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명교리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하동신문 0 107

명교리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배다리를 띄운다하여 주교천이라 불리는 하천 위에 가설된 성평교를 건너 양보로 길을 잡았다. 조금 이동하자 산이 물을 건너지 못하니 봉우리 되어 멈춘 기슭에 표지석이 나온다. 

 돌을 옮겨 세우고 명교마을이라 새겼는데 글씨체가 특이하다. ‘교’와 ‘을’자는 전서체로 멋을 부렸다. ‘명’과 ‘마’는 135°만큼 비스듬하다. 명과 마의 모음 ‘ㅕ’ 그리고 ‘ㅏ’는 도마뱀을 연상하게 한다. 명자는 도마뱀이 돌담을 올라가는 형세이며, 마는 담을 다 올라간 도마뱀이 날아오르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시계 바늘이 12에 정지한 상태를 현재로 보고 오른쪽으로 회전하면 미래로, 왼쪽으로 움직임을 과거로 향하는 것으로 본다면 두 글자는 좌로 움직이는 형상이라 과거에 방점이 찍은 듯하다. 글쓴이의 의도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표지석 옆에 기둥 두 개를 세웠다. 기와지붕을 얹고 기러기를 앉혔는데 머리는 마을로 향한다. 기둥 사이에 널빤지를 걸고 설명문을 적었다.

 

 명교마을은 뒷산을 따라 동향으로 길게 펼쳐져 있고, 광복 후 숲 너머에 10여 호의 마을이 형성되어 두 땀으로 되었다. 언제 마을이 생겼는지를 알기 어려우나 옛 하동의 읍기가 한다사(韓多沙: 서기 250년)때 이웃 마을인 고하에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지 않나 생각되어진다. 옛 이름은 ‘조신더리’라 불리고 있다. 새길 銘에 다리 橋로 ‘쪼신다리’가 옳은 것 같으나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하여 ‘조신더리’가 된 것 같다. 명교교 아래쪽에 돌을 쪼아서 놓은 다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이 없다.

 

 새마을 회관 앞 공터에 ‘고하마을 1km’ 이정표를 따라 가니 ‘명교 빨래터 이야기’를 제목으로 빨래터를 재현하였다. 위쪽에는 우물이다. 주변에 대리석 4개를 다듬어 각이 지게 끼웠는데 그야말로 우물 井자를 갖추었다. 그 밑에는 2개의 井자 빨래터를 만들었는데 가로변이 길고 중간에 물이 빠지게 홈을 내었다. 수도 파이프로 물이 공급되는 세상이라 빨래터는 한적하다. 바가지 물을 마시고 남은 물을 뿌리자 물 튀는 소리는 마을 아낙네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로 살아난다. 

 산줄기 내려오다 완만하게 구릉이 되고 숲을 이루었다가 기운을 뭉쳐 봉우리를 만들고 주교천 앞에서 멈추었다. 숲 속에 300년 된 팽나무 있어 보호수로 지정하고, 고전면민이 다듬은 오석에 ‘고인돌 공원’이라고 새겼다.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무덤이다. 그 시대는 물고기와 나무 열매를 구하기 쉬운 장소로 이주하며 생활하다 하천과 들이 있고, 구릉이 있는 길지에 집단 거주를 하게 된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죽으면 전망이 좋은 장소에 무덤방을 만들어 시신을 묻고 그 위에 여러 개의 돌을 받치고 넓은 덮개돌을 얹었다. 

 팽나무 숲 사이에 바위가 나열되어 있다. 두꺼비 형상에 마을을 내려다보는 바위와 머리를 마을로 돌려놓은 바위가 있고, 그 사이에 몇 사람이 둘러앉을 크기의 넓적한 바위가 있는데 구멍이 세 구역으로 모여 있다. 구멍은 위는 넓고 아래로 좁다. 마치 진흙 평면에 팽이로 눌렸다가 살며시 들어낸 모양이며 크기는 다르다. 각각 7개의 구멍으로 구성되어 유달리 1개는 크고 북두칠성의 배열을 이루는 모양이다. 

 

 설명문에 구멍을 성혈(性穴)이라 한다. 성혈은 알 구멍, 알 터, 알 뫼 등으로 불리며, 구멍(성기)→알→출산 등으로 이어지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고 망자의 영생불멸을 기원하는 별자리를 표현한 것이다. 성혈이 남아 있는 고인돌은 흔치 않다.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두꺼비 모양의 바위이다. 두꺼비는 영물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 착한 처녀가 두꺼비를 거두어 남은 밥을 주었다. 두꺼비는 처녀 곁을 떠나지 않았고 벌레를 잡아먹었다. 어느 날 푸른빛이 천정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한 두꺼비는 즉각 붉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여, 한참이 지나자 천장에서 떨어지는데 천년 묵은 지네였다. 푸른빛을 마신 두꺼비는 죽고 말았다. 조상들이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옮겨놓은 듯하다.

 명교리에 고인돌이 있어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 주교천이 흘러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들판을 살지게 하고, 비평산에서 산짐승이나 열매를 손쉽게 채취할 수 있어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것이다. 점차 부족사회로 발전되어 서기 250년경 고하리와 더불어 한다사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겠다. 

 배드리 숲길을 따라 조금 오르자 지수증광운림정채(地水增光雲林呈彩)를 주련으로 하는 영사제가 있다. 주련 글귀 중에 ‘雲林呈彩’를 음미하며 마루에 앉아 살피니 우로는 금오산, 아래로는 둑길이 들판 가운데를 지니고, 우로는 우복리 골짜기에서 발원한 주교천이 꾸불꾸불 흘러내리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명교마을 글씨체만큼이나 끌림이 있는 경관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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