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하동춘추 32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문찬인

하동신문 0 191

하동춘추 32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문찬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은퇴란 잊혀짐의 입구이다. 그리고 늙어감의 시작이다. 은퇴할 때 모두가 축하의 덕담으로 ‘제2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라고 한다. 

그러나 은퇴 후에 제2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은퇴하게 되면 크든 작든 세상의 주역에서 물러나 멀리서 세상을 바라보는 객(客)이 되고만다.

하루에 10여 차례 이상 울려대던 휴대폰 소리도 해마다 줄어들어 몇해 아니가서 하루에 한통 전화가 없는 날이 꽤 많아졌다

이제는 점점 홀로가 되어간다. 많은 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소외감을 느끼고 힘들어 하기도 하며 아파하기도 한다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달려가는 6~70대.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을 나무라지만 그렇게라도 세상에 끼이고 싶은 절박함도 이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어디에 끼이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며 편안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을 군자라 하는 것이다.

고독이란 말은 환과고독(鰥寡孤獨) 즉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없는 노인을 일컫는 말이다. 혼자여서 외롭고 쓸쓸하단 것이다

고독을 긍정적 측면에서 바라보아 고독력(孤獨力)이란 말이 생겨났다. 일본 작가 다카나가 노부유키의 책 제목이다. 이말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이라기도 하고 ‘무리에 의존하지않고 혼자서도 홀가분하게 잘 지낼수 있는 힘’이라기도 한다.

혼자 있어도 즐겁고, 홀로 있어도 편안하고, 비가 와도 마음이 따뜻하고, 낙엽이 져도 마음이 안온하다. 이렇게 일상을 지켜나간다면 어찌 성인이 아니리요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피하려고 끊임없이 어딘가에 집착한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기도 한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업종이 스마트폰, 게임, SNS등 인간의 고독을 퇴치해주는 사업이란다

누구나가 다 휴대폰을 끼고 산다. 집에 두고 나오면 종일 불안하다. 여럿이 같이 있어도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임기를 마치면서 이십여 곳의 단체에 가입했다고 한다. 한달에 한번만 모여도 한달 내내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또 어떤 이는 한달 내내 산을 찾아 다니고 있다. 은퇴는 빠르고 살아가야 할 날은 많다. 인류세 처음으로 100세 시대이다. 늘 모여다니면서 ‘우리가 남이가’ 하고 외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으로부터 멀어짐을 이겨내어야 한다.

나는 요즘 성경책을 읽고 붓글 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거기에다 100여평의 텃밭도 가꾸어야 하고 가끔은 외손녀들의 얼굴도 보러간다.

매주 토요일은 안식일로 교회에 가야한다. 밥 먹자는 친구는 별로 없지만 간혹 진주나 창원의 대처(大處)에서 찾아와 주는 사랑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행복하고 감사하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공자님의 논어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젊어서는 잘 모르겠더니만 이제 이말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파스칼의 말이다

“인간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기 방에 혼자 조용히 머물러 있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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