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양초등학교(Ⅱ)흰색으로 단장된 교문이다. 굵은 기둥이 3개이며 왼쪽과 가운데 기둥은 철재 문을 잡아주고 가운데 기둥과 우측 기둥 사이 열려 있는 문은 샛문이다. 좌측 기둥의 표지석에 〈개교 100주년기념 교문 개축 악양초등학교 총동창회 기증 2022.7.17.〉이다. 선배의 배려를 계단에서 보여 주고 있다. 대리석을 다듬어 12단으로 하고 계단의 높이와 넓이는 초등학생의 신체 조건에 적합하다. 12달로 해가 바뀌며 시계바늘은 12를 기점으로 돌고 돈다. 오르내리면서 1년을 계획하고 반성하며 마음의 시계를 읽으면서 등・하교하는 악양의 새 싹은 미래가 밝다! 악양초등학교는 개교 101주년에 100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공민학교 등의 학력을 제도권에서 인정하여 속성 졸업한 것으로 계산된다. 현재의 6년제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연구 대상학교이다. 샛문으로 계단을 오르자 강당 돔에 ‘악양초등학교’가 점점 커지더니 본관 건물이 나타나고 계단식 축대 아래에 넓은 운동장이다. 깡충깡충 교문 계단을 올라 운동장에서 뛰놀 수 있겠다. 샛문 오른쪽 느티나무 아래 마름모 자연석을 세우고 한자로 멋을 부린 네 글자를 볼 수 있다. ‘心’과 ‘志’는 읽을 수 있지만 두 글자는 한참 만에 읽을 수 있었다. 鍊心養志(연심양지)이며 기단에는 취지를 새겼다. 〈山高水長하고 靑鶴이 노니는 方丈勝地 이곳에 鍊心養志의 터전을 닦은 지 於焉 七十餘星霜 故鄕을 사랑하고 母校의 無窮한 發展을 祈願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아 億劫歲月 幽谷 맑은 물에 씻기 우고 다듬어진 天然의 名石에 새겨 晬辰의 碑를 세우노라. 一九九二年 七月十七日. 岳陽國民學校 開校 七十週年 總同窓會 세움〉에서 方丈勝地, 於焉, 星霜, 無窮, 祈願, 億劫歲月, 幽谷, 晬辰 등을 검색하려면 크나 큰 인내심을 요구하고 있다! 운동장에서 높게 담을 쌓고 학교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1920년대 삽과 괭이 지게 등으로 운동장을 고르는 것은 큰 역사(役事)이며 산기슭을 2단으로 쌓는다는 것은 어렵고 위험이 따르는 공사였다. 자녀교육에 대한 악양인의 열정으로 극복하였음을 보여 준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느티나무 아래 챙 넓은 모자의 오른쪽 뒤를 눌러 왼쪽 얼굴의 이마까지 열렸고 귀를 덮은 머리를 양쪽으로 내렸다. 무릎 위에 두 손으로 책을 펼쳤고 앉은 자세로 왼발을 오른발 무릎에 얹어 독서에 빠져 있다. 조금 더 오르자 아람이 넘는 몸통을 꾸부린 소나무로 개교이전부터 터를 잡은 연륜이다. 설명판을 용수철로 부착하였는데 나무를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교육적 장치로 돋보인다. 학생은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을 읽고 배우게 된다. 내용은 더 놀라게 한다. 〈소나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의 ’솔‘은 으뜸을 뜻 한답니다〉. 아하, 솔에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소나무 아래 책 보따리 끼고 서있는 동상 주인공은 ‘반공 소년 이승복’이다. 중앙 현관 앞 둥근 연못에 수련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잎을 수면에 맡기고 물결이 일렁이면 일렁이고 잠잠하면 잠잠하지만 꽃은 스스로 피운다. 10여 년 전에 보았던 그것이 없다! 남자애와 여자애의 석고상이 연못 안에 있었다. 남자애는 오른손을 허리에 붙이고 왼손으로 고추를 쥐고 아랫배를 내밀어 금방 오줌발이 나올 지경이다. 여자애는 오른손 인지를 턱에 붙이고 고개를 돌려 남자애 고추를 내려다보는 장면이다.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부정적인 면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연못 옆 의자에 앉아 둘러본다. 형제봉이 감싸고 앞으로는 구재봉이 넓은 가슴을 펼쳤고 저 멀리 아미산도 보이고 산 중간에 논밭과 민가와 수로가 보인다. 과연 물이 스스로 높은 곳까지 공급될 수 있을까? 풍요로운 평사리는 아래로 깔렸다. 터를 닦은 정성이 학생들의 꿈을 키우고 있다. 나오면서 교문 앞 선배들이 세운 鍊心養志에 섰다. 귀한 선물을 읽고 뜻을 새기게 해야겠다. 한글로 옮긴 설명판을 설치하고 교장선생님은 입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안내를 하자! 입학생은 평생 그 감격을 기억할 것이다. 〈연심양지. 산고수장하고 청학이 노니는 방장승지(方丈勝地) 이곳에 연심양지의 터전을 닦은 지 어언 칠십여성상 고향을 사람하고 모교(母校)의 무궁(無窮)한 발전을 기원(祈願)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아 억겁세월(億劫歲月) 유곡(幽谷) 맑은 물에 씻기 우고 다듬어진 천연의 명석에 새겨 晬辰의 비를 세우노라. 1992년 7월17일 악양초등학교 개교 70주년 총동창회 세움〉. 晬辰을 읽고 뜻을 풀이하는 악양초등학교 출신이 되게 하자!
