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뒷 이야기> 76 09.05
중종2년(1507) 10월 16일, 왕은 간성(杆城-강원도 고성)에 귀양 살고있던 아우 견성군(甄城君)을 사약을 보내 죽였다. 왕위에 오른 이태 만의 일이라 자리가 어정쩡한 가운데 아우를 죽여야 했으니 속이 상했다. 견성군이「반역의 중심」이란 누명을 쓴게 분명하다며 버텼으나, 자신을 옹립한 공신들 주장을 꺾는데는 힘의 한계가 있었다.따지고 보면 견성군도 흠..
<조선왕조 뒷 이야기> 75 08.30
성종 19년(1488) 12월 24일, 재주는 넘치나 덕이 없었다고 세평(世評)이 높던 30년 대제학 서거정(徐巨正)이 69세 일기로 죽었다. 그의 본관은 달성, 아버지는 목사 서미성(徐彌性), 어머니는 조선 초기 명신 권근(權近)의 딸이었으니, 곧 서거정은 권근의 외손자였다. 따라서 권근의 아들인 태종의 사위 권규(權규)가 외삼촌, 권근의 손자이며 수양대..
<조선왕조 뒷 이야기> 74 08.22
역사의 기록에는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들이 많아, 읽는 이로 하여금 혀를 차게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은 유일하게 문자를 쓰고 그 문자에 의거 『있었고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길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따라서 인간은 모름지기 기록을 두려워해야한다. 지혜있는 사람은 역사의 기록을 통해 앞서간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 배우는가 하면, 잘못된 일은 거울 삼아 ..
<조선왕조 뒷 이야기> 73 08.08
사람은 자신이 지극히 틀린 상황을 만들고서도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을 탓하는 본성이 있다. 특히 눈앞의 욕심에 눈이 뒤집혀 지켜보는 이의 눈길을 깨닫지 못하는 덜된 인간이, 이런 경우를 저지르고 부끄러운 줄 몰라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조선 성종8년(1477) 사헌부 헌납(獻納) 안침(安琛)이, 아침에 임금이 주재하는 조강(朝講)자리에서 대사간 임사홍..
<조선왕조 뒷 이야기> 72 08.01
연산군4년(1498) 7월, 무오사화를 일으켜 신진 소장파 신하들 씨를 말려 버리려했던 연산군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나간 조위(曺偉)를, 돌아오는 길 압록강변에서 조선땅에 발을 디디는 즉시, 묻고 따질 것없이목을 베어버리라며 금부도사를 서둘러 보냈다.김종직(金宗直)의 문집을 편찬한 조위가「조 의제문(弔義帝文)」을 문집 맨 앞에 실은 게 그가 영문 모르게 죽..
<조선왕조 뒷 이야기> 71 07.25
중종 즉위년(1506) 9월 2일 새벽녘, 반정 변란 끝 무렵, 연산군은 주위에 대고 활과 화살을 가져 오라 외쳤으나 듣는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맥이 빠져 버린 연산군은 다급히 왕비 신씨에게 나가 「간절히 빌어 보자」했다. 그러나 왕비는 현명하였다.“이지경에 이르러 빌어 본들 무슨 소용있으리오! 이미 늦었오! 순하게 받는 것만 못 할것이오! 전일 여러번 ..
<조선왕조 뒷 이야기> 70 07.18
간특하기로 이름난 유자광(柳子光)은 남원사람으로 본관이 영광(靈光),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겸 병마절제사를 역임하고 경주부윤이 됐을때 뇌물을 바치는 약삭 빠른자가 있어 그를 형벌로 다스리다가 그만 죽게 만든 사달로 인해 고향에 은거해 버린 비교적 바른 벼슬아치였다.어느날 유규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큰 호랑이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
<조선왕조 뒷 이야기> 68 춤추는 저두(猪頭)대감 07.11
중종1년(1506년) 9월 초이틀. 흉칙했던 군왕 연산군이 마침내 쫓겨났다. 그 무렵 지구 저편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동서양의 판이한 문화적 차이가 흥미롭다. 유럽에서는 컬럼버스·아메리고 베스푸치·바스코 다 가마 등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인도·남 아프리카 등지를 발견, 신천지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레오날드 다빈치·미켈란젤로 등이 <모..
<조선왕조 뒷 이야기> 67 07.04
난세亂世에는 별의 별일이 다 벌어진다. 전란 통에 피난하느라 헤매다가 산골에서 며칠을 굶어 머리가 돌아 버린 아녀자가, 엎고 다니던 아기가 입맛 당기는 약병아리로 보여 삶아 먹은 일도 있었고, 양반호족 출신 벼슬아치가 목숨을 부지 않으려 벽지로 도망쳐, 천노賤奴의 사위가 된 일도 있다. 연산군 시대 천하의 흉간兇奸 임사홍任士洪은, 왕의 비위를 맞추느라 죄없..
<조선왕조 뒷 이야기> 66 06.27
폭군 연산의 장인은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이었다. 신승선은 한때 세자 빈객으로 세자 시절의 연산군을 훈육하기도했던 명문가 출신 문신이었다. 그런데 연산군을 사위로 맞은 국혼날의 날씨가 고약했다. 성종1  8년(1487) 3월 1일, 따사로와야 할 봄날이었는데도 하필 혼례 시작 시간, 느닷 없는 장대비가 쏟아져 식장을 물구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청명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