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하동춘추 34 / 아직도 담배를 피우십니까? / 문찬인

하동신문 0 219

하동춘추 34

 

          아직도 담배를 피우십니까?

 

 

                            문    찬 인 

 

 

최근 어떤 모임에 참석했는데 몇 사람이 식당 밖에서 들어오질 않아 나가보니 담배 한 대 피우고 잇는 중이었다.

전체 참석자가 12명이었는데 그중 세 사람이 흡연가이다. 확률로는 25%이다.

요즘 담배피우는 사람은 골동품이다. 에지간히 독하지 않고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국가의 강력한 눈치로 버티기가 힘들다.

우리 나이 때의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어른의 특권으로 보일 때라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열심히 피워왔다. 안방에 당연히 재떨이가 있었고, 버스안에서도 피웠고, 가족이 함께 한 승용차안에서도 피웠다

우리 사무실 여직원은 출근하여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무실의 재떨이 비우는 일이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각종 문헌을 보면 담배가 들어온 것이 1618년(광해군 10년) 무렵인데, 당시 조선에서 가장 애연가로 알려진 사람이 장유(張維 1587~1638)라 한다. 장유는 자신의 <계곡만필>에서 조선에서 담배가 전래되고 퍼진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남령초(담배)는 20년 전 조선에 들어왔다. 위로는 고관대작들과 아래로는 가마꾼과 초동목수들까지 피우지 않은 자가 백 사람, 아니 천 사람 가운데 겨우 하나 있을까 말까 하다.”

장유의 말에 따르면 담배가 들어온지 20년 만에 1000명 중 999명이 피우고 있다고 했다. 물론 과장이겠지만 그만큼 급속도로 퍼졌다는 이야기 이다. 

한편으로는 담배를 요망한 풀’, 요초(妖草)라 하였다. <인조실록>에 의하면 “오래 피운 자가 유해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끊으려 해도 끝내 끊지 못한다.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 했다‘ 하였다.

담배가 들어온 초창기에 이미 ‘요초’라 할만큼 중독성이 심하고, 그 효능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는 것이다

초기에만 해도 담배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 ‘하멜표류기’에는 어린 아이들까지 곰방대를 물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승정원일기’에는 5인 가족이 한달 담뱃값이 ‘불하 십문전(不下十文錢)’이라 하였고, 흉년에는 나라에서 받은 배급 쌀을 담배와 바꾸어 먹기 까지 했다고 한다시대가 흐름에 따라 담배피우는 풍습이 바뀌어 지체나 나이가 높은 윗사람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었다.서로가 맞담배질을 한다는 것은 곧 터 놓고 맞상대한다는 뜻이 되어 부형이나 상전 앞에서 손아랫사람이나 아랫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볼기를 맞거나 멍석말이를 당해야 하는 버릇없는 일로 규정지어졌다.이런 불문율이 생기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야사가 있다.임금과 국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신하들이 하두 담배를 피워 연기가 용상에까지 올라가 임금의 코를 맵게 하였다. 이를 참지 못한 임금이 ‘다시는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것이 점차 보편화되어 자신보다 지체가 높은 사람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관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조선후기 양반사회에서 여성의 흡연을 나쁘게 보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나 기생, 상민, 천민사회 여성흡연은 자유로웠다.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신분계층이 무너지자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상민이거나 천민임을 자인하는 꼴이 되어 여성의 흡연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아직도 골목이나 구석에서 담배를 꼬나 물어야 하는 흡연자들이여!

담배가 그대의 주인인가? 그대가 담배의 주인인가?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