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삼짇날 - 최영욱 시인

기사입력 2009.04.1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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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줘

    김동환의 <봄이 오면> 부분

    지천에 꽃이다. 인간들이 시간을 어기게 만들어 매화가 채 다 지기도 전에 개나리, 목련, 앵두, 심지어는 벚나무까지 꽃을 피워대기 시작한다. 그 세계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싶어 씁쓸하기 그지없다.
    위에 인용한 노래는 <국경의 밤>으로 널리 알려진 파인 김동환 선생의 시에다 김동진 선생이 곡을 붙여 우리 국민들 사이에 널리 불려졌던 대표적 봄노래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동네 아낙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 진달래를 따 화전놀이를 즐긴다. 특히 젊은 처녀들은 각자가 만든 화전을 두고 가사를 지어 좌장인 어른들에게 평을 받기도 하고 장원을 뽑기도 하였다고 사전에는 자세하게 써놓았다.
    음력으로 3월 3일을 삼월 삼짇날이라고 한다. 우리의 옛 봄 명절인 것이다. 삼짇날 외에도 더러는 삼질, 상사(上巳), 원사(元巳), 상제(上除),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하며, 농사의 시작 혹은 보리고개를 넘기 위해산과 들을 헤매며 우리들의 대표적 구황식물인 쑥을 캐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이 삼짇날에는 흰나비를 보면 그해 상복(喪服)을 입을 수도 있으며 색깔이 있는 나비를 보면 길한 일이 있다고 믿었으며 특히 이날 약술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믿기도 하였다. 또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이며, 뱀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날이기도 하고 나비 등의 곤충들이 깨어난다는 날이기도 하여 이날 뱀을 보면 일년 운수가 좋다고 하기도 하였다.
    먹고 살기도 팍팍한 시기에 봄 타령만 하고 있다고 한 말씀 내리시는 소리들이 들린다. 그래도 팍팍하면 팍팍할수록 힘들면 힘들수록 충전이 필요하고 여유를 가질 필요도 있는 건 아닐까. 마침 이번 일요일(3월 29일) 오후 악양에 있는 최참판댁에서는 삼짇날을 맞이하여 조그만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 군(郡)에서는 잊혀져가는 삼짇날 풍속행사를 재현함은 물론 관광객을 포함한 우리 지역민들을 위한 삼짇날 행사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서 가족끼리 손에 손을 잡고 벚꽃 흐드러진 19번 국도를 더러는 오르시고 또 더러는 내려오시면 좋겠다.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고유 풍속을 배우는 게기도 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가족끼리라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나들이는 행복하다. 행복하여 봄빛마저도 과히 넘볼 수 없는 만큼 찬란하기 때문이다.
    오시면 화전에 막걸리 한 사발도 좋고, 신명나게 울리는 사물에 맞춰 어깨춤 한번도 더욱 좋고, 봄산천에 울리는 섹스폰에 취해 옛적 동무를 불러와도 좋으리. 그러다보면 얼었던 강이 풀려 배가 들어오듯 시름도 한순간에 풀려 내안의 질긴 희망도 마침내 꽃을 피울 것이다.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 임도 탔겠지
    임은 안 타도 편지는 탔겠지
    오늘도 강가에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리
    동지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대로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김동환의 <강이 풀리면> 부분

    “동지섣달 얼었던 강물도 제멋대로 녹는데” 하물며 우리들 맺힌 일상사야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닐까 싶다.
    아 참, 잊은 게 있다. 삼월 삼짇날 풍속으로는 여인들만의 놀이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농경제(農耕祭)를 행하여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으며 각처의 한량들은 한 자리에 모여 편을 내어 활쏘기를 즐기기도 하였으며 닭싸움이 성행하기도 하였다고 사전은 또 적고 있다. 또한 사내아이들은 잔득 물이 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하였으며 어린 여자애들은 대나무쪽에다 풀을 뜯어 각시인형을 만들어 각시놀음을 즐기기도 하였다 한다.
    이번 일요일 굳이 참판댁이 아니더라도 좋으니 아이들 손을 잡고 섬진강가로 나서보시랴. 잔득 물을 먹은 수양버들이 그 치렁치렁한 머릿결을 바람에 내어 말리고 있을 것인 즉, 살며시 하나 꺾어(꼭 미안하단 말은 하시고) 피리를 만들어 아이들 손에 쥐어주시면 좋겠다. 아마 계절이 그렇듯 어김이 없듯 그 피리소리처럼 한없이 너른 창공으로 아이들의 꿈이 영그는 맑은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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