다녔다는 바위이다.

     바위 윗부분은 경사지고 울퉁불퉁하다. 산새는 여유가 있겠지만 학이 이・착륙하기에는 좁아 보인다. 고운의 ‘환학대’라는 각자를 볼 수 있으면 우려는 해결되련만…. 기대 속에 바위를 몇 바퀴 돌아도 필적을 볼 수 없다. 바위 위에 흔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발길을 재촉한다.

     환학대 지나 열 결음 올라 주저앉고 칡덩굴 잡아 일어서며 아홉 걸음 밀리기를 반복하다가 능선을 넘으니 불일평전이다. 펑펑 솟는 샘이 있고 여기 저기 돌탑을 쌓았다. 아, 여기가 바로 청학동이구나! 

     불일평전을 지나 능선 따라 한참 걷다가 등산 꼬리표가 우측 계곡으로 안내한다. 계곡 능선을 코가 땅에 닿을 듯 기어올라 무거운 머리를 힘겹게 드니 사립문이 나오고 지붕이 있다. 온통 봉우리로 들러 싸인 불일암이다. 댓돌위에 두 짝의 흰 고무신과 길손 쉬어가라 나무 의자가 놓였다. 

     계곡 안으로 하늘사다리(天梯)에 체중을 담고 손 하나 내리고 발 하나 옮기며 내려가자 등 뒤에서 물소리 점점 커진다. 안전장치를 두른 마루가 나오고 벤치가 있다. 돌아서 올려다보니 폭포가 나타난다. 수풀 속에서 시작되어 중간에 고였다가 넘쳐 떨어져 내려 계곡수가 된다. 그 길이는 눈동자를 위 아래로 움직여야 볼 수 있다. 

     폭포 아래 소(沼)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치니 청학봉과 백운봉이 되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신비롭고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의자 사이에 두 폭의 산수화를 담고 불일폭포라는 제목의 안내판이 있다. 좌측은 암자 아래에서 백학봉과 청학봉 사이로 폭포수가 곧장 내려 쏟는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 추청 되고, 우측은 최치원의 완폭대(翫瀑臺) 석각 발견을 기념하여 그린 진경산수화(현석 이호신, 2018)이다. 2단 폭포수가 떨어져 계곡수가 되고 화면 중간에 소나무 숲 사이로 암자와 석탑과 보조 암자가 있고 주변에는 몇 채 집들이 보인다. 하단에 폭포 전체를 볼 수 있는 넓적한 바위 위에 앉아 메모에 빠졌고 한사람은 배낭을 멘 채 지팡이를 짚고 폭포를 올려다본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만 의자에 앉아 폭포를 찬찬히 보고 소리를 들으며 느끼고 공감이 되었다. 완폭대 각자는 차후에 친견하기로 하고 천제에 몸을 의지하고 하늘 보며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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