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담채색의 수채화처럼, 정수리부터 시작하는 두릅처럼

하동신문 0 878

담채색의 수채화처럼, 정수리부터 시작하는 두릅처럼 

 

높찬니편(적량면)

 

                                                       이경숙(시인, 상담사)

 

 십리 벚꽃이 한꺼번에 입을 열기 시작하는 4월, 영신마을의 경사진 언덕을 오르며 진한 봄내음에 옷을 적신다. 촘촘하게 줄지어 서 있는 두릅의 물관들이 부산하다.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하는 고사리도 봄을 재촉한다. 두꺼운 내의를 벗어던지고 고운 빛깔의 옷을 꺼내 입어보는 그런 계절이 왔다.

 오늘 소개할 그녀는 캄보디아 출신으로 9살, 7살, 3살의 아들 셋을 둔 다둥이 엄마 높찬니이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오니 언덕의 끝에 그녀의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차 한 대 돌려나올 수 없는 막다른 골목길, 그곳에 다섯 식구의 보금자리가 있다. 가까이에는 그녀의 남편이 일하고 있는 축사도 함께 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축사냄새가 났지만 조금 있으니 금세 무디어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끄는 건 담채화로 그린 수채화 2점이었다. ‘누가 그렸냐?’는 질문에 그녀는 손가락으로 남편을 가리키며 웃는다. ‘그래요? 재주가 좋으시네!’ 칭찬에 아이마냥 수줍어하신다. 평소 그녀의 남편은 조용하고 소심해 보인다. 말도 조용조용하고 행동도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오늘은 조금 달라 보인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해 주시고 또 잘 웃으신다. 

 ‘소소한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부부의 이름으로 맺어진 그들의 인연이 제일 궁금하다. 오늘 만나는 그녀는 어떻게 남편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을까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녀의 남편은 17살까지 전남 영광에서 살았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에는 아직도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으며 지금도 특산물을 보내주신단다. 남편은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던 모양이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데리고 동서(남편의 이모부)가 살고 있던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축산업을 시작하셨고,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남편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만나게 된 사연을 들어보기로 하자. 전남 화순에 그녀보다 먼저 한국으로 시집 온 그녀의 큰언니가 살고 있다. 5녀인 그녀의 자매들 중에 유독 넷째인 그녀를 좋아한 언니가 그녀를 시누이에게 소개를 했고 두 사람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기 전부터 남편은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몇 번이나 그녀를 놀려댔다. ‘정말 이 사람은 미꾸라지 용 됐어요.’ ‘그래요?’ ‘처음에 얼마나 새까맣고 작았는지 몰라요.’ 그러면서 한 마디 곁들인다는 말이 ‘용 됐어요, 정말!’ 평소와 다른 그녀의 남편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이렇게 살고 계셨구나. 하루 종일 있어도 말 한 마디 없을 것 같았던 그녀의 남편에게 이런 부분이 있었구나 싶다.

 그녀가 한국에 들어오던 때가 5월이었지만 그녀에겐 춥게 느껴졌다. 우리 군에 사는 캄보디아 출신의 이민자들이 열 명 남짓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잘 살고 있다. 그녀들은 성실하고 조용한 편이며 모성애가 강하여 아이들을 잘 보살핀다. 그녀도 예외가 아니어서 셋이나 되는 아들들을 잘 키우고 있다. 센터에서 공공근로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봄에는 고사리와 두릅을 채취하고 시간이 되는대로 남편이 하는 일도 도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 

 결혼생활 10년 만에 고향에는 3번 다녀왔다. 올해도 막내 여동생 결혼식이 있어 고향을 가야하지만 가족이 함께 갈 수가 없다. 그녀의 남편이 가축을 돌보는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말에 이어 캄보디아에서는 돼지를 방목한다며 웃는다. 캄보디아의 돼지들은 밖에서 놀다가 물을 마시러 집으로 돌아오고, 잠을 자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단다. 처음에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단다. 

 결혼 전 그녀는 옷 만드는 공장에서 3년을 일했다. 그래서 옷을 재단하고 수선하는 일은 잘 할 수 있다. 다음에 재봉틀 하나만 있으면 수선집을 해도 될 것 같다. 

 결혼 당시에는 부모님들과 가까운 곳에서 따로 살림을 시작했다. 시아버지가 하는 일을 함께하면서 지냈다. 아버지는 건강하지 못하셨는데도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셔서 치료를 받은 적도 없었다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시어머니가 집을 비운 어느 날, 따로 살던 그녀 부부는 아침에 올라와서 축사로 바로 가서 일을 하였고, 한참을 지나 방에 들어갔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건강하시지 못했지만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그 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한동안 슬프고 또 아버지가 계시던 이 방이 무섭기도 했단다. 

 섬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그녀의 시누이는 손질한 생선을 박스 채 보내주기도 한다며 우리에게 넌지시 자랑을 하는 그녀가 밉지 않다. 

 가족들의 건강을 염려한 나머지 자녀들이 자라서 의사나 간호사가 되었으면 좋겠단다. 함께 사시던 시어머니는 다리 수술을 하시고 화장실이 편리한 동생 집에 가 계신다. 날씨가 따듯해지고 어머니의 몸이 회복되시면 다시 돌아오실 수 있으리라 믿으며 살고 있다. 

 유난히 눈이 큰 그녀를 닮아 아이들도 눈이 크다. 그녀의 미꾸라지 시절을 남편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용이 된 지금의 그녀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웨딩 사진에도 가족사진에도 미꾸라지인 그녀는 없고 눈이 크고 수줍은 그녀만이 있다. 

 곧 두릅을 따는 그녀의 빠른 손놀림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봄이니까 그리고 4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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