-
예견된 행정 전산망 장애지난 금요일 내내 행정망이 마비되어 민원서류 발급이 중단되었다. 88년 행망이 가동된 이래 이런 재난급 사태는 처음 일어났다. 행망 가동 이전에 주민등록등초본 한 통 떼려면 해당 거주지 동사무소까지 찾아갔다. 지금은 전국 어느 지방행정기관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민원 서류를 발급해 준다. 행안부 장관은 대한민국 행망이 세계 최고라며 미국 국토안전부 장관과 행망 관련 양자 회담하려 미국 출장 중이었다. 사고가 터지자 급거 귀국했다.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내부 전산망에서 작동 오류 문제가 발생했다. 인증서가 담긴 유에스비(USB)가 오염되어 행망에 묻혀 잠입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인증시스템을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정확한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그러나 원인을 아직도 찾아 내지 못하고 있다. 백방으로 조치해보나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는 문제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그들이 맞닥뜨려진 곳은 행망 내부의 시스템, 그 속에 수억 줄의 프로그램 코드들이다. 이것을 짧은 시간 안에 알고 문제의 부위를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용역 업체에게 매달리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용역업체는 개발업체와 유지보수 업체가 분리되어 있다. 유지보수업체는 십여 개의 타사가 개발한 정보시스템을 손금 보듯이 정확하게 파악하여 문제 부위를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불가능하다. 찾아냈다면 우연이거나 운에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개발업체는 개발 결과물에 대해 정성스러운 안내를 하지 못한다. 제 3자가 설계도서 등을 보고 문제 부위를 찾아내기는 모래밭에서 점 찍힌 모래 하나 찾아내는 것에 비유된다. 문제는 오래전부터 잉태되어 왔다. 2000년대 초 이러한 대형 시스템을 만들고자 할 때 설계와 구현을 분리하여 발주해야 한다는 업계의 의견이 있었다. 설계와 구현을 분리했어야 하나, 대기업들이 반대했다. 월급쟁이 씨이오(CEO)들이 매출 목표를 채우지 못할까 봐 설계와 구현 분리 발주를 반대했다. 설계와 구현이 분리되면 설계 사업은 수주했으나 구현 사업은 수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설계와 구현을 분리 발주하고 있다. 설계와 구현을 분리했을 때 이점은 상당하다. 이점 첫 번째는, 설계 단계가 구현 사업과 다르게 독립 발주되면, 설계에 대한 타당성과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기회가 명확해진다. 설계와 구현을 합쳐 발주하는 지금도 문제없다고 강변할 수 있다. 그러나 설계 납품물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설계 사업자의 손을 떠나 독립된 제3 자의 확인과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점 두 번째는, 설계 사업자는 구현에 대한 예산 범위 등에 대한 제약을 느끼지 않는다. 소신껏 설계를 할 수 있다. 사업 범위 밖의 것을 설계에 반영하라는 것이 아니다. 범위 안의 일을 효과성 요구수준에 맞는 설계를 하여야 한다. 요구수준이 3일 때와 4일 때의 설계 내용이 달라야 한다. 이점 세 번째는, 모듈로 설계되어 마치 부품처럼 만들어지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어느 부품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그 부품을 들어내고 비축 되어있는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우면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 이점 네 번째. 대형 정보시스템 특히 행망 등은 운용 중 크고 작은 오류는 발생한다. 이런 오류가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에 대한 관리 체계가 설계 단계에서 꼼꼼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체계 통합(시스템 인티그레이션)을 위한 신뢰성 설계도 빠트리지 않아야 한다. 행망의 신뢰성 설계를 새롭게 다시 해야 한다. 행망 인프라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정부의 행망 개발사업에 관한 요구사항이 보다 엄밀하고 엄정하게 선포되어야 한다. 설계 사업자와 구현 사업자는 분리되어야 한다. 설계 기술이 수학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설계용역대가에 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
언니의 연애가을이 다 가기도 전에 갑자기 찾아온 ‘X언니의 연애’ 이야기로 우리는 부산하다. 악착 같이 세상을 살아온 X언니는 어느 날 찾아온 사람 때문에 소녀가 되었다. 평소 성격이나 그동안 살아온 이력과는 너무도 다르게 하루를 산다. 아침 일찍 물어오는 안부 문자에 눈시울을 붉히고, 그렇게 씩씩하던 언니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굴만 붉히고 있다. 두 분 다 아픈 배우자를 간호하다 보내드린 사람들이다. 언니의 남자친구는 30년 이상 병석에 있던 아내를 위해 마음을 다했던 분이라 한다. 자신의 죽은 아내가 ‘당신을 보내준 것 같아요.’ 하신단다. 두 사람이 만나 각자의 배우자를 다시 보내드리는 애도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보지도 못한 언니는 처음 맞이하는 그 감정에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소중한 물건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우리의 세상살이에 연애 감정은 어떤 것일까? 주변의 모든 것을 반짝이게 하는 것일까? 60대 중반도 넘긴 언니에게 찾아온 그 감정이 소중하기만 하다. 옆에서 구경꾼이 되어버린 우리는 날마다 궁금하기만 하다. 젊은이들의 연애 감정만 소중한 것일까? 자녀들이 이런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별 이야기들이 오고가지만 일단 우리는 ‘두 분이 열심히 사랑하기를 바란다.’에 한 표를 던진다. 그 사랑의 끝은 일단 미루어 두기로 하고. 연애 감정은 가슴을 뛰게 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한 설렘은 없을 것 같다. 감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말을 오랜만에 실감한다. 