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탐방142> 조선의 영의정들-그들은 누구인가 06.29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정조23년(1799) 10월, 채제공이 떠난 영의정 자리에 이병모가 앉았다. 이병모는 앞서 9월에 좌의정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한달 만에 국정 최고의 자리에 발탁 된셈이었다. 18세기가 끝나는 이 무렵 조선은, 어렵사리 정국 주도권을 장악한 정조의 개혁적·실용정치가 무르익는 시기였다. 정조는 문교진흥과 타락한 풍습순화를 목적으로 설치한 규장각을 더욱 확대, 신진개혁..
<역사인물탐방141> 06.21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채제공은 명종때 호조판서 채세영(蔡世英), 효종때 대제학 채유후(蔡裕後) 등, 명신들을 배출한 평강 채씨 후예, 숙종46년 지중추부사 채응일의 아들로 충청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에 향시를 거쳐 영조19년(1743) 24세 때 문과에 올라, 승문원의 권지(權知)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였는데, 모진 가난 속에서 자랐지만, 타고난 지혜로 재물에 대한 탐욕이 없어..
<역사인물탐방140> 06.21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정조13년(1789) 11월, 이재협이 영의정자리에서 물러나고, 그보다 한달 앞서 좌의정 채제공(蔡濟恭)마져, 모종의 사건으로 파직 당해 버렸던 터라, 국정 최고위직인 영의정자리가 순조롭게 채워지질 않았다. 뿐만아니라 해가 바뀌어 이듬해 정월, 우의정이던 김종수(金鍾秀)까지 사림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다가 반대파의 저항으로 삭출 당해버리니, 정승자리가 통째로 비어버린..
<역사인물탐방139> 06.21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이재협은 광해군때 청렴결백한 인품으로 대사간에 올라 명성을 남긴 이사경(李士慶)의 8세손으로 본관이 용인(龍仁),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중호(李重祜), 할아버지는 ‘이인좌의 난’ 때 큰 공을 세워 공조판서에 오른 이보혁(李普赫)이었으며, 정후일(鄭厚一)의 외손자였고, 승지 윤경룡(尹敬龍)의 사위였다.이재협의 할아버지 이보혁은 평양부윤을 거쳐 성주목사가 되었는데, 그때..
<역사인물탐방138>, 조선의 영의정들-그들은 누구인가 05.31
홍낙성은 풍산홍씨 중흥인물로 꼽히는 광해군때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예조판서 홍상한(洪象漢), 할아버지는 영조초기에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한 홍석보(洪錫輔)였다.홍낙성은 외할아버지 어유봉(魚有鳳)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익혔는데, 어유봉은 학문이 높았으나 관직에 나가기를 꺼렸다. 그러나 주변에서 재능이 아깝다는 권고에 못이겨 과거에 나갔다가, 부정행위가 난무하는 과거시험장을..
<역사인물탐방137>서명선(徐命善:1728~1791)-임금이 사제비문을 내린 정승 05.20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정조3년(1779), 52세의 서명선이 영의정 자리에 올랐던 그해, 조선조 최고의 개혁군주로 꼽혔던 정조는, 집권 3년차를 맞아 기반이 잡힌 왕권으로 국정을 쇄신하고자 힘썼다. 정월 초6일이 첫 신일(辛日)이라 새해의 농사가 잘 되라고 기원하는 기곡대제(祈穀大祭)를 지내고, 교육을 빙자해 내시들에게 큰 부담을 주던 내시교관(內侍敎官)제도를 혁파해 버렸다. 한편 무당..
<역사인물 탐방 136>정존겸(鄭存謙:1722~1794)-세손 보호에 힘썼던 정조의 총신 05.20
정연가 하동문화원장정존겸은 연산군·중종연간의 명신으로 이름이 빛난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후손으로 본관이 동래, 선조때의 좌의정 정유길(鄭惟吉), 인조때 좌의정 정창연(鄭昌衍), 현종때 우의정 정치화(鄭致和) 등이 모두 직계 조상들로, 정존겸은 정유길의 8대손이며 정치화의 현손이었다.정존겸의 증조부 정찬선(鄭讚先)은 문과에 올라 응교를 지냈고, 할아버지 정형운(鄭亨運)과 아버지 정문상(鄭文..
<역사인물탐방135>신회(申晦:1706~1776)-사도세자 죽임에 동조했던 정승 04.30
영조48년(1772) 8월 2일 영의정 발령을 받았다가, 그달 20일 삭탈 관직 당해 쫓겨나는 파란을 겪은 신회는, 앞서 영의정을 지낸 친형 신만(申晩)과 함께 형제영의정으로 평산신씨 가문을 빛낸 장본인이다.역사상 형제가 영의정에 오른 경우는, 이들 형제와 안동김씨 김수흥(金壽興)·수항(壽恒) 형제, 조선말엽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릴때의 김병학(金炳學)·병국(炳國) 형제 등 셋뿐이었다..
<역사인물탐방134>김상철(金尙喆:1712~1791)-팔판서마을 부자판서 가문출신 04.22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김상철은 조선 초기 절의의 대명사로 통하는 매월당 김시습을 정신적 지주로 삼는 강릉김씨 후예로, 그의 아버지는 판돈령부사 김시혁(金始爀),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읍 통현리 이른바 팔판서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들 가문은, <선팔판(先八判)>·<후팔판(後八判)> 두 번에 걸쳐 나온 여덟판서 탄생을 자랑 삼았는데, <선팔판>은 명종부터 경종때..
<역사인물탐방133>한익모(韓翼모:1703~1786)-끝이 불우한 양관대제학 역임정승 04.15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세조의 사돈에 성종의 외할아버지인 좌의정 한확(韓確)의 후손이던 한익모는, 진사 한사범(韓師范)의 아들이다. 그의 선대에 선조때 우의정 한응인(韓應寅)이 있어 이가 곧 6대조였고, 증조부 한성우(韓聖佑)는 이조참판, 한익모의 형에 한현모(韓顯모)가 있어 그는 대사헌이었다.한익모는 영조7년(1731) 28세때 황감제(黃柑製)라는 과거에 장원으로 뽑혀 예문관에 들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