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들인 봉숭아 꽃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며 깔깔거리던 단발머리 시절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녀의 화단가 여기저기에 봉숭아꽃이 피었다. 빨간 꽃송이, 하얀 꽃송이가 탐스럽다. 잎과 꽃을 한 움큼 따와서 작은 도기에 콩콩 찧는다. 휴양림을 즐겨 찾았던 우리가 치유농장을 만들기 시작한 친구 덕분에 그 농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화단에서 옮겨간 꽃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모종으로 있던 농작물이 얼마나 풍성해졌는지 언제나 궁금하다. 손톱에 올린 봉숭아꽃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걷는다....
놀이터에 두 개의 그네가 있는 건 다행이다. 구순인 친정어머니와 초등학교 1학년 손녀가 이른 아침 그네를 탄다. 어머니에겐 증손녀인 셈이니 4대가 모였다. 방학 때마다 오는 아이는 증조할머니 아파트 놀이터에 가는 걸 좋아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두 사람의 그네 타는 모습을 본다. 옥색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외증조할머니와 증손녀는 그네에 앉아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하면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평소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걸 즐겨하시는 성격이라 증손녀와 함께 그 연세에도 그네를 타시며 같이 놀아주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친...
해운대를 가기로 했다. 부산에 있는 대학 동기가 초대한 해운대.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소식이 연일 들리던 시간, 우리는 해운대에서 만날 약속을 했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고 보니 휴가의 절정인 7월말이었다. 가족과의 휴가도 미룬 채 우리를 맞을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이 계절에 바다와 맞닿은 곳에 있는 호텔을 예약하고 우리를 초대한 친구는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던 듬직한 사람이었다. 광양에 있는 동기와 동행하게 된 1박 2일의 일정은 바쁜 일상의 위로가 되었다. 동백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셋이 만...
잠깐 비가 멈추었다. 자꾸 무성해지는 화단에 있는 수국이 곁에 있는 작은 식물들을 덮을 기세다. 여름이 수국꺾꽂이에 좋은 시절이라 새로 나온 순들을 잘라 꽂기도 했다. 그래도 무성한 수국을 오늘은 기필코 큰 화분으로 옮기기로 했다. 소나기는 소나기다. 잠깐씩 틈을 주고 비가 내린다. 엉망이 된 옷을 입고 들어올 수가 없어 잠깐씩 처마 밑을 찾는다. 전화기가 울린다. ‘선생님, 휴대폰에 사진을 올려서 단호박 팔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 나 몰라요. 선생님 집에 가도 돼요?’ 한다. 북천에 살면서 식당일을 하고 가족이 함께 농사를 ...
무섭게 비가 내린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다. 안타까운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고 사망한 사람들의 소식과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들이 보도되고 있다. 급히 빠져나와 인근 학교의 체육관에 몸을 누인 사람들, 방안까지 침수가 된 참담한 모습, 우리와 물에 갇혀버린 가축들의 모습 등이 중계되고 있다. 머리끝이 쭈뼛하다. 산자락에 집을 짓는다는 동생내외가 걱정스러워 문자를 해본다. ‘비 피해는 없나?’ ‘언니야, 신서방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줘.’ ‘너랑 같이 있는데 무슨…’ ‘시동생이 전화도 한 ...
‘기다렸다 네 사람으로 팀을 만들어서 하지 그래요.’ 주말에 한 번 동생과 함께 가는 파크골프장에서 누군가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이다. 함께 다니는 지인이 여행 중이라 부득이 둘이만 가게 되었다. 넷이 그룹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진행하면 되지만 여건상 자주 못가는 사람들은 넷을 맞추기가 힘들다. 둘만 온 팀이 있으면 즉석에서 팀을 꾸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죄인이 된 듯 동생이 대답을 한다. ‘저렇게 남의 일에 간섭들을 하고 싶을까.’ 상한 감정을 추스르...