사랑에 빠져 있는 언니를 구경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이야기해요. 내가 하나씩 같이 해줄 테니…’ 언니의 그분이 하신 말이다. 다정하고 따뜻한 분인 것 같다. 일찍 소녀 가장이었던 언니, 모든 일을 자신이 처리하고 모든 바람을 자신이 맞으며 앞장서서 걸어온 시간들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언니의 생애에 한 번쯤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감정들, 받아본 적 없는 따뜻한 보살핌, 내가 널 좋아한다는 생활 속의 작은 고백들이 언니의 하루를 장식한다. 저녁 산책을 하면서 시린 손을 잡아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언니가 꿈을 꾸는 소녀 같더라는 후배의 말에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부럽기도 했다. 평소에 언니의 모습은 여장부 같다. 큰일을 처리하는 능력도, 크고 작은 단체의 리더로도 손색이 없다. 그런 언니가 요즘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나 색다르다. 귀엽기도 하다. 살다가 한 번쯤 저런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인연이 쉽게 오지는 않겠지만 살펴보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정담이라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면 남은 인생들이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혼자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공부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버린 젊은 친구들은 연애도 결혼도 두려워한다. 행복하지 못한 자신들의 부모들을 보면서 일찍 그런 희망들을 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누가 누구를 책임지는 일을 싫어하고 내 것을 상대와 공유하고 나누는 일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사랑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을까. 내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상대에게 줄 사랑은 있을까.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형체도, 모양도, 색깔도 없는 사랑은 누가 얼마만큼 가지고 있을까. 사랑은 바닥나는 것이 아니라서 퍼내면 낼수록 솟아나는 것이라 믿는다. 겨울이 삐죽이 얼굴을 디밀고 있다.
-
악양초등학교(Ⅰ)수려한 형제봉 정기를 내려 받는 악양초등학교를 찾아 나섰다. 세 가닥 길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한 가닥은 개치・대축・소축・덕계마을 지나 300년 수령의 상수리나무처럼 만수(萬壽)를 보장하는 경로당을 지나 취간림으로 올라오는 길, 다른 가닥은 회남재를 넘고 정동마을로 내려오는 길, 나마지는 외둔・상평・입석・봉대마을로 올라오는 길이다. 삼거리에 세월을 머금은 비석들이 나열되었다. 좌로부터 전학무위원강태진기념비(前學務委員姜態進紀念碑)이다. 흙을 돋우고 돌에 악양면새마을지도자협의회에서 ‘면민의 쉼터 뉴 새마을 운동’ 그리고 기단에는 ‘꿈이 있으면 땀을 흘려라!’를 새겼다. 옆에 이순신 백의종군로비에 ‘합천 율곡(135km), 화개 12km, 하동 악양 정서리 악양우체국옆’이라 새겼다. 현 위치는 정서리라는 것이다. 회남재 가는 길에 정동마을 표지석이 있다. 사전에는 정동(正東)은 똑바른 동쪽, 정서(正西)를 똑바른 서쪽으로 풀이하고 있다. 해 뜨는 곳을 동쪽 해지는 곳은 서쪽이다. 해를 기준으로 바른 동쪽에 정동 마을, 정서리는 바른 서쪽에 있다는 마을일까? 이순신 백의종군 기간은 1597년 4월 1일부터 8월 2일까지이다. 하동으로 들어왔다가 하동으로 나간다. 악양과 두치에서 각 1박, 하동읍성 2박, 칠천량 패전 보고를 받고 남해안을 둘러보는 옥종 5일이다. 재임용교서를 받고 임지로 가는 한나절 하루 밤을 보내게 된다. 《난중일기》의 하동으로 들어오는 〈1597년 5월 26.일. 병진. 종일 큰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면서 길에 올라 석주관(구례 토지면 송정리)의 관문에 이르니 비가 퍼붓듯이 왔다. 말을 쉬게 했어도 길을 가기 어려워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악양 이정란의 집에 당도했는데 문을 닫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들 열에게 억지로 청하게 하여 들어가 잤다. 행장이 다 젖었다〉. 이순신은 1597년 1월 28일,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가 파직되고 3월 4일 한양 의금부 옥에 갇혀 27일 만에 옥문을 나와 도원수 권율 휘하에 백의종군하려 합천으로 이동한다. 백의종군이란 ‘흰 옷을 입고 직무를 수행 한다’는 것으로 죄 지은 장수를 처형 대신 싸움터에 내보내 공을 세워 속죄할 기회를 주는 형벌이다. 〈4월 13일 맑음.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 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어머니는 한양으로 아들 면회 갔다가 석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돌아오다 세상을 떠나고, 이순신은 어머니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길을 나선다. 이순신은 이십여 차례에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7월 9일 맑음. 이 밤은 달빛이 대낮같이 밝으니 어머니를 그리며 슬피 우느라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는 역사와 교훈의 길이다. 황치산 아래 횡천면 여의마을 입구에 기와지붕을 얹은 솟을대문 기둥 사이에 안내판을 걸고 〈이순신 장군이 머문 곳, 백의종군 중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용 교지를 받고 첫날 도착한 마을입니다. 1597년(정유년) 8월 3일〉이라고 기록하였다. 실로 여의마을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로 되고 있다! 비 맞으며 하동으로 접어드는 이순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동에서 첫째 빔을 지새우는 이정란 집터에 ‘백의종군로 연수관’을 꾸며 충무공 정신을 배우는 명소가 되게 하자! 학교 담벽을 흰색으로 단장하고 각종 게시물을 전시하였다. ① 〈100년의 역사 새로운 미래로 날아오르자〉. 1922.7.17. 악양공립보통학교 개교. 1946.9.1. 