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119 아우를 살린 형 11.21
선조21년(1588) 무렵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의 일로 전해오는 이야기다. 그때 국방에대한 책임은 병조판서 유성룡(柳成龍)이 맡고있었다.  비록 국정 최고의 위치에는 못 미치는 판서 자리에 머물렀으나, 나라의 중요 정책이 유성룡의 머리에서 나오는 지경에 이르러 이웃 일본·중국에서 까지 유성룡을 조선의 인재로 여기는 바가 되었다.유성룡의 본관..
<조선왕조 뒷 이야기> 118 11.11
근래 지방화시대에 들어 하동 군민들이 크게 관심을 갖고 자랑하는 역사적 인물 가운데 한분 정기룡 장군은, 선조 임금이 지어준 「기룡(起龍)」 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활약한 임진왜란 때 육전의 명장이었다. 66전 66승이라는 전승 기록을 두고 향토 출신 문호(文豪) 이병주는 『정기룡 장군은 나폴레옹보다 전투를 잘했던 돌격장이었다』 라고 말했고, 중국에서는 그를..
<조선왕조 뒷 이야기> 116 10.21
선조22년(1589), 황해감사 한준(韓準)이 안악군수 이축(李軸), 재령군수 박충간(朴忠侃), 신천군수 한응인(韓應寅) 등이 함께 올린 「정여립 반역 모의」 고변을 접수, 10월 2일 곧바로 장계를 올렸다. 모의가 들어난 것은, 같은 무리였던 안악 교생 조구(趙球)의 밀고 때문이었다.  화들짝 놀란 임금 선조는 3정승 6판서와 의금부 당상관들을 ..
<조선왕조 뒷 이야기> 115 10.11
최근 미국의 어느 인터넷 여론 조사 기관이 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가 좋으냐?」 고 물었더니, 65.6%가 일본을, 34.4%가 한국을 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기분 언짢은 것은 한국이 좋다고 답한 미국인들은 오로지 「음식」 때문에 그렇다했고, 일본이 좋다고 답한 사람들은 「사람」을 꼽았다는 것이었다.위 내용은 박승희 중앙일보 ..
<조선왕조 뒷 이야기> 114 10.01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왜국 하급 무사에서 주군에 대한 별난 충성심으로 출세, 16세기 동양 3국을 뒤 흔든 걸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젊어서 기노시타 도치키로(木下藤吉郞)이라했다가, 다조대신(羽柴秀吉) 간파쿠(關白)가 되어 토요토미라는 성을 썼다.정유재란이 끝난 그해 1598년 초겨울, 63살 나이로 죽은 그의 죽음에대하여 이런 기록이 전한다.일..
<조선왕조 뒷 이야기> 113 09.03
生也一片浮雲起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흩어짐이라浮雲自體本無實 뜬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生死去來亦如然 살고 죽음 오고 감이 또한 구름일러라 해남 대흥사 입구 돌에 새겨진「서산대사 시(詩)」다. 탐욕에 젖어 부질없는 출세를 바래 발버둥치는 중생들에게 던진 그의 달관적 인생관이 아닌가 싶다. 임진란 승병장..
<조선왕조 뒷 이야기> 112 08.22
근래 미국의 어느 매체가 「세계 유명 여류 명사」를 꼽았는데, 한국인으로서는 유일무이하게 조선 인종 때의 영의정 홍언필(洪彦弼)의 부인 송씨(宋氏)가 뽑혔다. 영의정의 딸로 영의정 남편에 영의정 어머니가 된 게 선정 이유였다. 요즘으로 치면 아버지가 국무총리였고, 남편이 국무총리였으며 아들이 또한 국무총리였던 셈이니 그럴만도했다.송씨 부인은 중종 때 영의정..
<조선왕조 뒷 이야기> 111 08.12
楚雖三戶亦秦亡(초수삼호역진망)초나라가 진에 망해 셋집만 남았으나 진도 망하니未必南公說得當(미필남공설득당)장의(張儀)의 설득이 옳다고만 할 수없다.一入武關民望絶(일입무관민망절)한사람 무관으로 들어가 백성들 희망 저버리고摩孫何事又悔王(마손하사우회왕)잔악한 손자를 세워 회왕이라 함은 무슨 일인고. 임진국난 극복에 공을 세운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 선생..
<조선왕조 뒷 이야기> 110 08.02
『천하의 일은 나아 가지 않으면 물러 서야하고, 국가의 형세는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지러워진다. 진보(進步)와 쇠퇴, 평화와 혼란이 오는 것은 실상 인간에 연유한다. 그러므로 백성과 임금은 마땅히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기미(幾微)를 살펴 평화가 이룩되게 힘쓰고, 혼란이 오지 않도록 원인을 제거하여, 반드시 치세(治世)를 기약하도록 해야 할것이다.』 율곡(..
<조선왕조 뒷 이야기> 108 07.11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는 보도에 접하니, <난중일기> 내용 가운데의 이런 기록이 머리에 떠 올라 재삼 장군의 소박한 인간성에 마음이 간다. 『…다음날 하동현청에 닿았다. 현감 신진(申진)이 밤을 새워 위로해 주었다. 이틀 동안 머물고 6월1일 길을 떠나는데, 신 현감은 정성들여 노자(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