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달초등학교 전 하동고 교장 안명영

하동신문 0 242

박달초등학교

 

전 하동고 교장 안명영

 

 신정마을에서 운암리로 접어들었다. 운암이라 바위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길고 큰 바위가 있어 장암리라 한다. 운암리는 구름 닮은 산에 바위로 진(陣)을 쌓은 동네라는 뜻일까. 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싶다.

 주교천(舟橋川)을 만나게 된다. 주교는 배들을 일렬로 붙이고 널빤지를 걸쳐 다리발이 없는 다리이다. 소설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조조군은 수전 경험이 없어 배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멀미를 하고 허둥대자 배와 배를 쇠고리로 연결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요동이 작고 말을 종횡으로 달리 수 되었다. 방통의 연환계이다. 조조는 한 겨울이라 동품이나 남풍은 있을 수 없다고 장담하고 승리를 예상하였건만 제갈량이 동남풍을 몰아오고 주유 군사가 화살에 불을 붙여 쏘아대니 위나라 배들은 통째로 불덩어리가 되었다. 조조는 수염에 붙이 붙은 줄 모르고 화룡도로 도망가자 기다리고 있던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무슨 연유로 배다리천(주교천)이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을 머리에 얹고 양보면사무소를 조금 가다 왼쪽으로 진행한다. 교문 앞에 축대를 조성하고 ‘폐교 비석들’을 모았다. 

 1단에는 좌우로 사자 상을 앉히고 최근 제작한 비를 배치했다. 내부는 좌측부터 비석을 옮겨 세우게 된 경위, 박달?우복초등학교 교적비, 공적비이다. 2단에는 私立日新學校設立?紀念碑(사립일신학교설립원기념비), 학교설립공로비, 유일하게 비두가 있는 愚伏國民學校設立記念碑(우복국민학교설립기념비), 운암국민학교설립기념비, 紀功碑이다.

 1907년 4월 12일 사립일신학교로 설립되어 양보공립보통?양보심상소?양보국민학교를 거쳐 1996년 양보초등학교로 되었다. 우곡?박달국민학교가 폐교되고 양보초를 운암초로 옮겨 통합하면서 교명은 양보초등학교로 된다. 여러 폐교 터에 남았던 비석들을 2008년도에 (구)운암초 교문 앞으로 옮겼다.

 모아 놓은 비문의 내용을 비교 검토하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교명으로 일신을 많이 사용하였다. 진주여고는 1925년 진주일신여자고등학교로 개교(사립)하였다. 日新이란 은나라를 세운 탕왕이 세숫대야에 ‘苟日新日日新 又日新(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롭다) 글자를 새겨 세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다짐을 늘 일깨웠다는 글귀에서 따 왔다. 요즘은 교훈, 급훈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복초 교적비에 ‘우복초등학교터, 1950년 4월 25일 개교하여 졸업생 1224명을 배출하고 1992년 2월 28일 폐교되었다. 1997년 3월 1일 경상남도교육감’로 새겼다. 우목을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이라 牛伏으로 알았는데 牛를 愚자로 바꿔 愚伏이다. 

 기념을 비석마다 紀念 또는 記念으로 표기하였다. ‘표하다’는 동격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

 박달천을 따라 가다 세곡마을 지나 원박마을로 들어섰다. 시내버스 정류장에 더위를 피하고 있는 노인에게,

“박달초등학교터가 어디입니까?”, 

“지나왔다. 들판 고목 아래 사람들이 있으니 쉬어 가라” 

들 가운데 달이 밝다는 명월정, 옆에 700년 느티나무가 있다. 박달리는 낮은 산으로 둘러싸고 있어 태풍의 피해가 없고 느티나무가 수 백 년 동안 웅장한 자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지형의 영향이란다. 

 박달리는 박달나무가 많아 지명이 된 줄 알았는데 마을에 달이 뜨면 너무 밝다고 한다. 옛날 수문장을 지낸 이씨 성을 지닌 사람이 거주하면서 밤이면 달빛이 유난히 밝아 달동(月洞)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밝은 달’을 박달(朴達)로 음차된 것이란다.

 되돌아 나왔다. 도로 변 아름드리 느티나무 사이에 철제 창살로 제작된 교문이 있다. 가운데 칸에 철판으로 ‘박달국민학교’로 오려 붙이고 흰 페인트를 칠했다. 입구 오른쪽에 학교와 시작을 함께했을 벚나무가 힘겹게 버티고 있다. 운동장은 풀로 무성하고 그 속에 조례대가 있다. 교장 선생님 그리고 상 받는 학생만 올라갈 수 있는 높은 무대였는데…. 앞에 보이는 교실은 최근까지 사용하였던 ‘박달미술관’ 현판이 걸렸다. 정기적으로 벌초를 하면 찾는 이 발걸음 조금은 가볍지 않을까. 

 박달초등학교는 1941년 5월 5일 개교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이 연승으로 기고만장하여 진주만 공습까지 계획하고 있던 어수선한 시기에 교문을 열었다는 것은 지역민들의 교육열을 볼 수 있다. 303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국민학교’인 채로 1994년 2월 28일 폐교하였다.

 폐교는 졸업생에게 영원한 모교이다. 교훈 및 개?폐교년도, 동문 수 그리고 뒷면에 교가를 새긴 교적비를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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