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탐방109>서종태(徐宗泰:1652~1719)-3대재상 가문을 일군 영의정 10.15
숙종37년(1711년) 4월 영의정에 오른 서종태는, 본관이 대구, 인조때 6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 된 서성(徐?)의 현손으로, 증조부가 선조임금의 사위였던 달성위(達城尉) 서경주(徐景주), 할아버지는 부사 서정리(徐貞履), 아버지가 병조참의 서문상(徐文尙)이었는데, 숙부 서문중(徐文重)이 영의정으로 있어, 그의 가문은 왕실의 척족에 ..
<역사인물탐방108> 10.01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신완(申琓)이 당파싸움에 밀려 영의정자리에서 물러나자, 최석정(崔錫鼎)이 혼자 빈자리를 메우느라 무려 네 번이나 그자리에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숙종36년(1710) 3월 이여가 영의정에 올랐다. 그만큼 그 시절은 정계가 어수선하여 국정 최고위 관직이 흔들릴 때였다. 이여의 관향은 덕수(德水), 중종때 좌의정..
<역사인물탐방107>신완(申琓:1646~1707)-당파싸움에 시달린 영의정 09.24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숙종29년(1703) 2월 최석정이 거듭 영의정 자리에 앉았다가 6월에 사직하니, 8월에 신완이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본관이 평..
<역사인물탐방 106>최석정(崔錫鼎:1646~1715)-여덟번 영상에 오른 재상 09.17
정연가 하동문화 원장숙종27년(1701) 6월, 최석정(崔錫鼎)이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병자호란때 명성을 날린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손자로, 한성좌윤 최후량(崔後亮)의 아들로 태어나 응교 최후상(崔後尙)에게 입양 되었다.아홉 살 때 <시경>·<서경>을 외웠고, 12세에 <주역>을 풀어 신동으로 알려진 최석정은, 영의정 ..
<역사인물탐방 105>서문중(徐文重:1634~1709)-저술로 민족문화 발전에 힘쓴 재상 09.10
정연가 하동문화원장서문중의 본관은 대구,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의 아들로 태어나 당숙인 함경도관찰사 서원리(徐元履)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효종8년(1657) 생원시에 합격하여 뛰어난 학행(學行)으로 동몽교관에 천거 되어 벼슬을 시작했다. 동몽교관은 각 고을의 청소년들에게 기초교육을 가르치던 종9품직으로, 재직기간이 450일로 규정 된 지방 하급직이었다.이..
<역사인물탐방104>유상운(柳尙運:1636~1707)-장희빈 처형을 반대한 정치가 09.01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숙종22년(1696) 8월, 두 번째 영의정에 올랐던 남구만(南九萬)의 뒤를 이어 유상운이 영의정이 되었다. 이 무렵은 나라 사정이 극히 어려워 도처에 도둑이 들끓고 굶다가 쓰러진 백성들의 주검이 거리에 넘쳤다. 평안도에서는 이어둔(李於屯)이라는 자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뜯어 먹었는데, 사형은 시키지 않았다...
<역사인물탐방103> 여성제(呂聖齊:1625~1691)-자리에 앉아 보지 않은 영의정 08.28
정연가(하동문화원장) 여성제의 본관은 함양, 인천부사 여이량(呂爾亮)의 아들로 태어나 홍문관제학 여이징(呂爾徵)에게 입양 된 여성제의 할아버지는 한성부우윤 여유길(呂裕吉), 증조부는 첨지중추부사 여순원(呂順元), 외조부가 영돈녕부사 한준겸(韓浚謙)이었으니, 그는 친·외가가 모두 당대의 명문이었다. 오늘날의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수청리에 여성제의 생가가 있..
<역사인물 탐방 102> 08.21
정연가(하동문화원장) 희빈 장씨 소생 윤(뒤에 경종)을 세자로 삼으려는 숙종의 뜻을 거역한 송시열 등 노론파가, 반대파 남인들의 거센 공격을 받아 시들어 버린 난리가 곧 기사환국(己巳換局)이었다. 이로써 노론의 영수였던 좌의정 송시열은 귀양을 떠나고, 남인의 우두머리 권대운이 권력을 쥐었다.본관이 안동, 사어(司御) 근중(謹中)의 아들로, 예조판서 협(협)..
<역사인물탐방101> 남구만(南九萬:1629~1711) 08.13
정연가(하동문화원장) 김수항의 뒤를 이은 영의정은 조선초기의 개국공신 명재상 남재(南在)의 후손 남구만이었다. 한동안 뜸했던 의령남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걸출한 정치가 남구만은, 현령 일성(一星)의 아들로, 충청도 충주 누암(樓岩) 외가인 안동권씨 댁에서 태어나, 부호군이던 할아버지 남식(南식)의 고향 충청도 홍성 구항면 내현 거북이마을에서 자란 것..
<역사인물탐방100> 김수항(金壽恒:1629~1689)- 형제 영의정, 부자 영의정의 중심 08.06
정  연  가(하동문화원장) 김수항은 영의정 김수흥의 아우로, 열 여덟살 때 반시(泮試)라는 기초시험에 장원하고 이어 진사시에 장원, 효종1년 문과에도 장원으로 급제하니, 이른바 세 번 장원급제한 보기 드문 영재로 꼽혔다.김수항은 첫 관직으로 성균관전적을 받아 병조좌랑·경기도사·사헌부정언 등을 역임하고, 효종4년(1653) 11월, 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