매계분교 개교. 1950.2.10. 축지초등학교 개교. 1996.3.1. 악양초등학교(국민학교를 일제히 초등학교로 변경). 1998.3.1. 매계초등학교 통폐합. 1999.9.1. 축지초등학교 통폐합. 2023.2.7. 제100회 졸업(총7,377명). ② 〈100년의 역사를 품은 나누기 행복길. 풍경사진을 나열하였다〉. 누런 평사리 들판. 산을 배경으로 둥근 연못. 의관을 정제하고 가야금을 탄주하는 노인. 허수아비. 대봉감. 학교행사 사진. ③ 〈마을에서 자라고 세계로 나아가는 악양 어린이. 손바닥 도장에 글을 새겼다〉.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 넌 소중한 사람이야, 아빠 힘내세요. 내 모습을 나타내자. 니가 웃으면 나도 좋다. 잊지 마 중요한 건 계속 해 보는 용기야. ④ 〈학생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제목 : 소리. 이소민. 졸졸 흐르는 섬진강에/자갈 자갈 소리/모래 소리/반짝 반짝한 섬진강에 탁탁 소리/재첩 소리/잔잔한 섬진강에/휘~/바람이 분다/ 늘도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준/섬진강.
-
조건 없는,지독한 감기다. 누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앉아서 잠을 잘 궁리를 해보기도 한다. 쿠션을 가져다놓고 비스듬히 기대고 그러다 잠깐이라도 잘 수 있을지… 그러나 매번 실패다.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에 일정이 있다. 아이들을 만나거나 어른을 만나는 일, 성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아픈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각자 사연이 있고 각자 이유가 있다. 부모가 만들어준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른이 된 사람들, 또 그 아이어른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힘든 아이들 등 문제는 문제를 안고 자꾸 커지고 자꾸 늘어난다. 같은 부모아래 자라는 아이들도 부모를 받아들이는 게 달라서 각각 다른 사람들로 성장한다. 자신이 가지고 태어나는 성격적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게도 아들 둘이 있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 첫째인 큰아이는 받는 사랑도 많았지만 기대도 컸고 고달프기도 했을 것이다. 부모도 처음인 우리가 욕심만으로 키운 아이, 착하고 어리석기만 한 아이에게 우리가 거는 기대는 큰 짐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그런 깨달음을 좀 더 일찍 얻었더라면… 몇 년 전, 손녀 교육문제로 며느리와 내여동생이 다툰 일이 있었다. 아들이 낳은 손녀 또한 첫 번째 자녀인지라 ‘이런 보물이 어디서 왔나.’ 하고 다들 들여다보던 시절이었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친정 식구들은 누구의 아이라도 사랑스러워하며 산다. 그러니 손녀가 태어났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손녀가 태어나던 날, 우리 세 자매는 경기도까지 달려갔다. 초록색 강보에 싸여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경 아래로 흐르던 눈물을 훔칠 생각도 없었던 기억이 있다. 어른의 말에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을 것이다. 철마다 음식이며 아이의 옷이며 장난감 등을 사주는 재미로 살던 동생이 아이들에 대한 한마디 말도 없었다. 아들이 여러 번 연락을 하여도 모른 척 하면서 제법 시간이 지났다. 마음이 아팠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기다렸다. 명절에 오지 못했던 아이들이 주말이라도 다녀간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손녀의 손을 잡고 여동생 집으로 간다. 사업장을 겸하고 있는 여동생의 집은 어머니와 같은 동에 있다. 수업을 마친 시간이라 마침 아무도 없다. 그렇게 자기를 좋아하던 이모할머니랑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금방 달려가서 안긴다. 아이가 무슨 잘못이랴 싶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이것저것 이전처럼 물어보고 선물도 한아름 안겨준다. 치료실에는 여전히 신기한 기구들과 장난감들이 많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손녀는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침대로 소파로 그네로 옮겨 다니며 한바탕 신나게 놀고 있다. 마트에 간다던 아들 내외가 과일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이렇게 어설프지만 화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리 와 앉아라.’ 둘이 나란히 앉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한다. 조건 없이 베푸는 우리의 사랑이 의심스러웠다는 며느리의 말에 우리는 너무 놀랐다. 다른 속내가 있을 것이라고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고. 이 아이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나. 참 난감하기도 하다. 한 번 마음을 주면 지독하게 사랑하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각박한 도시에서 안간힘으로 버텨온 그 아이의 삶이 그대로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이 아이의 부모는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을까. 부모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호의적인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다는 아이는 갑자기 쏟아지는 이모나 시댁 식구들의 마음들이 부담으로 느껴졌을까. 이웃이라도, 혹은 새로 알게 된 마음이 통하는 상대라면 아낌없이 베푸는 우리의 생활방식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던 그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얘야, 우리는 너에게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단다. 그저 우리에게 온 손녀가 너무도 귀한 사람이라서 그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란다.’ 몸도 마음도 춥다.