‘시집 온 아이 튼실하게 자라고 있어요.’ 휴일 끝자락에 양보에 있는 선생님이 사진과 함께 보내온 메시지다. 우리 집에서 가져간 스타백합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나보다. 핑크빛 꽃을 꽃대 가득 피워 올렸다. 내가 분양해 준 집에서 사진과 함께 보내주는 꽃소식은 정말 반갑다. ‘우리집 녀석들은 내 허락도 없이 노랑머리가 되었어요.’ 올해 우리 화단의 백합은 노란색이다. 내 문자에 우스워 죽겠다는 이모티콘이 날아온다. 한참을 꽃이야기로 안부를 물었다. 내일 점심 약속이 있었던 터라 올해 받은 청매화붓꽃의 씨와 어디서 한 움큼 날아와 ...
주말을 함양에서 보내는 동생네는 벌써 시골 사람이 되어서 산다. 그 곳 생활이 더 재미있고, 그 곳의 이웃들이 더 좋고, 그 곳에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고 하니 말이다. 오늘은 가지고 있는 꽃을 나누어주려고 동생부부와 원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꺾꽂이한 산수국, 씨앗을 뿌린 백일홍, 과꽃 모종, 맨드라미 모종 뽑아서 가져다줄게.’ ‘응, 나도 금잔화 좀 가지고 갈게.’ 오전 근무를 마친 동생이 ‘곧 출발한다.’ 고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꽃밭에서 가지고 갈 모종들을 조심스레 뽑아서 종류별로 봉지나 통에 담기 시작했다. 비용을...
워싱톤 디씨, 국회 의사당 주변 노상 주차난이 심각하다. 유료 주차장은 찾기 힘들다. 도로변 주차에 관한 규제가 세밀하다. 차가 금 밖으로 나가도 안된다. 시간대별로 규제한다. 유료 구간에서는 미리 주차증을 발급받아 차 안에다 비치한다. 유료 주차 관리원이 주차증에 기재된 시간을 경과한 차량은 딱지를 붙인다. 의사당 건물은 변천을 거듭해왔다. 돔도 진화 과정에서 생겨났다. 돔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근간으로 한다. 한쪽 날개는 상원 다른 한쪽은 하원이 사용한다. 50개 각주에서 건국 이래 해당 주 출신 유명인사...
뉴욕 맨하탄에서 최근 관광을 즐길 기회가 있었다. 증권가가 있는 곳, 다운 타운에서 오후 반나절 동안 우버 택시를 무려 네 차례나 이용했다. 앱으로 가고 싶은 곳을 찍으면 바로 우버 택시가 온다. 기다리는 시간은 대개 1분 이내다. 우버 택시가 없다면 택시나 대중교통을 타야 하는데, 일단 빈 택시를 볼 수가 없다. 우버 없이 맨하탄을 관광한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버 때문에 맨하탄에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어 좋다. 우버를 뉴욕시가 도입하기까지는 관계기관의 피눈물 ...
미국, 워싱턴에서 차로 두 시간 가량 서쪽으로 가면 자칭 미국 최대 넓이의 리조트가 있다. 설립한 지 50년이 되었다. 이들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라고 겸손을 떤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비범하지 않은 하찮은 야산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아무런 리조트로서의 위치적 장소적 이점이 전혀 없었던 곳을 리조트로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탁월한 생각과 미래를 위한 비전으로 성공한 사례이다. 지면의 높낮이를 잘 분석 이해하여 가장 적은 최소한의 인공을 가미하였다. 생태계는 보존되고 방문객들에게는 자연의 맛을 그...
윤 대통령이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장어를 한 손으로 잡고 들어 올렸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정치 마케팅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통령 또는 대선후보 등이 어시장에서 횟감 고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메시지는 미미 했다. 영세 중소 상인들 사업 잘되게 밀어 드린다는 뜻 정도였다. 이번 윤 대통령의 장어 쇼는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장어는 미끈미끈하여 손으로 잡아 들어 올리기 어렵다. 대개는 잡은 손은 장어를 놓치고 만다. 손은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이번에는 미끈미끈하지만 잡은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