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룡정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기사입력 2021.11.2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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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룡정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남명 조식선생이 을묘사직소를 작성하였다는 뇌룡정은 어디에 있나요. 

    진주에서 일반국도 33호선에 차를 얹어 송계를 지나 대의에 내려 합천 국도를 따라가다 굴다리를 지난다. 길옆에 자연석을 세우고 남명조선생다례소(南冥曺先生茶禮所)라고 새겼다. 사전에 의하면 茶禮는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 중기 영남 유림의 쌍벽을 이루는 남명・퇴계선생은 유사한 점이 많고 제자 등으로 연관이 깊다. 두 사람은 1501년 태생이며 남명이 태어난 삼가면 외토리와 퇴계의 처가 의령 칠곡면 도산리는 50리 이내이다. 문정왕후의 전횡에 거세게 저항했고, 합천 취적산 절벽 아래 낙수 물이 황강에 떨어지는 함벽루에 시판이 걸려있다.

     정탁(鄭琢)은 1597년 3월 일본군의 모략 등으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한양으로 압송되어 명령을 따르지 않은 죄로 추국을 당하자 무고임을 변론하고, 전공과 능력을 감안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도록 극구 변호하여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다. 

     정탁은 두 선생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이다. 극심한 당쟁 속에서도 초연하고 지조가 곧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남명선생이 61세에 덕산에서 산천재를 지어 강학하자 서울의 선비들까지 몰려들었고 그 중에 그가 있었다. 남명선생은 정탁이 서울로 돌아갈 때 

    “빠른 말보다는 소를 끌고 가는 마음으로 평생을 일관하라!”

     정탁은 인생 후반기에는 벼슬이 순조로워 이조판서를 세 번 역임하였고 일흔 다섯에 좌의정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는 남명선생의 제자의 성격과 품성에 맞는 지도의 영향이라 할 것이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억겁을 양천강은 산을 넘으려 했건만 산기슭을 파고밀어 벼랑이 되었고 왼쪽으로 넓은 들판을 이루었다. 수령 500여년 느티나무를 지나면 뇌룡정 입구라는 이정표가 있고, 대문 옆에 뇌룡정을 설명하는 두 개의 안내판을 보게 된다. 

    오석에 새기기를, 

     남명 조식선생의 자는 건중 본관은 창녕 호는 남명이다. 선생이 48세 때부터 61세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장소이다. 김해에서 출생지인 토동으로 돌아온 선생은 뇌룡사를 지어 사방에서 모여든 제자들을 가르쳤다. 

     뇌룡은 《장자(莊子)》의 淵黙而雷聲 尸居而龍見(깊은 연못처럼 고요히 침잠해 있다가 때가 되면 천둥처럼 세상을 울리고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용처럼 신묘한 조화를 드러낸다)에서 따온 말이다. 또 건너 산기슭에 鷄伏堂을 지었다.

     다른 안내판에서, 

     이 정자 건물은 조식 선생이 계복당(鷄伏堂)과 함께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뇌룡이라는 말은 《장자》의 尸居而龍見 淵黙而雷聲(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용처럼 나타나고 깊은 연못처럼 묵묵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우뢰처럼 소리친다)에서 따온 것이다. 

     정(亭)은 산이나 물가에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 있어 주위 경관을 관망하기위한 작은 집을 말한다. 부여 부소산 북쪽 강변 정상에 있는 낙화암 위에 세워진 백화정(百花亭)에 오르면 백마강이 흘러드는 광경을 볼 수 있고, 갈마산 능선을 따라 펼쳐진 하동공원의 벚나무 사이 섬호정에 오르면 반짝이는 섬진강 모래에 눈이 부시다.  

     뇌룡정은 넓은 마루와 3개의 방과 아궁이도 있어 사람이 기거할 수 있겠다. 사(舍)는 집을 받치는 토대 위에 기둥과 지붕이 얹어져 있는 모형으로 쉬었다 갈 수 있는 간이 쉼터로 ‘여관’이라는 뜻이 남아 있지만 ‘집’이나 ‘가옥’을 뜻한다. 이에 안내판 제목은 뇌룡사(雷龍舍)가 적격이다. 유림들은 매년 음력 3월 상정일(上丁日)에 이곳에서 남명선생의 茶禮를 지내고 있다.

     뇌룡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두 안내판에 《莊子》에서 〈연묵이뇌성 시거이룡현〉 또는 〈시거이룡현 연묵이뢰성〉이다. 같은 책에서 어순이 다르게 인용하였는데 한자씩 뽑으면 ‘뇌룡’ 그리고 ‘룡뇌’로 된다. 이미 ‘뇌룡’으로 널리 알려졌으니 ‘연묵이뇌성 시거이룡현’이 바람직하겠다.

     鷄伏堂을 계복당으로 읽어야 할까? 

    伏은 ‘안을 부’로 되는 바 제자를 키우는 집이라 ‘닭이 알을 품는다’의 ‘계부’를 사용하여 계부당이 타당하다. 

     청소년들이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야 문화는 이어지고 생명력을 얻게 된다. 남명선생 학풍의 활성화를 위하여 한글세대 특성에 맞게 뇌룡정의 표준 안내문을 하나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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