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대교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기사입력 2021.08.0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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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대교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노량을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지명으로 경남 남해도와 하동 사이에 있는 나루터이다. 남해대교는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의 육지 사이를 잇는 660미터 다리로서 한려수도를 가로지르는 최초의 현수교이며 1973년 6월에 개통되었다. 이는 노량대교가 건설되기 전에 편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량의 露는 이슬이나 좋은 술의 뜻, 음은 ‘로’ 또는 ‘노’로 이고, 梁은 두 기둥 사이를 건너지르는 나무다리의 들보의 뜻에 ‘량’ 또는 ‘양’으로 발음된다.

     향토사학자 최재호는 노량(露梁)을 ‘이슬다리’라는 전설로 풀어낸다.

    옥황상제가 금오산에 내려와 지구에 사는 인간이나 동물들과는 접근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신하들과 선남선녀 몇 명이 하늘의 율법을 깨고 이른 새벽에 빠져 나가 금오산에서 남해섬 사이에 이슬다리를 만들어놓고 남해섬 금산에 올라가 인간들과 함께 해돋이 구경을 하고 망운산에서 일몰과 각양각색 구름을 구경하기 위해 빠져나갔다. 

     선남선녀들은 하동노량과 남해노량 사이에 이슬로 다리를 놓아 햇살이 돋아 오르면 이슬이 사라져 없어지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옥황상제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옥황상제는 몰래 해돋이와 해닫이를 구경한 신하와 선남선녀에게 중한 벌을 내리기로 위하여 돌아올 시간에 앞뒤 분간할 수 없도록 짙은 안개로 덮고 나서 오로지 희미한 안개로 가느다란 길을 만들어 이 길을 통해서만 돌아올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남해대교는 양쪽 바다 속에 두 개씩 수직 탑을 세우고 두 가닥 케이블을 걸치고 세로로 줄을 내려 상판을 지지하는 전형적인 현수교이다. 

     노량대교는 남해군 설천면 덕산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의 양쪽 육지에 경사주탑을 세웠다. 주탑의 아래 폭은 50m, 기단 8m, 높이 148m이며 경사각은 8도이다. 상단 부분에 두 개의 케이블을 걸고 줄을 내려 상판을 지지한다. 총연장 3.1km이다. 

     홍보관 입구에 준공기념 축시를 게시하였다. 

    하동을 문학 도시로 우뚝 세운 최영욱(박경리 문학관장)의 ‘대첩의 바다, 노량’이다.

     

    문득 상서로운 바람이 일어 노도를 지난 이곳 / 노량대교를 건너면 19번국도 섬진강가 벚나무들은 / 상서로운 그 바람 받아 꽃들을 틔우는데 그 꽃은 터져 / 화개골을 환하게 비추고 쌍계사 범종마저 울리는데 / (중략)저 높다랗게 솟은 주탑의 높이보다 더 높고 크신 / 장군의 이름을 대신할 노량대교여, / 찬란한 승리의 역사여!

     

     노량대교 준공기념물은 특이하다. 

    광장 금오산 기슭에 원판 오석을 놓고 주변에 5개 원형으로 글을 새긴 정사각형 대리석 296개와 진입로 바닥에 가로 10개, 세로 26개를 깔았다. 

     중앙 원판 오석에는, 

    남해안권 연계 도로망 확충을 위해 국내기술로 충무공의 혁신 정신을 계승하여 세계 최초의 현수교 경사주탑과 3차원 케이블 형상으로 연인원 30만명을 동원하여 세계 교량사에 길이 남을 노량대교를 2018년 9월 완공함. 국토교통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정사각형 대리석에는,

    새로운 하동 더 큰 하동

    이슬처럼 영롱한 노량대교 되리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멀리 보려면 위로 올라가라)

     노량이라는 지명에서 노량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일 것을 예언되었고 노량대교로 실현되었다. 

     다리 이름에서 노량대첩을 떠올리게 되는데 노량해전과 노량육전의 연계로 가능했다. 노량대첩은 사명당 부대에게 소서행장이 순천왜성에서 고립되자 사천 선진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에게 구원을 청하여 벌어진다. 노량해전은 학익진을 펼쳐 바다에서 적을 무찔렀고, 노량육전은 선진성으로 이동하는 일본 지상군을 금오산 근방에서 섬멸하고, 육지로 오르는 적들을 처치하였다. 

     노량대교의 활성화에 맞춰 임진왜란 금오산 일대의 전투 자료를 수집하고, 지역 명칭의 유래를 조사하여 노량육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재조명하는 연구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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