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曺植)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건중(健中) 호는 남명(南冥)이며 아버지는 승문원판교조언형(曺彦亨), 어머니는 인주(仁州)이씨이다. 字는 본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이며 관례 뒤에 본이름 대신으로 불렀다. 남명 조식(曺植)은 1558년 4월 11일부터 4월 26일까지 두류산 유람을 하고 《유두류록》을 남긴다. 1558년 4월 24일. 저녁에 정수역(旌樹驛)에 이르렀다. 역관 앞에는 정씨의 정문이 세워져 있었다. 정씨는 승선조지서의 아내이며, 문충공 정몽주의 현손녀이고 승선은 의로운 사람이었다(夕到旌樹驛.館前竪有鄭氏旌門...
임란 때 가토기요마사(가등청정)에게 끌려간 필자의 당시 할아버지의 형님의 흔적을 찾아보려 일본에 갔다. 열도 남단 규수, 시마바라시 호국사(고코쿠지)와 구마모토시 본묘사(혼묘지)를 참배했다. 400여 년 전 조선 밖 외국에서 본국 부모님과 서신 교환한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여대남 일요상인(上人)은 혼묘지의 3대 주지, 고코쿠지 창립 주지로 계셨다. 필체와 영정이 남아 있다. 출입국관리 절차가 9개월 전보다 한 단계 간소화 되었다. 출입국 심사에 소요되는 시간이 날로 짧아지고 있다. 출입국자의 패스포...
따뜻한 날씨가 현관문을 열게 만든다. 봄은 벌써 왔는데 시골집의 실내는 아직 겨울을 품고 산다. 밖이 더 맑고 따뜻하다. 마당에 나와 있는 시간이 훨씬 봄과 가깝다. 올해는 꽃과 나무를 심었던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보려고 한다. 겨울을 지나는 대파와 쪽파, 마늘과 상추를 보고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텃밭 구석에서 화단 한쪽에서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잡초를 제거하고 흙을 고르는 중, 호미 끝이 돌에 닿는다. 돌을 들어내려고 여러 번 호미질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즐...
고하마을다목적회관 앞에 꾸불꾸불 흘러 (구)고하초등학교 옆을 지나 배다리공원 아래에서 주교천으로 합류되는 이름 없는 개천 앞에 섰다. 앞뒤로 산등성이 바람을 막아주고 물이 있으니 논이 있고 논에는 나락이 황금빛을 머금고 있다. 옛날부터 풍년이 들었고 사람들은 터를 잡고 살아온 것이다. 물넘이 보를 만들어 물이 고였다. 오리들이 헤엄을 치다가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가 빼 올리고 유연하게 목운동을 하고 있다. 물넘이 보는 소나기나 홍수에 물이 넘치고 평상시에 일정량 물이 흘러가게 홈을 장치하였다. 고인 물은 썩으니 살아있는 물이 되어야...
바야흐로 파크골프 열풍이 불고 있다. 파크골프는 'Park(공원)'과 'Golf(골프)'의 합성어로, 1983년 일본 홋가이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는 2000년 진주 상락원에서 처음 6홀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파크골프의 규칙은 골프와 비슷하며 18홀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골프와는 달리 공을 굴리는 파크골프는 비거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근력과 체력이 많이 요구되지 않아 중장년층과 노년층, 특히 여성들이 많이 즐기고 있다. 또한 생활주변 가까운 곳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생활스포츠로 파크골프인구는 계속 ...
‘초등학교 앞에서 파란 불이 몇 번 들어왔는지도 몰라. 차들이 꼼짝도 못해.’ ‘3월의 하동이 그렇지 뭐.’ 전화를 한 상대는 차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내게 ‘꽃이 피기 시작한 계절, 그것도 주말에 움직인 건 너 잘못이지.’ 하는 것 같다. 토요일 오후, 하동도서관으로 가는 길이다. 평소 관심이 많던 나무 칼럼니스트인 고규홍작가의 강의가 있어 다리 건너 매화 축제는 생각도 못 했다. 봄나들이로 하동이 붐비는 날들은 대부분 피하고 살았는데 북천면으로 이사를 온 뒤 잠깐 잊고 살았나 보다. 길고 긴 행렬에서 빠져나와 골목에...
