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운암초등학교 - 전 하동고 교장 안명영

하동신문 0 129

운암초등학교  전 하동고 교장 안명영

 

 1996년 3월 1일자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변경해서 부르게 되었으니 박달초등학교는 ‘국민학교’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교되었다. 

 박달천 흐름 따라 운전한다. 구불구불 골짜기 사이로 들판이 펼쳐진다. 물은 골짜기로 모여 가물지 않고 공기의 이동이 바람이라 골짜기를 지나자니 시시각각 방향이 바뀌게 되므로 풍력이 약해져 태풍에도 피해가 작다. 이 같은 환경이라 매년 풍년이 들어 사람들은 눌러 앉게 되고 화목하게 지내게 되겠다. 동네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는 들판 가운데 명월정이라는 정자 옆에 느티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700년이라고 한다. 

 긴 커브를 돌자 풍요로운 들판너머 대형 벽화가 핸들을 돌리게 한다. 예당마을 입구에 길 따라 도랑 따라 길게 벽을 세우고 4계절을 나타내는 12폭 그림을 그렸다. 마을 특색이고 내세울 만한 명품이다.

 처음 그림은 논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둔덕에 정자나무가 있고 주변을 사람이 쉴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하였다. 갓을 쓴 노인과 상투머리 노인이 나무 아래에 앉아 금년 농사와 동네 대소사를 논하고 있다. 잎이 달리지 않은 정자나무 가지에 까치가 집을 지었고 살찐 암소에 멍에를 채워 농부가 쟁기질을 한다. 

 다음 그림은 며느리가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다. 오른손에 씨실을 담은 북을 들고 왼손으로 바디를 당기고 있다. 엄마한테 갈려고 떼를 쓰는 손자를 시어머니가 업고 며느리 옆에 서있다. 이어 나무 지게를 기대놓고 청년들은 놀이에 한참이고 처녀들은 줄넘기, 씨름하는 장면, 허벅지를 내 놓고 빨래하는 아낙들을 바위 뒤에 숨어서 엿보는 갓 쓴 남자의 모습….

 나가면서 밤나무에 가려진 바위 위에 비석을 볼 수 있다. ‘光山金氏世居里(광산김씨세거리)’이다. 광산김씨가 대대로 살아오는 마을이구나. 

 ‘폐교 비석군’을 다시 찾았다. 교문 앞을 폐교 역사의 장소로 내어준 학교는 교문을 걸어 잠갔다. 교문 기둥에 박혀있는 명패에는 '운암초등학교'라고 새겼고 교문 창살에 걸려 있는 안내판에는 〈양보초등학교 방문을 환영합니다. 주차는 동쪽 후문 주차장을 이용해 주십시오. 양보초등학교장〉이다. 한 교문에 2개 학교가 있었다는 말인가.

 1999년 9월 1일 운암초등학교는 양보초등학교와 통폐합된다. 통합 장소는 운암초등학교이며 교명은 양보초등학교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폐교에 맞춰 운암초등학교라는 명패를 내려야 하는데 여전히 붙어 있는 것이다. 

 주차를 위하여 후문으로 이동하자 체육관 및 식당의 역할을 하였을 ‘WOW 와우관’은 자물통으로 굳게 닫혀있다. 운동장에서 와우관으로 날아오는 공을 막기 위하여 높고 넓게 철조망을 설치했는데 나팔을 걸어 놓은 듯 능소화가 주렁주렁 달렸다. 운동장 앞에 히말라야시다가 나열되고 사이에 플라타너스를 심어 이중으로 바람을 차단한다. 그 사이에 코를 머리 위에 얹은 아기 코끼리, 기린, 갈기를 세우고 포효하는 사자. 호랑이의 조형물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높은 축대 위에 본관이 있고 중앙 현관의 나온 처마에 ‘바른 심성과 꿈을 가진 창의적인 어린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걸렸다. 우측에는 책 보따리를 끼고 있는 소년상, 옥상에는 바람 따라 회전하는 바람개비가 텅 빈 교정에 생기를 넣어준다. 폐교되고 18년이 되었는데 어디에도 교적비를 볼 수 없다니.

 교문 옆 게시판에 보는 이 없는 12월 행사표에 〈5(월) 전교조회, 15(목) 이중 언어 발표회, 22(목) 겨울방학식, 마을 음악회, 방학 중 방과후학교 운영 예정 돌봄교실: 2017.1.2.-26〉를 담고 한쪽 모서리에 압침이 빠져 늘어졌다.  

 발길을 당기는 양보중학교를 찾았다. 교문 기둥에 양보초등학교라는 명패가 걸렸고 오른쪽 담 밑에 교적비가 있다. 〈교적비. 양보중학교터. 1955년 8월 1일 개교하여 졸업생 61회 7,012명을 배출하고 2016년 3월 1일 폐교되었음〉이다. 양보중학교 폐교 1년 뒤에 양보초등학교가 이전한 것이다.

 모교를 왜 찾게 되는가.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현재의 나의 위치를 처음과 비교하여 궤도를 이탈하였다면 바로 잡으려 할 것이고 제대로 가고 있다면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된다. 힘들고 지친 심신을 심기일전에 모교 찾기는 효과적인 처방이다.

 110년 전에 열강이 조선을 넘보던 어수선한 시절에 근대학교를 세웠다는 것은 보다 멀리 내다보는 양보인의 자부심이다. 한때는 양보면에 4개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운동장을 메웠다가 3개교가 폐교되는 것은 시대적 현상이다. 그러나 한번 모교는 영원한 모교이다. 폐교를 모교로 둔 졸업생의 마음에는 소중함을 잃은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폐교 현황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자료 관리가 필요하다. 양보초등학교와 양보면사무소 홈페이지에 폐교 배너를 설치하여 우복?박달?운암초등학교의  개?폐교 년도, 역대교장, 졸업생수, 교훈, 학교 사진, 교가 등을 탑재하면 독창적이며 시기적절한 사업으로 평가 및 애향심의 촉진제가 될 것이다.


[이 게시물은 하동신문님에 의해 2017-10-30 22:10:26 인물/사람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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