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109>선조(宣祖)의 덕행

(주)하동신문 0 4,536

대통령을 지낸 인물의 비리를 캐느라 공권력이 바쁘다. 국가 안위에 쏟아야 할 검찰 기능이  엉뚱하게 낭비되는 나라꼴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허탈하다. 권력자의 생명은 「돈」 이 아니고 「명예」다.
서기1608년 2월 1일. 조선 14대왕 선조임금이 승하하였다. 재위 40년 7개월. 누린 생애 57년. 슬하를 낳지 못한 정비(正妃) 의인왕후 박씨와 계비 인목왕후, 여섯의 후궁에서 적자녀 1남 1녀, 서자녀 13남 10녀를 두었으니, 슬하가 모두 14남 11녀였다.
선조는 자주 경연(經筵)에 나와 신하들과 토론하고 학문에 관해 묻는 바가 매우 자세하였다.
그러니 학문이 넓지 못한 강관(講官)들은 감히 옆에 자리하기를 꺼렸다. 그는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의 학맥을 이은 조선조의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등, 의리를 밝혀 도학에 공을 세운 학자들을, 특명으로 제사를 받들도록하고 묘소에는 따로 사람을 배치하여 유택을 보살피게하였다. 뿐만 아니라 관직을 추서하고 시호(諡號)를 내렸는가하면, 자손들은 챙겨 추슬러 벼슬을 내리고 부역을 면하게 하였다.
한편 유학자 유희춘(柳希春)으로 하여금, 앞에서 거명한 도학자들의 말과 행실을 간추려 엮어 <유선록(儒先錄)>이라 이름 지은 책으로 편집, 널리 배포하여 선비들에게 읽히도록 권했다.
선조는 이따금씩 왕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임금 노릇 하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줄 아느냐? 백성 하나라도 잘못 살면 모두가 나의 근심이다. 어찌 너희들 처럼 마음대로 출입하며 매이지 않는 것만 하겠느냐? 나도 하성군(河城君)의 녹을 받아 아침 저녁으로 기름진 음식대접이나 받으며 마음에 근심 걱정하는 것 없이 살았더라면, 임금 노릇 보다 훨씬 더 즐거웠을 것이다.” 선조는 「먹고 즐기기만 해도 최고의 대접을 받는 왕자 생활」 을 그리며, 늘 복잡한 생각에 젖어 지내는 임금자리를 달가워하질 않았다.
선조는 어렸을 때 그를 보살폈던 유모가 어느날 덮개 있는 가마를 타고 입궐, 임금께 청탁하는 말을 했다. 선조는 유모의 거만스런 행태를 사정없이 꾸짖었다.
“네가 어찌 감히 두껑 덮힌 가마를 탈 수있단 말인가?”하고 내 쫓아 버리라 하니, 유모는「찍」소리 못하고 걸어서 대궐을 나갔다.
선조는 가끔 시짓기를 즐겼는데, 근심스런 마음을 담은 이런 시가있다.

抱孤難攄獨倚樓 (포고난터독의루)
외로움을 품고 홀로 다락에 기댔더니

由中百感不勝愁 (유중백감불승수)
 속에서 나오는 백가지 근심 이기지 못하네

明古殿香煙盡風  (명고전향연진풍)
달이 옛 궁전에 밝은데 향 타는 연기 다했고.

風冷疏林夜雪留  (풍냉소림야설류)
바람은 성긴 수풀에 차고 밤눈은 남아있다.

身似相如多舊病 (신사상여다구병)
몸은 사마상여(司馬相如)처럼 병이 많고

心如宋玉苦悲秋  (심여송옥고비추)
마음은 송옥(宋玉)처럼 괴로워 가을이 슬프구나

凄凉庭院無人語  (처량정원무인어)
처량한 뜰에는 사람의 말소리 조차 안 들리고

雲外鐘聲只自悠  (운외종성지자유).
구름 밖에서 종소리만 아득히 들려 오네


한 나라 임금의 울적한 속내를 짐작하게 하는 싯귀였다.
선조가 병이 깊어 내의(內醫)가 침전에 들어가 진찰했는데 병석(病席)이 그야말로 검소하였다. 푸른색 무명요를 깔았고 이불은 자주색 명주였다.
입은 옷도 굵은 푸른색 명주였고 약그릇도 무늬 없는 백자기였다.
흰 책상에 글씨 쓴 병풍이 있을 뿐 방장도 치질 않았다. 비단 어의(御衣)는 입지 않았고 수랏상에는 두가지 고기가 없었다.
명나라 사신을 맞는데 차린 점심이 물에 만 밥 한그릇, 마른 생선 대여섯 조각, 생강 조린 것, 김치와 간장이 전부였다.
상을 물릴 때 남은 음식을 시중드는 궁녀들에게 싸가지고 가라며 “그게 예절이니라!”했다.
시집간 딸 정숙옹주가 선조에게 청을 넣었다.
“뜰이 좁고 이웃이 너무 가까워 말소리가 들리고, 처마가 짧아 가려지질 않니 그 집을 사서 뜰을 넓혀 주십시오” 선조는 말했다.
 “소리는 낮게하면 들리지 않을 것이고 처마가 짧고 뜰이 좁으면 보이질 않을 것이니, 뜰은 넓힐 필요 없다. 사람 거처는 무릎만 들여 놓으면 된다!”하고, 굵은 발 두벌을 주며 “이것으로 가려라”했다.
역사에서 배워야한다.     
정 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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