-
빚 갚는 게 재미있다빚을 대신 갚아 줄 사람이 사라졌다. 세계 경제가 1-2년 이내 좋아 질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이 줄어 들고 있다. 미국의 기준 금리도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만개의 조가 모인 일 경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국민연금에서 정부가 진 미 실현 채무를 포함한 것이다. 정부가 개인의 부채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은행들에게 호통이나 한번 쳐 주는 것 밖엔 없다. 부동산 시장은 얼어 붙어있다. 거래가 실종되었다. 통상 거래량의 5% 수준이다. 은행 금리가 높은 상태이고, 주택담보 대출 문턱이 높은 현실이다.지난 5년 이내 일었던 거품이 꺼지는 구조조정 과정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다. 향후 3년 이내 아파트를 매각할 때 그때까지의 은행 대출 액 이자만큼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은행 대출 원리금 압박을 받고있는 대부분의 가계 대출자들이 지금 아파트를 판다면 그나마 선방하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은행 대출금 금리가 지금보다 더 오를 것이다. 지금도 대출 원리금 갚기가 어려운데, 앞으로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빚의 크기는 총액 보다는 매월 내야 하는 원리금의 부담 정도가 더 체감이 되어 크게 다가온다. 대출 원금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빚의 크기가 점점 늘어 날 전망이다. 자영업자의 연체 율이 5년전에 비해 배가 늘었다. 번 돈으로 원리금을 못 내는 기업들도 늘어 나고 있다 연체하지 않고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질 때이다. 빚을 갚는 다는 것에 대해 어떤 경우일지라도 포기하지 말라. 남 탓하지 말라. 남에게 떠넘기지 말라. 내 빚은 지구상에서 오직 나만이 책임져야 할 책무이다. 빚 갚을 계획을 수립해 본다. 계획을 수립 하려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버는 것은 변변치 않은데 쓸 곳은 많고, 줄일 수는 없고 막막할 뿐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 출사표를 던져 본다. 높은 신용 등급자로 새롭게 등극하겠다는. 채무에 대한 변제 계획을 세워본다. 계획은 세우는 것이 안 세우는 것보다 훨씬 낫다. 계획의 제 일조는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이다. 눈을 부릅뜨고 현재를 분석해보면 안개가 걷히듯이 하나하나 사물이 눈에 들어온다. 계획 두 번째. 채무를 모두 변제하고 난 다음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만족과 행복에 젖어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이를 글로 써 놓는다. 세 번째로는 향후 5년간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엑셀로 짜본다. 남다른 방법을 찾아야 내야 한다. 우선 소비와 지출을 재구조화(리스트럭처링)한다. 자구책을 강구 해야 한다. 자본적 지출이 있다. 학원 수강료 등이 예가 된다. 자기계발비로 지출한 후 소득이 높아진다면 이곳에 소비해도 좋다. 투 잡도 고려 대상이다. 팔 수 있는 것은 다 판다. 지출은 줄이고 벌이는 늘려야 한다. 계획은 머리 속의 상상을 뚜렷하게 눈에 들어 오게 바뀌어 준다. 신념을 더욱 강하게 해 준다. 확신을 가져온다. 성공 가능성을 높여 준다. 이율이 높은 대출에 변제 우선순위를 둔다. 이곳을 집중 공략한다. 빚 갚는 것이 돈 쌓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 대출 한 건 해결하면 마치 돈 찍어 주는 전자제품 하나 사 들이는 것과 같다. 이 기계가 매월 찍어 주는 돈으로 원리금을 내기에 나는 더 이상 원리금에 신경 안 써도 된다. 현재 내고 있는 금리보다 낮은 곳으로 옮겨 탄다. 더 이상 빚을 늘리지 않는다. 빚을 깨끗이 청산한 다음 스스로에게 그간 노고에 칭송해 준다. 인생 최고의 희열을 느낀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특별사법경찰권 도입’은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길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은 건강보험제도를 기반으로 전문성과 보장성을 갖추어 발 빠르게 대응해 왔다 건강보험의 가장 큰 강점은 저비용으로 의료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제도 시행 이후 단기간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을 달성하여 OECD 평균보다 적은 의료비 지출로 국민 건강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의료비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추세이고, 향후 정부지원금과 보험료 수입 확충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제고 방안이 시급하다. 이에 공단은 보험재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재정 누수의 원인인 불법개설기관을 수사할 수 있는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 제도 도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번 국감감사에서도 여.야의원 모두 한목소리로 불법개설 의료기관 단속을 위해 공단에 ‘특별사법경찰(특사경)권 부여를 주문했다. 불법 개설기관이란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개설할 수 없는 비의료인 또는 비약사가 의료인의 명의를 대여해 개설 운영하는 사무장병원, 면허대여약국을 말한다. 사무장병원은 환자의 안전보다는 영리추구를 주목적으로 운영하여 과잉 진료나 불법적인 환자 유치 등으로 국민의 생명과 의료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사무장병원은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고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 뻔하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14년(2019-2023)간 전국에서 1,710개의 불법개설 의료기관이 적발되었고, 이들 기관이 공단으로부터 부당하게 받아 간 비용이 약 3조 4,300억 원 정도에 이른다. 