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야기(102) 적량면편

(주)하동신문 0 6,475
적량면 신촌마을 뒤 구자산 정상에 있는 봉우리다. 적량쪽에서 보면 산등(山嶝)에 있는 바위가 거북모양으로 생겼다하여 거북(구龜)자를 쓰고 있으며, 악양면에서는 산의 모양이 비둘기처럼 생겼다하여 비둘기(구龜)자를 쓰고 있다고 한다.
옛 문헌(文獻)에는 구자산 (龜子山)또는 구산(龜子) 구자봉(龜子峰)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중앙지명위원회(中央地名委員會)에서는 구재봉 (龜在峰)으로 표기하여 현재 구재봉 (龜在峰)으로 부르고있다.
이곳전설(前說)로는 구재봉에 정안장군(鄭晏將軍)의 제씨(마을에 전하는 이름은 정희령 장군이라 칭한다)가 살았는데 이름난 명궁(名弓)이였다고 한다. 그가 타는 말이 백마(白馬) 였는데, 그 백마는 화살보다도 더 빨랐다고 한다.
하루는 정희령 장군이 자기 백마 와 내기를 했다. 말이 빠른가, 화살이 빠른가 하고 말이다.
정장군은 자기 말(馬)에게 이야기했다. “만약 화살보다 네가 느리면, 네 목을 베겠다.” 고 말에게 말하고 난 뒤, 활을 쏘아 놓고 장군은 말을 타고 달렸다. 화살의 낙하지점에 도착하니. 화살이보이지 않아, 정 장군은 그 자리에서 약속대로 네 목을 치겠다고 하며 자기 애마(愛馬)의 목을 쳤다. 목을 치고 나니, 그때서야 화살이 떨어지니, 정장군은 목을 놓아 울었다고 한다.
지금도 구재봉의 상사바위 옆에서, 칠성봉(七星峰)까지 말을 타고다니던 길이 나 있다. 또 구재봉(龜在峰)과 정안산성 사이의 땅은 정안의 장원(莊園)이더라고 한다.
그래서인지는몰라도 그 정원은 규모가 크고 조성된 조경 경관은 모두 자연스러운 조화가보이고 특별히 구자산(龜子山) 곳곳은 정성스럽게 꾸미진 돌과 화초(花草)의 배치가 오묘한 정감을 지금도 풍기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고려(高麗)시대 우리조상들의 정원(庭園) 가꿈의 솜씨가 그대로 이어져오는 묘경이라고들 한다.
구자산에는 구자암(龜子巖),통시바위 용(龍)모양의 높이60자의상사바위, 거창한 흔들바위, 집수락 바위가 격조있게 조화되어 있으며 틈틈이 기화요초(琪花瑤草)가 계절 따라 화사한 꽃을 피우고 있다.
또 한곳에는 천연(天然)석굴(石窟)이 있는데 생김새는 사각형으로 장정(壯丁)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굴혈(掘穴)이다.
그 속엔 있는 냉천(冷泉)은 수질이 좋아 옛날부터 신선천(神仙泉)이다.
정장군이 살던 집터였다는 곳에서는 지금도 기왓장 조각이 나오고 여러흔적이 생생하다.
구자봉 밑에 분지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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