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교면편(101)

(주)하동신문 0 6,591

와룡산 호랑이

이 이야기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태중 설화이다.
면사무소에서 서편 산복도로를 지나 양보면 쪽으로 가다보면 왼편 깊숙한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유서깊은 안심마을이 있다. 투구봉 아래서 흘러 빠진 듯한 불룩한 산이 있는데 이 산을 태봉이라 하여 정일두선생의 태실(胎室)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입구에는 선생의 생가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논으로 말끔히 정리되어 위치만 확인될 뿐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촌로들의 기억을 통하여 구전되어오는 설화는 이러하다. 옛날 사천의 와룡산에 수백 년 된 늙은 호랑이가 있었는데 이 호랑이는 전후좌우 분별없이 횡포하여 주변 사람들은 늘 불안하였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와룡산 산신령이 하루는 호랑이를 불러 들였다. 불려온 호랑이는 머리를 조아리며 “신령님, 부르셨습니까?”하니 신령께서는 “네 이놈! 어째서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고 돌아다니느냐? 앞으로 그런 일이 또다시 생기면 네 이빨과 발톱을 모두 뽑아버리겠다”고 하니 호랑이는 머리를 틀어박고 용서를 빌었다.
신령이 생각하기를 수백 년 동안 벗 삼아 데리고 있었고 와룡산을 지켜온 호랑이를 자기가 벌할 수가 없는 노릇이라 잠시 뜸을 들이고 궁리 끝에 하는 말이 “이제 너는 내 말을 명심 하여라”하며 정좌(正坐)를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너는 날이 밝기 전에 지리산으로 가서 거기서 많은 것을 더 배우고 생각을 바꾸어 돌아오도록 하여라”하며 정중히 타일렀다. “그리고 가는 길목에 안심(安心)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의 텃밭에 새벽부터 나와 김매는 부인이 있을 것이다. 그  부인의 팔자(八字)를 떠보니 너의 밥이 될 운명이야. 그러니 그 곳에서 아침요기나 하고 가거라.”하며 말을 맺았다.
호랑이는 제 행패를 용서해 주는 것도 감지덕지한데 아침요기까지 염려해 주니 감사 무지할 따름이었다.
작별인사를 하고 난 호랑이는 쏜살같이 지리산으로 향했다.
신령님의 말씀대로 안심마을에 들려 시루봉에서 내려다보니 저 멀리 텃밭에서 이른 아침부터 소복을 입고 김을 매는 여인네가 눈에 들어왔다.
입에 군침이 도는 호랑이는 살금살금 다가갔다. 여인네는 너무나 태연하며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천연스레 김매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호랑이는 큰 입을 벌리고 앞발을 치켜들어 한순간에 덮치려고 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여인의 뱃속에서 화살과 같은 섬광(閃光)이 튀어 나와 호랑이의 눈을 멀게 하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괴어버리니 호랑이는 선 채로 굶어 죽더라고 한다.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될 큰 인물을 그 무엇이 함부로 범(犯)할 수 있단 말인가 정여창(鄭汝昌)선생의 모태에서 쏘아내어진 섬광이었다.

느티나무 세그루

진교면 월운리엔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 세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여 년 전에 이 마을에 사는 문씨(文氏), 김씨(金氏), 이씨(李氏)의 세 성씨(姓氏)들이 의좋게 살기위한 약속으로 심었다고 한다.
이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은 세분이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이나 잎이 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느티나무는 1년에 잎이 두번 내지 세 번이나 피기도 하는데 그해는 가뭄을 두 번 내지 세번 맞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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