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씨 그리고 家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기사입력 2021.10.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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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과 씨 그리고 家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소년기의 경험이다. 동네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노인들이 곳곳에서 지나는 소년들을 불러 세우고 길거리면접을 실시하였다. 

    “너의 성씨가 뭐냐?” 

    “안씨입니다.” 

    “얘야! 자기 성을 말함에 ‘안가(安家)라고 해야 하느니라” 성 뒤에 ‘씨’를 붙여 묻고서 대답은 ‘가’로 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성(姓)과 씨(氏)는 어떤 관계이며 ‘씨’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국 성씨의 역사를 살펴보면,姓은 女 + 生의 합자로 ‘여자가 낳았음’의 뜻으로 혈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모계중심사회부터 어머니 중심의 성이 생기게 되었다. 

    신농의 어머니는 강수(姜水)에서 살았고, 황제(黃帝)의 어머니는 희수(姬水)에 살았으며 순의 어머니는 요허(姚虛)에서 살아 모친의 성을 따라 姜, 姬, 姚로 되었다. 

    하은주 시대에 들어 성을 가지고 있던 제후국의 임금, 가족, 귀족들은 제후에 봉해져 하사 받은 국읍의 지명이나 관직 등을 씨(氏)로 하였다.

    사마천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태사령에서 파면되고 사형이 확정된다. 역사서 완성을 위하여 궁형을 자청하여 죽음을 면하며 기원전 91년에 오제로부터 당대까지 3000년의 통사를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의 기전체로 정리한 역사서 사기(史記)를 남겼다.

    史記에 우(禹)는 성이 사(姒)씨다. 물길을 막는 아버지의 방식을 버리고 물길을 트는 소통의 방식으로 치수에 성공하여 하(夏) 왕조의 시조가 된 사람이다. 그 후손들이 여러 곳에 분봉되어 나라 이름을 성으로 삼으니(用國爲姓) 하후씨 등이 생겼다. 

    우임금의 성이 姒란 것은 五帝와 같은 혈통 곧 황제의 자손이란 뜻이며, 씨를 달리 했다는 것은 그만큼 번성한 집안에 속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는 황제의 현손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씨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태공 이름은 상(商)이며 성은 강(姜)이다. 주나라 문왕에 의해 발탁되어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선조는 우임금으로 부터 여(呂) 땅에 봉해져 여를 씨로 하여 여상(呂商)으로 불리기도 한다. 

    항적(項籍)은 초한전쟁 때 초나라의 군주로 자는 우(羽)이다. 이름 보다는 자로 잘 알려졌다. 항우(項羽)의 막내 작은 아버지는 항량이며 그의 아버지는 초의 장수 항연이다. 항씨는 대대로 ‘항’ 땅에 봉하여졌기 때문에 항씨를 성으로 삼았다.

    전국시대에 들어 상하귀천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리는 변혁이 빈번이 발생한다. 구세력이 몰락하자 귀족 신분을 나타내던 氏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고 성이 다시 각광을 받으며 성과 씨가 서로 뒤섞이기 시작하였다.

    진(秦)과 한(漢)대에 이르러 성과 씨의 구분이 없어져 같은 의미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한나라는 한족이란 통합민족 개념의 등장에 따라 성이 대폭 축소되며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도 성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성은 삼국사기에서 볼 수 있다. 

    주몽의 일행이 모둔곡에 이르렀을 때 세 사람을 만난다. 

     “그대들은 성명은 무엇인가?”삼베옷 입은 자는 이름이 재사라 하고, 장삼 옷을 입은 자는 사람은 무골이며 물 마름으로 지은 옷을 입은 자는 묵거라고 하였다. 

    주몽은 재사에게는 극, 무골에게 중실, 묵거에게는 소실의 성을 주었다. 주몽은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였으며 성은 고로 하였다. 

    신라 유리왕 9년(서기 32년), 왕은 6부의 명칭을 고치고 족장들에게 ‘이・최・손・정・배・설’의 성을 내렸고, 백제 온조왕은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부여(夫餘)로 하였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여러 성을 사용하고 있다. 예로서 소설 삼국지의 촉나라 승상 제갈량(諸葛亮) 후손이 신라로 귀화하였다가 고려 현종 대에 제씨([諸氏), 갈씨(葛氏)로 분리된다.

    우리의 성은 오래 동안 부계혈통을 나타내고 평생 바뀌는 일이 없었다. 

    씨는 동일 혈통의 사람들이 일파를 표시하는 관향으로 사용된 것이며 성씨의 ‘씨’는 성을 높이기 위해 시용되는 접미사이다. 

    남의 성에는 씨를 붙여 높이고 본인의 성 뒤에는 같은 호적에 들어 있는 친족 집단을 이르던 가(家)를 사용하라는 동네 노인의 지적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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