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태종, 눈에 화살을 맞았다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하동신문 0 694

당태종, 눈에 화살을 맞았다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당태종 눈을 화살에 맞았다!” 

 “누구 쏜 화살이며 어느 눈에 맞았는가?”

 이세민은 수나라 말기 아버지 이연과 군사를 일으켜 618년 당나라를 세우고 626년 현무문에서 태자인 형 건성과 동생 원길을 활로 쏘아 죽이고, 부황을 협박하여 별궁에 유폐시킨 후 황태자가 되고 2개월 뒤 황제로 등극했다. 정관의 치라고 불리는 그의 치세는 중국 역사상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이상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당태종 이세민의 영향력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는 칙령을 내려 이름자를 지명이나 이름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관세음보살의 ‘세’를 빼고 관음보살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당태종은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쏜 화살에 눈을 상했을까? 

 이 얘기의 처음 등장은 고려 후기 이색(李穡) 시 정관음(貞觀吟)이다.

 독 안에 든 쥐인 줄 생각했더니 눈이 화살에 떨어질 줄 어찌 알았으랴(爲是囊中一物爾 那知玄花落白羽). 

여기서 玄花(현화)란 눈을 말하고 白羽(백우)란 화살의 뜻이다. 

 지휘자는 상황을 판단하고 명령을 내리는 자로 사령부는 사정거리 밖에 위치한다. 당태종은 최고사령관으로 안전지대에 위치하였는데 화살은 목표물을 찾아 명중시키는 신궁이란 말인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당태종의 병에 관한 진단은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에서 각각 내종, 한질, 이질로 기록하고 있다. 황제가 죽은 병 이름이 애매모호하게 기록한 것은 고구려인의 화살 독에 죽은 치욕을 감추려다가 이 같은 모순된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 요동에서 얻은 병이라고 한 것은 모든 기록들이 동일하니, 양만춘이 쏜 화살에 맞아 그 유독으로 죽은 것이 명백하다.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건륭제 70회생일축하사절단에 끼어 북경과 열하지방을 체험하고 열하일기라는 기념비적 기행문을 내놓았다. 안시성을 봉황성이라 밝히고 당태종은 양만춘의 화살에 눈을 상했다고 적고 있다.

 6월 28일 을해, 아침에 안개가 끼더니 늦게 날이 들었다.

 봉황성을 수리하고 있다. 고구려 방언에 큰 새를 안시(安市)라고 하고 봉황을 안시라 한다. 사(蛇)를 백암(白巖)이라고 훈을 새긴다. 수당 때 우리나라 말로 봉황성을 안시성이라 하고 사성(蛇城)을 백암성이라 했는데 이치에 맞는 것 같다. 

 양만춘이 당태종의 눈을 화살로 맞히자 이세민은 병사들을 성 아래에 집결시키고 위세를 빛내면서 성주로서 성을 지켰다고 비단 백 필을 주었다고 한다. 이세민은 요동 진흙 벌에 허우적거리고 동장군 칼바람에 혼비백산하여 고구려 정벌 포기의 유조를 남긴다. 

 박성수의 역사소설 천강에서, 곽재우는 과거시험에 응시하였다. 논제는 ‘안시성을 지키던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이 당태종의 눈에 맞았다’는 당태종시사전정론(唐太宗試射殿庭論)이다. ‘…만약 백성을 괴롭힘으로써 자기 몸을 받들고자 함은 마치 자신의 넓적다리를 떼어 배를 채움과 같다’는 곽재우 답안지 내용에 선조는 거슬린다고 파방을 시켰다. 

 최인호는 잃어버린 왕국에서, 안시성의 장수 고원부는 마지막 화살을 시위에 메겼다. 옆구리에 극심한 통증이 왔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시위를 잡아당겼다. 대상을 겨누지 못하고 그냥 놓았다. 그의 몸은 등 뒤에서 달려든 적장의 칼 앞에 두 동강으로 베어졌다. 말위에 올라 황빛 투구를 쓰고 함락 직전의 안시성을 보고 있던 당태종이 비명을 지면서 굴러 떨어졌다. 주위를 지키고 있던 신하들이 놀라서 땅위에 구르는 황체를 황망히 받들어 세웠다. 

 당태종은 화살촉에 묻어 있는 독

이 온몸에 번져 혼수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시의가 황제의 오른쪽 눈에 깊이 박힌 화살촉을 뽑아냈지만, 이미 황제의 오른쪽 눈은 실명 상태로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고 뼛속 깊이 독이 스며들어 있었다. 

 ‘안시성 성주는 양만춘이다’는 오늘날 다툼의 여지가 있다. 당태종의 사망 원인에 책마다 다르게 설명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독자에게 당태종은 한사람으로 족하다.

 역사적 기록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당태종은 누구의 화살에 어느 눈에 맞았는지 또는 허구인지를 독자에게 바른 사실을 제공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