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하동춘추 7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 하여야 하는가? 도비 문찬인

하동신문 0 86

하동춘추 7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 하여야 하는가? 

도비 문찬인 

 

 내가 사는 동네는 화개 가탄의 백혜마을이다. 토착민, 이주민해서 열다섯 가구가 모여산다.

일요일 저녁이면 마을회관에 모여 하동의 역사, 자연, 인문환경등을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 이름하여 백혜학당이다

반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 때문에 마을회관에 모일 수 없다고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코로나 확진자가 남해, 광양등에서 발생하였다는데 서로 조심해야하지 ..

그래서 백혜학당도 무기한 휴업이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이름이 왕관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명명한 중국 우한 폐렴의 공식명칭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로 부른다

이 새로운 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그 형태가 마치 개기월식처럼 주변이 동그란 원형태로 밝게 빛나서 왕관 즉 코로나라 이름 붙였다 한다

 

1918년 3월 전세계를 휩쓸며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이 한반도에 상륙했다. 장티푸스, 콜레라와는 또 다른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식민지 조선은 속수무책 당했다. 

조선에서 ‘서반아 감기’로 불리던 이 바이러스는 1918년 3월 첫 발생 이후, 9~11월에 기승을 부린 뒤 다시 1919년 1월부터 3ㆍ1운동 직전인 초봄까지 널리 퍼졌다. 당시 독감으로 전체 조선 인구의 40%인 750만명이 감염되고 사망자도 14만명에 달했다. 

“들녘의 벼를 거두지 못할 정도로 상여 행렬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조선 팔도의 민심은 흉흉했다. 민심의 동요가 컸던 건, 독감의 전파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학교나 관청, 등 다수가 모이는 장소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하면서 사망자 중엔 20대가 많았고, 사람들의 공포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일제는 예방접종이나 마스크 보급 등 방역 활동에 소극적이었고, 풍습과 미신에 의존하는 조선인이 문제라며 책임을 돌렸다.

때문에 역사학계 일각에선 이 독감이 3ㆍ1운동의 도화선이 됐을 거란 주장도 나온다. 일제가 창궐하는 독감에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민중의 불신과 분노가 축적됐고, 이러한 감정이 3ㆍ1운동을 통해 표출됐다는 주장이다.

진정추세에 있던 코로나가 신천지의 집단감염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오늘 아침 언론 보도에는 전국적으로 확진자 수가 5천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지역사회의 대유행이 시작된 듯하다. 학교도 3주나 개학이 연기되었다

이제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말이 좋아 각자도생이지 “스스로 알아서 하라. 별 대책이 없다”는 말이다.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여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밀집상황을 피하는 것으로 아예 접촉자체를 최소화하여 전염병을 막자는 것이다

크고 작은 행사의 취소등 사람이 모이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필요할 경우 전면적인 이동제한도 검토하여야 한다

기나긴 인류역사는 질병과의 싸움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와 싸웠으며 끝내 이겨내었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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