지난 4일간 남해안 벨트를 돌아보았다. 부산, 거제, 사천, 하동을 여행했다. 거제는 최고의 맛집이라 예외이지만, 대부분의 식당에는 손님이 없다. 식사 시간 내내 다른 팀은 볼 수가 없다. 부산에는 수조를 갖추고 활어를 파는 50여 개의 가게가 동시에 폐업을 했다. 입구는 전기를 껐다. 상치와 초장을 서비스하는 식당에도 한 팀 밖엔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나날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날씨는 꽃도 피고 화창해 지는데 경제는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암울해 가는...
고하마을 안내판에 〈대가야 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785년간 신다사촌, 한다사촌, 하동촌으로, 읍기는 고하에 있었고 268년간은 성내에 있었으며 고하와 성내가 하동군의 읍기로서의 역할을 해오다〉에서 785년 동안 고을은 신다사촌, 한다사촌, 하동촌으로 불리며 중심지는 古河洞에 있었다. 268년은 하동현으로 읍기는 하동읍성에 존재했다. 《삼국사기》 하동군조에 “본래 한다사군이었였는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하동’이라는 지명이 생기고 군현제 실시에 의거 하동군・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지방 소재 중규모 병원들은 요즈음 분주히 돌아간다. 국민은 전공의들의 파업을 마뜩잖게 보고 있다. 전공의 발 의료대란이 의료체계가 부분적이나마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오이씨디(OECD)를 금과 옥조로 여긴다. 오이씨디는 각국 파업 건수가 미미한데 왜 이것은 인용 안 하는가? 문제(임팩트)가 있으면 이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의료 분야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자정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자정능력을 구현할 책임 있는 집단(스테이크홀드)들이 상대의 탓만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 인식에 있어 정부와...
‘왜, 내가 걱정이 되어 죽것나?.’ 공휴일이나 주말을 상관하지 않고 3교대로 일을 시작한 작은 아이가 퇴근 시간 문자를 받고 전화를 한다. 순간 ‘어.’ 하는 대답을 하면서 당황한 나는 무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삼십대 중반인 아들이 주말과 공휴일이 있던 직장을 마다하고 옮겨간 직장은 우리의 일상과 쉬는 날이 달라져버렸다. 태연하고 적응 잘하는 아이와 상관없이 야간 근무를 해야 하는 주일은 더 걱정스럽고 애가 탄다.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간 아이를 믿고 있으면서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
마을 안내판에 역사를 내용으로 한다면 바른 이해가 되게 해야겠다. 참고 문헌과 주도했던 사람, 협회명 등을 명기하여 심층학습이 되게 하자! 문헌 발견이나 유물의 발굴 등으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수정을 하였다면 안내문 역시 바로 정정해야겠다. 본문 중에 〈이읍 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에서 ‘생각된다’는 어떤 일에 대한 개인의 의견이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은 느낌보다는 기록과 자료를 통하여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개인 보다는 공공의 입장에서 서술해야 객관성과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본문의 〈고하(古河)란 옛 하동이란 뜻이고…1703년…이읍 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단군 때는 모래몰, 진국 때는 다사촌, 변한 때는 악노국, 대가야 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785년간 신다사촌, 한다사촌, 하동촌으로, 읍기는 古河에 있었고〉에서 궁금한 점은 ① 〈대가야 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785년간 신다사촌, 한다사촌, 하동촌〉에서 신다사촌, 한다사촌, 하동촌으로 불리고 785년 동안 邑基는 古河였다는 것인가? ②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교통이 편리하고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모이고 필요에 의하여 통치 조직을 가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