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배드리공원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하동신문 0 324

배드리공원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서기 250년경 배다리 마을이 형성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배다리, 남문동, 城內를 합하여 舟橋로 되었다, 1940년 후반 주교의 舟자와 성내의 城자를 합하여 舟城마을로 된다. 유래만큼이나 고하리 주성마을 회관 앞에 여러 개의 기념비를 볼 수 있다. 하동군 고전면 만세운동 기념비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고전면에 사는 박영묵, 이종인, 정상정, 정의용, 정재기, 정윤용 등이 고전면  주교리 장날(현 배다리 장터)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들은 일신단을 조직하고 목숨 바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1919년 4월 6일 오후 1시 40분경, 주교리 장터 일명 배다리 장터에 1천여 명의 장꾼이 모이자 이들은 미리 만들어 놓은 태극기를 들고 단상에 올라가 박영묵의 주도로 간단한 연설을 한 뒤,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터 요소에 배치되어 있던 일신단원 및 장꾼들이 일제히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조선인 경찰 박도준과 일본 헌병 3명이 출동하여 제지하자, 시위 군중은 그들의 총검을 빼앗는 한편 모자와 제복을 벗기고 구타하였다. 그러나 급거 응원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의 무력행사로 시위군중은 해산되었다. 이후 박영묵, 정상정, 정의용 등 일진단원들은 주동자임을 자처하여 일제 헌병과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순신 백의종군 비를 볼 수 있다.

 거북선 본체를 기단으로 대리석과 오석을 흰 돛, 검은 돛의 모형으로 깎았다. 흰 돛에 명판을 붙였는데 상단 좌측에 현 위치 주소, 그 아래에 흔적을 상징하는 발바닥을 넣었다. 이동을 보여주고자 왼발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고 목표 지점까지 여정과 주변 지형지물을 넣었다.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지 비이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정유년(1597)에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기 위해 당시 원수부가 있던 합천 초계로 향하던 중 5월 28일과 29일 성내 별사에 유속한 곳임, 공은 이곳에 이틀간 머문 후 6월 1일 청수역(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정수) 시냇가 정자에서 쉬었다가 초계로 향함.

 

 하동읍성 표지석은 커다란 돌에 河東邑城으로 새기고 받침대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53호 2004.5.31로 새겼다.

 

 비석들에 눈을 떼어 전방으로 눈길을 돌리자 주교천 물길을 돌린 높다란 둑이 좌우로 펼쳐진다. 둑 밑에 저수지와 물레방아가 보이고 둑을 가로지르는 고하교(古河橋), 벼 짚으로 지붕을 덮은 정자가 있다. 물방아 옆에 깎은 돌을 기단으로 세운 돌과 누인 돌에 ‘물레방아 도는데’, ‘시오리 솔밭 길’을 새겼다. 

 저수지 주위에 쇠파이프를 구부려 엮어 조롱박, 여주 등 넝쿨 식물이 타고 올라 터널을 이루고, 둑길 따라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를 심었다. 저수지 가운데까지 다리발을 세워 널빤지를 걸쳤다. 연잎을 타고 노는 개구리와 연꽃에 눈 맞춤하고 물새들을 보며 주변을 관망할 수 있겠다. 

 고하교 옆에 ‘배드리왕비길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금오산 정기를 받아  왕비가 태어났다는 것인가!

 정자 기둥에 스피크가 달렸는데 뮤직 박스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노래비의 기단에는 정두수가 노래 말을 짓게 된 사연, 돌에는 가사를 새겼다. 

 물레방아 도는 데는 숙부가 학병이라는 띠를 두르고 생가 마을을 떠나는 날 돌담길을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되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가사로 새겼고, 시오리 솔밭 길은 하동읍성으로 해서 고전초등학교로 가는 지름길이다. 솔바람 소리, 산새들 우는 소리를 들으며 홀어머니 손에 이끌려 호젓한 이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추억을 표현한 것이다. 이외에 작사가 정두수는 하동포구 아가씨, 하동으로 오세요, 흑산도 아가씨, 가슴 아프게, 마음 약해서 등 3,500여 편의 노래 시를 지었고 1937년 성평리에서 태어났다. 

 황토색으로 채색된 물레방아는 멈추어 있다. 물을 안아야 물방아는 도는데 바람으로 어쩌란 말인가. 살짝 밀자 움직인다. 제자리를 지나고 되돌아오기를 여러 번 하더니 멈추고 만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주교리 장터 또는 배다리 장터로 알려져 왔다. 주교란 배와 배를 붙이고 널빤지를 걸쳐 이동하는 다리이다. 양보면 우곡리에서 발원하여 여기저기 계곡 물을 모아 이곳에서 배다리를 띄워 주는 물이 되어 주교천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성마을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배다리를 촘촘히 설치하면 접안 시설이 되고 해산물과 쌀의 교환이 되는 장터가 된다. 시장은 에너지가 모이고 확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은 1천명의 사람이 모이는 장날이라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배다리’라는 지명이 이어져 오고 있다. 

 유구한 역사의 향기를 담고 있는 지명으로 배다리공원이라고 하면 학생이나 자녀에게 생생하게 기억되는 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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