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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넘던 황치산 고개 길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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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넘던 황치산 고개 길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이순신 넘던 황치산 고개 길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이순신은 1597년 4월 1일, 백의종군 처분을 받고 옥문을 나와(得出圓門) 수원 공주 남원 구례 순천 하동을 거쳐 초계원수부로 이동한다. 

 장군의 집안 3대가 초계 변씨와 혼인했다. 할머니는 변함의 딸, 어머니는 변수림의 딸, 누이도 변씨 가문으로 출가했다. 삼도수군통제사를 내려놓고 외가 동네로 찾아드는 장군은 비 오는 밤 비단옷 입고 고향을 찾는 기분일 것이다!

 칠천량 참패를 보고 받고 원수(권율)에게 전장을 둘러보고 전략을 세우겠다며 해안지방으로 내려간다. 난중일기(1597.7.21)에 의하면, 

 노량에 이르니 사람들이 울면서 말하되 “대장 원균이 적을 보고 먼저 뭍으로 달아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그를 따라 뭍으로 올라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거제의 배위에서 자면서 거제 현령 안위와 사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개산성 아래 옥종 문암 송정에서 관리들과 작전회의를 하며 지낸다. 1597년 8월 3일 원계마을 손경례 집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재임용 교서를 받고 임지로 출발한다. 덕천강 따라 칠송정을 지나 청수역, 방화마을, 초경에 행보역(여의마을)에서 말을 쉬게 하였다가 삼경에 나서 동트는 무렵 하동읍 두치를 거쳐 쌍계동을 지난다.

 장군의 발자취 따라 진주에서 길을 나섰다. 직전터널 앞에서 차를 세우니 좌로 네 개의 봉우리가 원근 구조를 이룬다. 왼쪽에 계명산이고 우로는 정군이 말의 인장을 내렸다는 마안산, 계명산 자락에 가린 봉명산, 마안산 뒤에 이명산이다. 

 갈림길이다. 직직하면 직선화된 국도 2호선이고 우로는 구불구불 신작로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돌고 돌아 이순신백의종군비를 볼 수 있다. 

 거북선 본체를 기단으로 대리석과 오석을 깎아 흰 돛과 검은 돛이며, 한껏 부풀은 쌍돛을 세운 거북선은 연방 바다로 나아가려 한다. 흰 돛의 중앙에 오석을 다듬고 흔적을 상징하는 발바닥을 찍었다. 경로는 북천 방화리 황룡사와 여의마을 구간이며 산길 2.7km로 새긴 것으로 보아 황룡사 뒤 계곡을 나타낸 것이다. 

 황토재 마루를 지나 내리막길을 돌고 돌아 감당삼거리를 지나자 높고 긴 육교의 교각은 하늘을 찌르고 상판은 산과 산을 이어주고 있다. 교각 사이를 지나 여의마을 회관에 주차하고 비탈을 올라 돌아보니 다리와 철길은 상하로 나란하게 펼쳐지고, 다리와 이어진 터널 속으로 차량이 오간다. 터널관리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서,

“황토재 터널인가요?” 

“2018년 개통한 황치산 터널입니다.” 

 황토재의 황토(黃土)를 黃으로 줄이고 재는 치(峙)를 차용하여 黃峙에 山을 첨가하고 관통하기에 ‘황치산 터널’이라 했겠다.

 고치봉을 우로하고 임도를 따라 걷는다. 하늘이 나오고 집이 보인다. 한준석씨는 의자를 내주고 차와 삶은 고구마를 권하며, 이곳에서 땅을 일구던 부모님을 양지바른 땅에 모시고 동생 부부와 한 지붕아래 산다고 한다. 

 집 앞 토지를 정리하는데 긴 우물터와 다져진 노면을 볼 수 있었다. 소떼를 몰고 넘다가 물을 먹이고, 주막에서 휴식을 취하였고 최근까지 장꾼 및 횡천중학교 통학길이였단다.  

 주막 터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자 돌무덤이 있다. 비단장수가 도둑을 만나 횡액을 당했거나 나그네 숨을 거두자 지나던 사람들이 돌을 던져 무덤이 되었겠지! 그 옆에 네 개의 기둥에 지붕을 걸치고 향을 피웠던 집기들이 널려 있다. 길 떠난 이 안녕을 빌고 빌었던 성황당이다. 

 마루를 넘자 노송 사이로 마안산이 펼쳐지고 풀 속에 주막 터 주춧돌이 있다. 개 목줄을 쥐고 지켜보고 있던 노인이 집으로 안내하고 차를 권한다. 건강이 좋지 않아 18년 전 황토 집을 짓고 사는데 서쪽을 등져 해가 일찍 뜨니 맑은 기를 마시고, 어둠이 일찍 깔려 황토 방에 지내는 시간이 길어 기관지가 좋아졌다고 한다. 

 북천 방화마을에서 여의마을 사이에 황치산이 있다. 걸어 다니던 시절에는 고개를 넘었고, 자동차 등장으로 산굽이 돌고 도는 방화마을-잿마루-감당마을-여의마을로 이어지는 신작로, 이제는 터널이 생겨 지하로 통과한다. 

 이순신은 주막터와 성황당이 있는 황치산 고개 길을 넘어 행보역에 도착한다. 재 마루에 돌을 세우고 ‘이순신 임지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와 뒷면에 난중일기(1597.8.3)를 새기면 황토재 옛 길은 역사의 고개 길로 명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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