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시인 정두수께 띄우는 편지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기사입력 2021.08.2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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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시인 정두수께 띄우는 편지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배다리장터라 북적거리고 소식도 넘치니 모아서 전달하는 기관이 필요했겠네! 그래서 고전우체국이 있구나. 

     우체국을 조금 지나자 하얀 건물에 ‘고전배드리장터문화관’이라 걸고 옆에 ‘정공채·두수 기념관 2층’이라는 간판이 있다. 계단 벽에 빛의 영광 시인 정공채, 가요 산맥 작사가 정두수(본명 두채)의 약력을 나열하였다.

     두 사람은 고전면 성평리에서 태어난 형제로 조부가 형 공채(孔采)는 공자, 동생 두채(杜采)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두보(杜甫)를 닮으라고 孔, 杜를 차용했다 한다.

     정공채(1934∼2008)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현대문학지에 박두진 시인 추천으로 ‘종이 운다’ 등을 발표, 학원사 기자, MBC 제1기 프로듀서를 거쳐 하동중 교사, 4·19 혁명 시기에 국제신보 편집국장이었던 이병주와 동향이라는 연고로 1960년 4월 14일자 국제신보 1면에 혁명 시 ‘하늘이여’를 게재하여 혁명의 열기를 북돋웠다.

     정두수(1937∼2016)는 동래고등학교, 서라벌예대 문창과 졸업, 1961년 국가재건운동본부에 공모한 시 문예 작품에서 ‘공장’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중가요 노랫말을 주로 발표하면서 시인보다는 작사가로 더 많이 알려졌다. 

     정두수가 작사가로 자리매김한 동기는 가수 남인수씨의 격려였다. 동래고 2학년 때 진주개천예술제 시 부문에 참가해 재능을 인정받았다. 

    어느 날 친구가 진주에 내려와 당구장을 경영하고 있는 가수 남인수 선생을 만나러 가지고 하였다. 무턱대고 본성동 있는 당구장을 찾아 갔다. 

    의외로 반겨 주고 시에 재능이 있음을 알고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정두수는 덕수궁 돌담길, 마포종점, 감나무골, 하동으로 오세요, 공항의 이별, 우수, 가슴 아프게, 하동포구 아가씨 등 3,500여 편의 노래시를 발표한다. 그는 유행가 가사라고 하지 않고 노래시라고 하였다. 

     특히 ‘물레방아 도는데’는 어느 날 서울의 한 다방 어항 속 물레방아를 보고 힌트를 얻었는데, 내 고향 하동의 노래라 했고 노래 속의 ‘소식도 없는’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전쟁터로 끌려가 주검으로 돌아온 삼촌이다. 

     배댜리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교천에 배를 연결하여 널빤지를 깔아 배다리장터로 번성했다가 운송 수단이 배에서 자동차로 변하자 방천을 쌓아 물꼬를 틀고 물을 모아 저수지로 되었다. 물을 안고 돌고 돌던 물레방아는 세월을 품은 채 자리를 지키고 그 옆에 노래비를 세웠다.

    뮤직 박스 1번을 선택하자 나훈아 특유의 꺾기 음색으로 ‘돌담길 돌아 서며…’의 첫 구절에 콧등이 찡하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 …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 새 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 / 고향의 물레방아 / 오늘도 돌아가는데.

    노래 말에 삼촌의 슬픈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읽고는 느낌이 새로웠다. 

     성평리에서는 금오산 계곡물로 물레방아를 돌렸고, 그 물레방아는 최근까지 있었다고 한다. 노래시인 삼포는 서울의 한 다방 어항 속 물레방아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데 가슴속에 고향의 물레방아가 언제나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노래시인 정두수님!

     유달리 유행가 가사라고 하지 않고 노래시라고 하던 정두수님은 저세상으로 떠나도 노래는 남았군요! 

     정동원은 하동 진교에서 태어나 13세 소년으로 TV미스터트롯의 최종 7명 속에 들어 전국 가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예선에서 ‘물레방아 도는데’를 불렀고 지금도 가금 그 노래를 부른답니다. 살며시 눈을 감고 노래를 들을 때는 노래시인이 돌아오지 않는 삼촌을 생각하며 부르는 듯합니다. 

    그 노래가 있어 성평리 돌담길은 전국의 담장이 되었지요, 당신의 주옥같은 노래시는 오늘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노래시인 정두수님!

     하동과 고향을 사랑하여 한려수도·섬진강·지리산의 삼포(三浦)를 알처럼 품은 고전면 성평리가 고향이라 호를 삼포(三抱)로 하셨다지요. 

     엽서에 또박또박 새겨 보냅니다. 주소를 적지 못했지만 고전우체국 우체통에 넣으면 배달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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