이는 국민이 받아야 할 의료혜택이 그만큼 사라진 것이다. 이런 불법 개설기관들이 왜 이렇게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사무장병원 개설은 매우 조직적이고 네트워크화되고 다양한 설립 형태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에 전문성을 가지고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데, 수사권이 없는 공단은 행정조사 등 서류 확인만으로는 불법개설에 투입된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한계가 있다. 의료계 역시 의료질서 보호를 위해 사무장병원 근절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적극적인 협조를 통한 효율적인 단속 체계로 국민이 납부한 소중한 보험료가 더 나은 급여 혜택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보험재정을 지켜야 한다. 공단은 2014년부터 불법개설기관을 조사해 오면서 쌓인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전국적인 조직망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불법개설 의심기관 감지시스템(BMS)도 구축되어 있어 수사에 필요한 정보파악과 활용이 매우 용이하다.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공단의 수사권 오.남용에 대한 안전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공단 특사경의 수사권 범위는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으로 법제화되어 있어 그 권한을 넘어 운영할 수 없다. 선량한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공단의 특사경의 조사 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공단에 특사경이 도입되면 실효성 있는 사무장병원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고, 불법개설기관 퇴출로 건전한 의료생태계가 유지되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
-
정동・정서마을 기원악양 땅은 2000년 전부터 선인들 삶의 모습들이 동이열전(東夷列傳)과 위서(魏書)에 나타나고 삼한 변한(弁韓) 12국의 하나인 낙노국(樂奴國)의 도읍지라고 명기되어 있는 오랜 역사와 유서 깊은 고장이다. 면사무소 옆 길목 돌 위에 자연석을 가로로 얹고 크고 깊게 ‘정서마을’이라 새기고 횐 물감으로 마감하였다. 기단에 ‘2019.5’이라 명기되었다. 회남재로 방향을 잡는다. 도로 우측 기단 위에 사각형으로 깎은 2개의 판석에 자연석을 앉히고 가로글씨로 ‘정동마을’로 새기고 기단석에 ‘2018년 6월 5일 건립’이라 명기되었다. “정동마을과 정서마을이라!” 이웃하는 마을끼리 ‘정’은 공통이고 ‘동’과 ‘서’로 구분된다.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름은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쉬우며 뜻이 내포되어야 하겠다. 지명은 지형지물의 특성, 유래 등을 강조하였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대사처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인정받는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라는 동요 가사에 익숙하다. 태양이 이동하여 밤낮의 변화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도 일상생활에 아무렇지 않다. 악양을 중심으로 해가 뜨고 지는 가상의 선을 긋고 해 뜨는 쪽을 동쪽으로 지는 쪽을 서쪽으로 하고 있다. 正은 ‘바르다, 정당하다’는 뜻을 가지고 ‘정’으로 발음된다. 정동(正東)은 똑바른 동쪽. 정서(正西)는 똑바른 서쪽이다. 화사별서(조씨고가)를 찾아가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도로변에 붉은 벽돌집이 있다. 처마 밑에 노란 물감을 먹인 나무 판에 검은 글씨로 亭東里老人亭(정동리노인정)이다. 그렇다면 正이 아니고 亭이란 말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조금 더 올라가는데 커다란 새움 돌에 굵고 깊게 亭東園(정동원)을 새기고 흰색으로 마감하였다. 한글로 새겼다면 하동 출신 인기 소년 가수 ’정동원‘과 관련지어 보겠는데. 정자(亭子)를 기준으로 동서쪽 마을로 구분되었다. 그렇다면 기준점이 되는 정자는 어디에 있을까? 상신마을 접어들어 주렁주렁 달린 대봉감 따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악양 땅에 들어 왔던 거지가 1년 만에 나간다는 말이 있던데요?” “아니라요! 하루에 한집씩 얻어먹고 1년 만에 나가는데 그래도 3집이 남았다 하지 않습니까. 반딧불도 볼 수 있답니다. 우리 마을에 터를 잡으세요!” 화사별서 앞에 안내판이 있다. 〈상신마을 문화 탐방로. 상신마을은 악양면사무소에서 1km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으로 부계마을, 서로 주암마을, 남으로 정서마을과 정동마을, 북으로 노전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정서마을 위쪽 지역에 잘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새터몰(上新)’로 불린다. 정서리는 악양의 중심지이며 하동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된 마을이다. BC 5000년 금석병용시대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었고 변한 때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의 심장이었다〉. 亭은 높은 곳에 지어진 집’ 또는 ‘높이 지어진 집’으로 정자나 초소의 뜻이고 음은 ‘정’이다. 중국 글자 亭을 차용하면서 뜻과 음을 우리 것으로 옮긴 것이다. 초소로 해석하면 낙노국 궁궐의 동쪽 초소가 있던 지역을 정동리, 서쪽 초소 지역을 정서리로 불린 것이 아닐까! 악양 취간림을 찾았다. 입구에 큰 돌을 세우고 비문이 있다. 〈취간림유래. 