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오천정씨 정려각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기사입력 2021.07.24 23:30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하동오천정씨 정려각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역사 기행을 왜 하는가! 

    어제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알아보고 오늘에 나의 삶의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함이리라. 

     조지서(1454-1504)는 하동 옥종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조찬이며 어머니는 생원 정참 딸이다. 3번 과거에 장원하고 연산군의 스승으로 본분을 다하고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된다. 이것이 끝이 아니고 정씨 부인의 태도는 감동을 주고 있다.  

     남명 조식은 무오년(1558) 일행과 섬진강을 오르내리며 쌍계사 청학동 신원사 등을 유람하고 남기는 기행문 《유두류록》에 의하면, 

     4월 24일 저녁에 하동 옥종 청수리 삼장골에 있는 역에 도착하였다. 역관 앞에는 정씨의 정문이 있다. 정씨는 승지 조지서의 아내이며 문충공 정몽주의 현손녀이다. 남명은 정문 앞에서 정씨의 절개를 기렸다. “승지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거센 바람이 부딪히는 곳은 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떨리는 법이다. 그는 연산군이 선왕의 업적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할 것을 알고 10여년을 물러나 있었지만 그래도 화를 면할 수 없었다. …부인이 절개와 의리를 둘 다 이룬 것이 지금까지도 이 정문에 남아있다.” 정씨부인 정려각 탐방은 조지서 삶의 마무리 단계이다. 역관의 소재지로 추측되는 동곡마을 지나 마을 산길 따라 안평마을로 접어들자 낮은 산위에 즐비하게 별장인 듯 집들과 아래에 잡초 속에 비각(碑閣)이 보인다. 閣은 크고 높다랗게 지은 집으로 사람이 살거나 물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비각 옆면에 안내판을 세웠다. 

     하동오천정씨 정려각(河東烏川鄭氏 旌閭閣)이다. 

    정몽주의 고손녀이자 조선 전기 문신 조지서의 두 번째 부인 오천정씨의 정려각이다. 정려(旌閭)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로 문을 세우면 정문, 건물을 세우면 정려각이라 하였다. 

     조선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에 조지서가 죽게 되자 오천 정씨는 낮에는 외적의 침입을 경계하고 밤에는 성을 쌓아야 하는 형별을 받으면서도 조지서의 삼년상을 지내며 세 아들을 길렀다. 중종 2년(1507) 진주목사 이우가 오천 정씨의 절개와 의리를 나라에 알려 옥종면 정수리 옥산서원 근처 청수역 앞에 정문을 세웠다. 이후 정문이 무너져 1734년 조지서 선생 8대손 조명진은 새로 고치고, 1760년 9대손 조덕상이 조지서 선생의 묘와 가까운 이곳으로 옮겨 고쳐지었다. 

     반갑기도 하여 안내문을 메모하고 졍려를 보려 문을 밀고 들어간다. 정면과 측면이 각 한 칸이며 화려하게 채색되었다. 끌리는 시선으로 창살 속을 들여다본다. 바닥은 텅 비었다. 오래된 공적비를 보겠지 하는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온다. 비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을 가려주는 집안에는 귀한 물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안내문에 ‘중종 2년(1507) 진주목사 이우가 오천정씨의 절개와 의리를 나라에 알려 옥종면 정수리 옥산서원 근처 청수역 앞에 처음 旌門이 세워졌다.’고 기록하였다. 

     정씨부인의 공적조서를 꾸며 왕께 올려 백성의 귀감이 될 수 있어 윤허하게 된다. 旌門을 마을 앞에 세워 지나는 사람들은 정려를 보고 예를 갖추게 함이다. 정려각을 찾아왔건만 빈집보고 돌아서는 발걸음 무겁기만 하다. 

     하동 옥산서원(경남문화재자료 47호)은 정몽주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순조 30년(1830)에 후손들이 진주 비봉산 비봉루에 세웠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65년에 현 위치로 옮겨 세웠고, 2018년 12월 20일 하동 옥산서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남명은 유두류록에 옥종 청수리 삼장골에 도착하여 역관 앞에 있는 旌門을 보면서 정씨부인의 절개를 기린다. 

     이는 편액 또는 공적비를 가리키면서 일행에게 설명하였을 것이다. 역관은 관리들이 머물고 말을 바꿔 타는 공관이다. 하동오천정씨 정려각에 공적비가 없었을까? 

     역사를 바로 보고 배우기 위하여, 청수역의 위치를 고지도 및 증언을 참고하여 지금의 하동 옥산서원 또는 삼장골인지 정리가 되어야겠다. 삼장골은 지금의 동곡마을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