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99 04.11
명종20년(1565) 4월 초 엿샛날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가 드디어 죽었다. 나이 예순 다섯. 열 일곱에 왕비가 되고, 마흔 넷에 남편 중종이 세상을 뜨니 그녀는 11년간 효성스런 임금 어미로 권력을 휘둘러, 보신탕집 안주인 복날 개 잡듯 사람을 해치운 여흉(女兇)이었다.당대의 권신이며 사돈인 김안로(金安老) 일당을 죽인 것은, 자신의 정적이었기에 이해가 되는데, 이 사건이 그의 무자비한 잔..
<조선왕조 뒷 이야기> 98 04.03
『살아 숨쉴 때의 부귀영화는 산마루에 걸린 한점 구름이요. 세상을 밝힌 맑은 명예는 하늘에 빛나는 해와 같다.』 선현들이 남겨준 들어 둘만한 말이다. 연산군7년 합천에서 태어난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일찍 학문을 이뤘으나 벼슬에 눈독을 들이질 않았다. 나이 서른에 생계가 어렵자 처갓곳 김해로 옮겨,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중종34년(1539) 입소문으로 조식의..
<조선왕조 뒷 이야기> 97 03.22
『백성은 돌보질 않고 나라가 잘돠고 못되는 것은 「내 알바 아니다」는 듯 왼고개 치며, 오로지 간사하게 권력에 영합하여 구차히 탐욕스럽고, 감투를 지탱하기 위하여 널리 애쓸 뿐인 이런 관리를 일컬어 국적이라한다.』옛날 순자(荀子)가 한 말이다.역사에 추한 이름을 남긴 국적은 많다. 조선조 최악의 국적 가운데는 문정왕후의 친정 붙이 윤원형(尹元衡)을 뺄 수없다.윤원형은 중종28년 문과에 붙어 ..
<조선왕조 뒷 이야기> 96 03.11
중종의 장남으로 장경왕후 윤씨 소생 이호(李岵)가 25년간 세자자리에 머물다가, 1544년 11월 왕위에 오르니 나이 30세였다. 그는 태어난지 엿새만에 그만 어머니 장경왕후를 산후병으로 잃었었다.중종이 처음 맞았다가 반정공신들의 비토로 쫓겨난 단경왕후에 이어 장경왕후를 거쳐 세 번째 맞은 왕후가 유명한 문정(文定)왕후, 장경·문정 두 왕후는 친정이 같은 파평윤씨로 가까운 일가였다. 장경왕후..
<조선왕조 뒷 이야기> 95 02.28
“결혼이 어디 너희 둘만의 일인 줄 아느냐? 「사랑」이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 그게 어디 밥을 먹여 주나? 혼사(婚事)란 엄연한 집안과 집안끼리의 결합이다! ”행세깨나 하는 잘난 부모들이, 자식이 매달리는 연인이 욕심에 차지 않는다며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된다」고 악을 쓰는 엄포다. 자식을 갖고 팔자를 한번 고쳐 보려 이리 재고 저리 재는 요즘의 세태를 비꼰, TV드..
<조선왕조 뒷 이야기> 94 02.15
귀양처에서 도망쳐 훗날 대신으로 성공, 관직이 일품 우찬성에 이르렀던 이장곤(李長坤)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겪은 풍운아였다. 본관이 벽진. 아버지는 참군(參軍) 이승언(李承彦). 김굉필문하에서 배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성종 때 재수 없는 흉물 유자광이, 그를 문무겸전의 인물로 천거한 일이 꺼림직했으니, 이는 선비의 몰골과는 거리가 먼 느낌의 장대한 그의 기골 때문이었다.생원시에 장원하고..
<조선왕조 뒷 이야기> 93 02.01
도학정치가로 조선의 흐린 정국을 한번 바꿔 보려던 조광조가, 기득권세력들의 저항으로 좌절 당해, 오늘날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일대를 말하는 능성(綾城)에 귀양을 살고 있었다. 그의 본관은 한양(漢陽), 아버지는 어천(魚川) 찰방(察訪) 조원강(趙元綱). 마지막 관직은 사헌부대사헌, 지금의 감사원장 쯤 되는 막강한 자리였다. 중종14년(1519) 11월, 심정(沈貞)·남곤(南袞) 등의 간교한 ..
<조선왕조 뒷 이야기> 92 01.21
옛적에 고관대작으로 끗발을 부리다가, 죽은 뒤에 죄가 들어나거나, 또는 지은 죄가 없는데도 연산군 같은 못된 임금을 만나, 운 나쁘게 죄를 둘러 쓴 나머지, 무덤이 파헤쳐져 해골이 난자 당하는 이른바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웃기는 형벌이 있었다.믿을 이야긴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부관참시를 백번도 더 당해야 할, 흉폭하기 이를데 없었던 자가 해괴한 꾀를 내 욕 된 해골이 온전하..
<조선왕조 뒷 이야기> 91 01.11
중종7년(1512) 문종의 유일한 혈손 해주정씨 가문의 해평부원군 정미수(鄭眉壽)가 57세 나이로 숨지니, 중종은 그에게 소평공(昭平公)으로 시호를 내려 두텁게 대접하였다. 단종 이후 문종의 후예로는 오직 외손자 정미수(鄭眉壽)가 있을 뿐이었다. 정미수의 어머니는 문종의 적(嫡)외딸 경혜(敬惠)공주 아들인데, 아버지는 영양위(寧陽衛) 정종(鄭悰).문종의 여자로는 현덕왕후 권씨와 후궁으로 자식..
<조선왕조 뒷 이야기90>역사를 비튼 잎사귀 01.02
중종14년(1519) 가을이 깊어 가던 11월 15일 밤, 대사헌 조광조(趙光祖)가 자다가 의금부 관원들에게 묶여 끌려 갔다. 요즘으로치면 감사원장쯤되는 고위인사가 체포당한 보통이 넘는 큰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조광조는 순간적으로 언관(言官)들의 탄핵으로 옷을 벗은 전 좌참찬 홍경주(洪景舟), 예조판서 남곤(南袞), 역시 자리를 빼앗긴 전 형조판서 심정(沈貞) 등이 「기어이 일을 꾸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