악양동천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악양천의 중간지점 취등(翠嶝)에 수구막역할(水口幕役割)을 하도록 조림하고 가꾸어 오면서 수려한 경관으로 다듬어졌으며 취간정(翠澗亭)이 건립된 이래 이 숲을 취간림(翠澗林)이라 부르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정(亭)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재일동포 홍갑동 옹(翁)께서 사재로 팔경루(八景樓)를 建立 기부하여 면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었다. 2천년 삼림청 주관 생명숲가꾸기 국민운동본부에 제일 먼저 우수상을 받은 아름다운 숲이다. 서기 이천사년 1월 일 竪 소천 서〉. 竪는 ‘세울 수’로 뜻을 나타내는 立과 음을 나타내는 수(臤)의 합자이다. 비문에 〈翠澗亭이 건립된 이래 이 숲을 翠澗林이라 부르게 되었다〉에서 취간정이 생기고 취간림이 되었다. 취간정은 악양의 기준점이며 亭東里와 亭西里로 구분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옛 지명은 대부분을 한자로 표기되었다. 해방 이후 한글로 되어 읽을 수 있지만 뜻을 새기는 것은 어렵다. ‘정동리’의 뜻을 해석하는 역할은 지역사람 몫이 아니겠는가. 한글 지명에 한자를 병기하던지 유래를 요약한 안내판 설치는 의미 있는 친절이며 지나는 나그네 뜻과 음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
목 짧은 기린 지피‘어린이 뮤지컬 목 짧은 기린 지피’ 아니 가족 뮤지컬이라고 적혀 있었지. 손녀 희연이가 온다는 주말에 마침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가족 뮤지컬 공연이 있다 길래 선뜻 약속을 했다. 후배 손녀랑 할머니 둘이랑 같이 가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아들 가족이 온다던 주중에 처가에 초상이 나서 아이들이 올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후배 손녀는 어려서 혹 관람이 어려우면 데리고 나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혼자 가기는 부담일 수도 있겠다 싶었고, 어린이 뮤지컬을 보는 재미도 괜찮을 것 같아서 가기로 작정을 했다. 손녀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공연장으로 갔다. 제목이 미리 보여주는 것은 결핍이다. 기린의 특징 중 가장 큰 특징은 목이 길다는 것인데 ‘목 짧은 기린’이라고 한다. 높은 곳의 과일도 따먹지 못하고, 먼 데서 오는 적을 볼 수도 없어 일상이 괴로울 것이 뻔하다. 내 손녀 희연이는 키가 작다. 며느리가 키가 작은 편이어서인지 또래에 비해 작은 편이다. 요즘처럼 키 큰 아이들이 많은 시대에 키가 그 아이의 고민거리가 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오늘 이 공연을 함께 보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나누고 싶었는데… 후배는 내손녀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시간이 되면 들어가자고 한다. 활달하고 어린 손녀가 공연 전 여기저기 달아날까 걱정이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주를 이룬다. 혹 엄마 혼자 아이랑, 아빠 혼자 아이랑 온 경우도 많다. 할머니랑 온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공연이 시작될 무렵 우리는 자리를 찾아 앉았고 극이 시작되자 시끄럽던 아이들도 조용해졌다. 공연은 엄마 기린 미야가 지피를 낳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아기가 태어났는데 여느 기린과 다르게 목이 짧지만 엄마 기린은 그 아이를 정말 사랑스러워 한다. 주변의 질타를 받고, 무시를 당하고, 엄마 기린이 따다주는 나뭇잎이나 과일 등을 받아먹으면서 살지만 지피의 꿈은 변함없이 ‘보초기린’이 되어 마을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 지피의 꿈은 모든 기린들의 비웃음을 샀고 친구가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때 나타난 호피무늬를 한 얼룩말을 만나게 된다. 비슷한 처지의 목 짧은 기린 지피와 호피무늬를 한 얼룩말 통가는 서로를 위로하며 친구가 된다. 또한 공연을 보는 아이들도 극중으로 들어가 지피를 격려하고 지피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 무렵 평화롭던 초원에 사냥꾼이 나타난다. 목이 긴 ‘보초기린’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마을은 비상사태가 되었고 새로운 보초기린이 필요할 때 지피는 자진해서 보초기린이 된다. 키가 작은 지피는 살금살금 다가오는 사냥꾼의 발을 먼저 보았고, 마을을 지킬 수 있었다. 지피가 큰일을 해냈을 때 공연을 보는 아이들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함성을 지르고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공연장이 떠나도록 신이 나서 들썩거렸다. 우리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행복한 표정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더 좋은 구경꺼리였다. ‘오늘 함께 이 공연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초등학교 1학년이고 나름대로 야무지고 똑똑한 편이지만, 나이가 들고 자라야할 키가 자라지 않으면 고민하고 힘들어 할까 미리 염려가 된다. 오늘 본 한 편의 뮤지컬이 아이들의 마음에 남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좋은 공연을 보거나 체험을 해보는 건 간접적인 교훈이다. 어른들의 입으로 하는 말은 아이들에게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겠지만, 이야기를 통한 극 중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 직접 느껴보는 일은 아이들에겐 가능한 일이다. 공연 내내 지피의 편을 들며 사냥꾼의 위치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박수를 쳐주기도 하면서 몰입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공연장은 관람객 모두가 참여하는 무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관람객을 구경하는 관람객이 되어 덩달아 즐거웠다. 가을이 점점 내게로 온다.
