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이야기 97> 하동의 구전설화 - 옥종면 편

(주)하동신문 59 4,930
조선 광해군때 양반들이 세도다툼을 하던 시절에 그 여파가 전국으로 퍼졌고, 시골 호족이나 양반에게도 뿌리 깊은 다툼이 일마다 일어나고 있었다.
더구나, 영남은 퇴계 문하생과 남명 문하생이 대립하고 있어 그 물결이 거세었다.
퇴계 문하생은 벼슬하는 쪽으로 많이 흘렀고 남면 문하생은 학문 그 자체를 연구하여 지행일치를 근본으로 하였으나 양가의 보이지 않는 알력은 계속되었던 듯하다. 그 전형적인 일이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난 적이 있는데 옥종 종하리의 개천보와 안계리의 보를 막는 곳의 고갯길 이야기다. 시집을 사던 두 꽃가마가 외길인 이곳을 지나다가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 한쪽은 퇴계문하의 집안이었고 한쪽은 남명 문하의 집안이었다.
좁은 고갯길은 피하기도 곤란하지만 또 양가의 체면과 길을 비켜 가면 불행이 온다는 관습 때문에 서로 길을 양보하지 않고 버티게 되었다. 서로 길을 피하라는 길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가 먼저 왔으니 늦게 온 편이 길을 비켜서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남명 문하 쪽에서 말했다.
“먼저 왔으면 여기서 마주칠 이유가 없는 것이니 어서 길을 피하여 주게”퇴계 문하 쪽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허허, 뒤에 온 사람들이 앞에 가마가 오는 것을 보면 둑길로 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섰다가 지나간 후에야 가는 예의쯤은 알 것인데 이렇게 고집이니 도대체 무슨 학문을 그렇게 하였는가?”남명문하 쪽의 힐책이 매서웠다.
“저런, 누가 할 소리를 하고 있나.”퇴계 문하 쪽도 지지 않는다.
옥시각신 밀고 당기고 하다가 그만 한 편의 가마가 보 못에 빠져 죽었다. 이 일이 있은 이후부터 이곳을 가마고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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