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야기(100)

(주)하동신문 36 5,263

무군(武軍)터 의 쇠 소리 금기

양보면 진암 마을 본 담에서 동쪽으로 보면 세칭 와우산(臥牛山) 자락에 조그마한 마을이 하나 있다.
농어촌의 인구가 감소됨에 따라 일면(一面) 일초등교(一初等校)제가 부득이 시행되면서 이 면내에도 4개 초등학교(初等學校)였던 것을 하나로 통폐합하여 양보초등학교가 이곳에 잔존케 되었다.
아주 먼 옛날에 해안선을 지키면서 인근에 읍기를 수호하는 군병들이 무장을 하고 이곳에서 진을 치고 주둔하였던 곳이라 하여 무군터란 지명이 훗날 생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는 쇠 소리(꽹과리, 징)를 함부로 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 사연인즉 옛날에는 무장군이 주둔한 지역에서 쇠 소리가 난다는 것은 인근의 가까운 곳에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서 무장한 군졸들을 동원하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이에 지역민들이 이곳에서 쇠 소리가 안 나기를 원하였기에 이 작은 마을에서는 초상(初喪)이 나서 상여(喪輿)를 운구할 적에 종구사로 하여 금 꽹과리도 사용 못하도록 하고 대신 소고(小鼓)를 사용케 하였다. 이것이 습관화 되어 1980년대까지 지켜져 왔다. 아무튼 이 같은 관습이 어느 때부터 내려왔는지는 몰라도 구전설의 관습화는 우리네 사회에서 힘 있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와우산 명지(臥牛山 名地)
중학교가 서다

양보 수척마을 뒷산을 와우산이라 부른다.
정감록 비결에 와우산의 명지를 찾으면 문천무만(文千武萬:文人이  千人 武人이 萬人)이 날 것이라고 쓰여 있어 오래전부터 이곳 수척(水尺)마을 뒷산에는 전국각지의 내노라하는 지사들의 내왕이 많았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이 되고나서 지역의 선각자들이 모여 양보에 중등학교를 설립함이 지역에 적합한 사업임에 뜻을 같이하고 학교 건립부지를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여러 곳을 돌아보던중 면사무소 소재지이고 다소 굼턱진 산록 이면서도 교사(校舍)를 건립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면적이 되는 이곳을 확정하고 지주의 승인을 얻어 전 면민을 동원, 정지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의외로 지하수가 많이 솟아 건물을 세우기에는 부적절한 곳으로 판단을 하고 작업이 중단되었다. 앞서서 추진하던 원로 분들께서는 실의에 바져 고뇌 속에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추진위원 중에 한분이 작업이 중단된 지대보다는 못한 곳이지만 굴미 건너(현 운산마을 건너)와우들판의 논밭을 매입하여 그곳에 교사를 건립함이 좋을 것 같다는 제의를 하였다. 그곳의 전답을 양해만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고 결론짓고 지주를 찾아 양해를 구한 끝에 승낙이 되어 그곳 와우전지에 학교가 건립케 되었다.
수년의 세월이 지나서 언제 누가 어디서 하였는지도 모르게 떠도는 말에 의하면 양보중학교가 세워진 곳이 정감록 비결에 나오는 와우산 명당이라고들 하였다.
그 사연인즉 학교가 아니면 문천무만의 많은 인재가 생(生)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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