-
군 허리가 깨져 척수가 흘러나온다젊은 세대들이 신선한 비전을 원한다. 국민소득 삼만 불 시대에 고등학교, 대학을 다니고 자유 분망하며, 게임, 에스앤에스와 카페 문화 등에 익숙한 20, 30대를 멤젯 세대라 일컫는다. 그들은 독립적이며, 독창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 조직문화에 수용되기를 거부한다. 그들의 세대관, 가치관과 미래 비전이 서로 부합하는 사회 환경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학에서 알오티씨 희망자가 없어서 군 초급 장교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대학, 그렇게 큰 대학에서 고작 4명의 초급 장교를 배출했다. 정성기 때에는 100여명이 배출된 대학이다. 서울의 한 대학, 알오티씨 선배들이 돈을 추렴해서 원룸을 얻어 주면서까지 후배들을 유치하고 있다. 이래도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육사 생도들도 저학년 때 자퇴하는 생도가 예년에 비해 늘었다. 군에 비전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군 자원이 일반적으로 부족하다. 티오를 완전히 채운 군 조직이 드물다. 사병들은 군 복부 기간이 짧아 맡은 업무에 숙달이 덜 된 상태에서 전역을 한다. 따라서 예비군의 전력이 약화되고 있다. 초급 간부 하사, 중사, 소위, 중위 등, 그들의 급여가 우선 적다. 초급 하사관이 이것 저것 떼고 받는 것이 100여만 원이다. 최저임금 시급이 1만 원인 시대에 초과근무까지 한 하사관의 급여 치고는 너무나 적다. 배달이나 편의점 알바 보다도 못하다고 하소연한다. 사병 특히 병장의 급여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하사 및 초급장교의 대우를 대폭 손보지 않는다면, 군 허리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하사관이나 초급 장교들에게 배정되는 숙소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 그들의 숙소는 곰팡이 냄새가 진동한다. 그 냄새를 맡아 본 지도자가 없다. 1인 1실을 우선 보장해야 한다. 1인당 거주 전용 면적을 최소 3평 내지 5평 이상 제공해야 한다.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경우는 1인당 최소 12평 이상은 보장되어야 한다. 전 정권 시절, 군 인적 자원의 부족을 과학 신무기로 대체한다고 한다. 이는 잘못된 발상이다. 적국과의 경쟁에서 인적 자원은 그 자체의 고도화로 대처해야 한다. 정치권이 무책임하게 사병 복무 단축을 한 결과 군 허리가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악화되기 전에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국방 인프라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사관의 열악한 급여 체계와 초급 장교의 복무 후 혜택, 가산제도 등에 관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알오티씨 소위가 전방 소대에 배치되면 병사들과 사회적 서열 가리기 게임에 들어간다. 급여는 얼마나 받는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가? 군 짠밥은 얼마나 먹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군에 있어야 하는가? 등으로 그들만의 가치관 경쟁 리그에 돌입한다. 신임 하사관과 초급 장교들이 그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을 확립해 나가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군 현대화로 입 막음 해서는 안된다. 군 인적자원의 재 구조화가 우선이다. 무기의 현대화는 인적 자원이 제대로 작동할 대에만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포플리즘을 극복 못하면 안보에 큰 구멍을 메울 수가 없다. 군 복무 기간을 김대중 정부 때 12개월 줄이고 문재인 정부 때 또 6개월 줄였다. 현재는 18개월이다. 그리고 군 조직의 재구조화가 없는 현실에서 사병 급여 만 올렸다. 표를 얻은 수만큼 대한민국의 국방 특히 그 허리는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 신뢰도 잃고 국방도 잃은 최악의 상태를 극복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