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추사의 글씨 따라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하동신문 0 79

추사의 글씨 따라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해남 대흥사 성보박물관에 들렀다. 无量壽閣(무량수각)이 눈에 들어온다. 굵은 선에 기운이 넘치는 추사 김정희 필체이다. ‘없을무’를 ‘无’로 나타내었다. 无는 無의 옛 글자로서 금석학 대가의 자만심을 엿보게 한다. 높게 달려 뭇사람이 우러러 봐야 하거늘 박물관 구석 유리 상자 속에 자리를 틀고 있을까! 

 추사는 제주도 귀양길에 대흥사에 들린다.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을 보고 친구인 초의에게 호통을 쳤다. 

“조선의 글씨를 망쳐 놓은 것이 이광사 이거늘 어찌 그가 쓴 현판을 버젓이 달아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초의는 대웅보전을 떼어 내리고 추사의 무량수각을 달게 된다. 

추사 귀양살이를 끝내고 다시 대흥사에 들러 초의에게, 

“내가 귀양길에 떼어내라고 했던 원교의 현판은 어디 있는가. 내 글씨를 떼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내가 그때는 잘못 보았어.” 

 추사가 제주도 유배되어 머물렀던 곳을 추사 유배지로 복원했다. 지하에 추사관이 있다. 해설사가 특별한 글씨라고 호기심을 자극하고 설명하는데, 다산초당 동암 처마 밑에 걸려있는 ‘다산 정약용을 보배롭게 생각하는 산방’이라는 寶丁山房(보정산방)의 탁본이다. 

 寶와 房은 크기가 같고 山은 다른 글자의 반이며 위로 맞추어 아래를 여백으로 남겨 공중에 떠있는 형상이다. 초의선사에게 써준 무량수각 보다 선이 가늘어졌다. 무량수각의 无와 보정산방의 丁의 마지막 획이 비교 된다. 无는 우로 돌려 삐쳐 올렸는데 획이 굵어 지면이 좁아 각이 졌고, 丁은 날렵하게 원형에 가깝게 감아 올렸다. 

 해설사는 “어떤 글자가 특이한가?”

“마무리에 멋을 부린 丁이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산에서 답을 찾아보라 한다. 추사관을 나와 주변 산을 관찰하자 봉우리 높이가 거의 같다. 이는 제주도는 화산 폭발에 의하여 생긴 섬으로 산마다 여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山은 봉우리가 뾰족뾰족하게 이어지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며, 육지에서 보는 산은 세 개의 봉우리로 구성되는데, 가운데 봉우리가 높고 주변 봉우리는 낮아 첫 획(丨)을 길게 긋는 山으로 자림 매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정산방에서 山의 세 획 높이가 같다. 이는 추사가 유배생활에서 온갖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고 산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고 제주도에서 이글을 보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북천면 직전리 직하고택은 문익점 선생 10대손 직재하 문헌상(1652∼1722)선생이 350년 전 건립한 고택이다. 사랑채 처마 깊숙이 山海崇深(산해숭심)이 걸렸는데 낙관은 완당(阮堂)이다. 완당은 김정희의 호이다.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로 산을 우러러 본다는 ‘崇’자로 나타내고 있다. 공을 드러내어 벼슬을 구하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가문의 정신과 상통한다. 

 추사는 1852년 유배생활을 청산하고 과천으로 돌아갔는데, 그 시절 대표작 중 하나로 산숭해심(山崇海深)을 남긴다. 이 시절 추사는 쌍계사 스님들과도 인연을 맺는다. 쌍계사 들리는 길에 인연이 있어 직하고택에서 머물며 쓰고 달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쌍계사는 723년(성덕왕 22)에 삼법・대비 스님이 혜능 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대로 눈 속에 칡꽃이 핀 곳(雪裏葛花處・설리갈화처)을 찾아 혜능의 머리를 묻고 절 이름을 옥천사라 하였다.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옥천교를 건너 108계단을 올라 돈오문 지나 청학루 앞을 돌아가면 3단 계단이 나온다. 팔상전 옆모습을 보고 오르면 전각이다. 

 맑은 거울 또한 틀이 없다네(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라는 첫 자를 특이하게 쓴 주련을 볼 수 있다. 明을 日(해)과 月(달)의 합자로 알아왔는데, 해 대신에 눈으로 대치되어 目과 月의 합성(目+月)이라 혼란에 빠지는데, 기둥 위에 金堂(금당)이라는 현판 글씨가 마음을 진정시킨다. 

 금당은 남쪽을 향하여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물이 흐르는 서쪽을 제외하고 산이 둘러싸 북풍을 막아주고 긴 시간 햇볕을 받을 수 있다. 과연 봄이 가장 먼저 찾아오기에 눈 속에 칡꽃이 필 수 있는 곳이구나!

 金堂을 중앙으로 좌측 六祖頂相塔(육조정상탑), 우측은 世界一花祖宗六葉(세계일화조종육엽)이라는 추사의 글씨를 볼 수 있다. 어떻게 이곳에 걸리게 되었을까?  

 추사와 친했던 만허 스님이 금당에 머물고 있었다. 스님은 차를 만들어 추사에게 보내 맛보게 하곤 했다. 이를 인연으로 추사는 글씨로 보답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흥사 무량수각은 획 사이에 틈이 없고 선이 굵어 장중한 형상으로 추사가 귀양 가기 전의 모습이며, 보정산방은 山의 세 획의 높이를 같게 한 것은 귀양살이에서 마음을 다스려 제주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됨을 알 수 있고, 직하고택의 산해숭심은 귀양 후의 정신세계를 엿 볼 수 있다.

 六祖頂相塔에서 六을 위로 맞추니 아래 여백을 주고, 중앙의 頂을 크게 하여 보는 사람 시선을 멈추게 하였다가 ‘頂相’이 묻힌 곳을 생각해 보라는 뜻을 담고 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