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65 06.20
중종을 세워 세상을 바꾼 이른바 중종반정의 결정적 성공은, 전 경기도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의 군사력 동원 역할이 컸기 때문이었다. 박원종의 본관은 순천, 그의 아버지 박중선朴仲善은 영의정 심온沈溫의 외손자라 곧 세종대왕의 이질姨姪로, 세조때 익대翊戴·좌리 佐理 두 공신에 병조판서를 역임한 권부의 핵심이었다. 이런 가문배경으로 박원종은 성종때 등과 없이 선전관에..
<조선왕조 뒷 이야기> 64 “돼지가 닮은 그 자와 어떤 관계냐?” 06.13
중종반정中宗反正 며칠 전, 연산군은 종묘宗廟에서 친제를 올리느라 제향 준비를 했다. 왕실의 근엄한 향례享禮라 임금이 손수 제물을 차려 놓기도했다. 마침 연산군이 큼직한 돼지 머리를 조심스럽게 제상에 고이고 있을 때, 옆에서 시중들며 거들던 약방 기생 하나가 느닷 없이 “훗훗”하고 경망스럽게 웃었다. 연산군은 조심성 없는 기생의 웃음소리가 비위에 거슬려, 상..
<조선왕조 뒷 이야기> 63 성희안成希顔, 목숨을 걸었다. 06.07
『증오(憎惡)가 변질 되는 순간, 사람은 짐승 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범좌자의 가장 치명적인 착각은,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너희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광폭한 내면 성격 소유자 연산군이, 본성을 들어 내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질 않았다. 그는 12년 집권기 초반에 두번 사화를 통해 엄청난 인명을 죽이더니, 자신감이 붙..
<조선왕조 뒷 이야기> 62 조지서(趙之瑞)는 어딨느냐? 05.23
생물 가운데 인간은 동물계(動物界) 사람과에 속한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감정(感情)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은 간단하고 진리는 한가닥인데, 언제나 감정이 복잡한게 탈이다. 장차 임금이 될 싹수가 노란 세자를 바르게 가르쳐 보려고 엄하게 다루다가, 잇빨을 갈 만큼 감정을 앞세운 연산군에게 목숨을 앗겨 삶이 비틀어져 버린 악례(惡例)의 장본인이 곧 ..
<조선왕조 뒷 이야기> 61 05.16
호를 추강거사(秋江居士)라하여 「추강선생」으로 알려진 남효온은 본관이 의령, 그의 선대에 조선개국공신으로 받들 만큼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지극히 신뢰했던 영의정 남재(南在)가 있어, 남효온은 곧 남재의 5대손이었다. 병조의랑에 올랐던 고조부 남경문(南景文)은 일찍 세상을 떴었고 증조부 남간(南簡)은 청백리로 예문관직제학에 이르렀다. 할아버지 남준(南俊)은..
<조선왕조 뒷 이야기> 60 05.09
연산군10년(1504) 3월, 『간신(奸臣)』의 대명사로 역사에 이름이 오른 간흉 임사홍(任士洪)의 밀고로, 어미 윤씨의 죽음을 알게 된 연산군은, 그만 머리가 돌아버렸다. 임사홍은 폐비의 생모까지 대령시켜, 어미가 사약을 들이키고 죽어 가기 까지 내막을, 외할미로 하여금 원한 넘친 푸념으로 연산군에게 일러 바치게했다. 이처럼 한 나라의 군왕을 열나게 ..
<조선왕조 뒷 이야기> 59 “자손이 종자가 남지 않겠구나!” 05.02
누군가 말했다. “천체(天體) 운동은 계산이 가능해도 사람 광기(狂氣)는 계산 할 수없다.” 사람이 미치광이로 날뛰면 그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물며 광군(狂君) 연산군시대 왕이 머리가 돌아 눈알이 틀어져 버렸으니, 조정 안팍은 하루 하루가 먹구름 속이었다. 저승사자들이 떼를 지어 설치는 형상이랄까. 수많은 억울한 죽음 가운데 한가닥 교훈이 될..
<조선왕조 뒷 이야기> 58 04.25
세상에는 극히 작은 꼬투리가 천하를 뒤흔든 큰 소용돌이를 낳는 경우가 더러있다. 역사의 물줄기를 틀어 버린 피맺힌 환란도, 따져 보면 하찮은 원인에서 비롯된 일이라 여겨져 아쉬워 할 때가 많다.성종10년(1479) 6월 2일, 임금은 왕비 윤씨(尹氏)를 서인(庶人)으로 신분을 낮춰 왕궁에서 내 쫓아 버렸다. 이른바 폐서인(廢庶人), 이때 윤씨에게는 네 살 ..
<조선왕조 뒷 이야기> 57 04.18
연산군4년(1498) 7월, 아직은 제대로 미치기 전이라 그런대로 멀쩡했던 연산군은, 경상도 청도에서 잡혀 올라온 김일손(金馹孫)을 수문당(修文堂) 문 앞에 차려진 국청에서 반역으로 몰아 닥달 했다. 걸터 앉은 왕의 양 옆으로 전 영의정 윤필상(尹弼商)·노사신(盧思愼), 좌찬성 겸 대사헌 한치형(韓致亨), 무령군(武寧君) 유자광(柳子光), 왕의 처남 도승지..
<조선왕조 뒷 이야기> 56 04.13
500년 조선왕조 통치 이념인 유학의 맥은, 고려 말의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를 거쳐, 조선조에 들어 김숙자(金叔滋)가 받아 이었다. 김숙자는 곧 조선유학의 조종(祖宗) 김종직(金宗直)의 아버지로, 그는 유교의 정통학문을 아들 김종직에게 전한 셈이었다. 김종직이 여섯 살에 들어 학문에 눈을 뜰 즈음 김숙자는 아들에게 이렇게 타일렀다.“학습에는 반드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