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섬진강대교 길고도 멀다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하동신문 0 479

섬진강대교 길고도 멀다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냇물이 모여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진안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550리 흘러내리는 섬진강을 품어주는 바다를 남해라 일컫는다. 

 섬진강대로에 차를 얹어 강물을 곁눈질하며 하동읍으로 이동한다. 횡천교를 지나자 소나무 숲이 직선을 이루고 그 사이로 정지한 듯 파란 물감을 칠한 듯 섬진강을 볼 수 있다. 

 하동포구공원이다. 하동포구라고 쓴 황포 돛대 옆에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매끄러운 외모에 속은 검게 변한 바위를 기단 위에 앉히고, ‘하동포구아가씨’를 가로 글씨 가사는 세로로 새겼다. 가슴에 담을수록 사연은 강물 되어 흐르고 흐른다. 작사는 노래에 시를 담아 낸 고전 성평리 출신 삼포 정두수,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음색의 하춘화가 불렀다. 

 쌍 돛대 임을 싣고 포구로 들고 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 쌍계사 쇠북소리 은은히 울 때 노을 진 물결 위엔 꽃잎이 진다 팔십 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주오

 포구(浦口)의 浦는 물가, 바닷가를 뜻하며 水와 甫(클 보)의 합자이다. 口는 입 모양에서 본뜬 것이라 입이다. 따라서 포구는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를 뜻하는 한자어이고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다. 하동포구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80리에 쌍계사 쇠북소리가 들릴 정도이니 화개장터까지 확장해야겠지.

 목도정 또는 섬강정이 어울릴 정자 아래 쇠말뚝을 촘촘히 강바닥에 세워 재첩채취선 전용 부두로 활용되고 있다. 말뚝 사이로 주황색의 다리가 선명하다. 일정한 간격으로 교각을 세웠는데 가운데 교각의 간격은 흐름을 감안하여 넓고 다리 하중을 분산하기 위하여 아치형 탑이 장관이다.

 섬진강을 걸어서 건넌다. 준공 표지석에 ‘섬진강대교’로 새기고 제원을 적었다. 총연장 840m, 다리 폭 12.4m, 공사기간 2009.7.1부터 8년 2개월에 걸쳐 하동 목도리와 전남 다압 송금리를 연결하고 있다.

 하동교차로에서 좌측 난간에 차 잎 반쪽을 확대하고 2022 하동세계차 엑스포 홍보기가 바람을 안고 한껏 부풀어 있다. 하단에 ‘왕의 차 1200년 찬란한 문학과 역사’를 첨가하고 녹차 밭에 소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 그림이 악양동천 차밭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섬진강대교 중간 지점 양쪽 난간에 아름드리 파이프를 아치형으로 각각 고정시키고 상단에 파이프 9개를 가로로 거치하여 간격을 고정시켰다. 그 파이프 마다 2개씩의 파이프를 벌려 상판에 연결시켜 넓은 교각 사이 하중을 분산시켜 균형을 유지한다.

 섬진강을 내려다본다. 맞은 편 산자락이 흐름을 느리게 하니 강폭은 넓고도 넓다. 오른쪽 뾰족한 산은 그림자를 물에 담그고 하동포구공원 소나무는 띠를 이루고 하동포구아가씨 노래비는 살짝 자태를 보여준다. 강물 위 같은 장소에 내려앉은 물새 떼는 또 하나의 다리를 이루고 있다. 헤엄치는 새는 파문을 만들었다가 “끼룩 끼룩” 소리를 내며 수면 위를 저공비행하다 고도를 높이며 멀어지고, 흰 거품이 밀려 올라오니 밀물 때를 보여준다.

 649년 당태종 사후 김춘추 김유신은 신라의 장래에 대하여 의논한 결과 당과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춘추는 당고종(부인 측천무후)을 설득하여 당태종이 남겼다는 고구려 정벌 포기의 유조를 폐기시키고 정벌군을 일으키도록 설득하기로 결심한다. 이것만이 위기에 처한 신라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마침내 춘추는 차후 문무왕이 되는 장남 법민과 당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셋째 아들 인문을 대동하고 韓多沙(한다사: 지금의 하동, 유현종, 대하역사소설 연개소문)에서 배를 타고 입당하게 되었다. 그는 신라를 떠나 두 달 만에 장안에 도착하여 여왕의 국서를 바치고 당고종을 알현했다. 

 춘추는 당고종과 연합전선을 맺어 백제를 멸망시켜 642년 합천 대야성 전투에서 죽임을 당한 딸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 법민은 고구려를 멸망시고 삼국통일하였다. 

 춘추는 백제와 고구려의 감시를 피하여 한다사로 갔다가 하동포구에서 배를 타고 광양을 거처 서해안으로 장안에 도착한 것이다. 

 하동포구에 내님을 내려달라는 하동포구아가씨 노래비 옆에 ‘김춘추 하동포구에서 배를 탔다.’라는 표지석이 세워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